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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Apr 13. 2023

박사과정 랩 생활의 장단점

박사생들은 랩(laboratory)이라고 하는 연구실에서 공동으로 연구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실험 연구를 하는 분야들은 이 랩에 물리적으로 출근을 해야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랩 생활이 필수적이다. 사회학, 수학과처럼 실험 연구가 필요치 않은 분야들은 이런 랩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있다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출근을 하는 박사과정생이 드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실험계열 박사생들은 이런 박사생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기회가 적어 외로움을 많이 호소하기도 한다. 박사과정 동안에 발생하는 무수한 문제에 대해서 같이 의논하고, 여러 동료들로부터 경험담을 전해들을 수 있는 장이 없어서 혼자 망망대해에서 고군분투 하는 박사생들이 많다.


근데 우리 연구소는 정말 특이하게도 전공이 대부분 실험이 없는 사회과학 계열임에도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박사생들이 꽤 많다. 실험 연구가 아니니 사실 랩이라고 해봐야 오피스 형태인게 전부이고, 각자 연구주제도 천차만별이라 협업이 그다지 필요치도 않지만 랩에 출근해서 자기 연구를 하는 동료들이 많다. 


작년 내가 1년차였을 때만 해도, 랩에 출근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서 하루종일 혼자 일하던 날이 태반이었는데 코로나가 풀린 여파인지 작년 말부터는 랩에 사람이 북적북적하다. 그래서 작년과 올해 두 경험을 비교해서 박사과정 랩 생활을 장단점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랩생활의 장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박사생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비실험연구 박사생들은 같은 연구소, 같은 학과 소속이어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수업이나 세미나 등으로 만난다 하더라도 사실 자기의 박사생활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는 많지 않다. 간혹 학교 차원에서 박사생들의 정신건강이나 연구, 생활 상의 어려움에 대해 논의해보라고 세미나 같은 멍석을 깔아주는 때가 있긴 하지만 사람이 원래 멍석 깔아주면 더 못한다. 이건 국룰을 넘어 만국룰. 


그러다보니 ‘공적 커뮤니케이션’ 기회는 있을 지언정, ‘사적 커뮤니케이션' 기회는 매우 적다. 자신의 연구나 박사생활에 있어서 크든 적든 어려움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스몰 토크가 박사과정에 있어서 생각보다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내 뒷자리에서 일하는 고년차 동료가 박사생들에게 전체 메일을 뿌린 적이 있다. 예전에도 그 친구가 지도교수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밥 먹는 자리에서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결국 박사 막년차에 들어서 지도교수를 사실상 바꾸게 되었다. 그때마다 동료 박사생들이 자기 일처럼 분노해주고 위로해줬었는데, 그런 심적 서포트를 받은 덕분인지 친구가 자기 경험담과 대처하는 방법을 전체 메일로 공유했다. 이게 박사생들 간의 스몰 토크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사실 자기 지도교수와의 갈등 경험을 전체 박사생들에게 공유하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이런 주제는 ‘공적 커뮤니케이션’ 창구에서는 말하기 굉장히 껄끄러운 주제이기도 하다. 외국은 한국의 교수-학생 위계관계와 다르다 어쩌다 해도, 사람 사는 일이 다 비슷비슷하다. 더군다나 자기의 힘든 문제를 남에게 내보이는 게 결국 자기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나 다름없기에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은 동료들과 사적으로 자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친구가 본인이 겪은 일이 부당한 일이고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에 힘을 실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 친구가 보낸 메일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지도교수와의 갈등이든 연구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든 절대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주변에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구하라고. 지도교수든, 박사동료들이든, 학과장이든, 학교 학생대표든 어느 창구에라도 좋으니 지속적으로 자기 문제를 공론화 하라고 했다. 또 자기가 박사과정 동안에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하다못해 가족들, 친구들과 같이 사적인 그룹에라도 적극적으로 알려두라고. 결국 이런 행동들이 스스로를 구하게 되고, 더 냉철하게는 나중에 자신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런 노력+시그널을 보냈다는 일종의 ‘증거자료'가 된다고 했다. 


박사과정에는 표준화 되어있지 않은 사안들이 상당히 많아서, 박사생들이 겪는 문제들도 그렇고 해결책도 그렇고 너무 편차가 큰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학생들 간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고,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서 공론화 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니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마저도 박사생 1인이 혼자서 끙끙거리며 앓는 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주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자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랩 생활이 하나의 소통창구가 되어준다.


자기가 겪는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 점은 좀 한국적 사고방식과 다른 부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 드는 게, 한국에서는 문제제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 트러블 메이커라고 딱지를 붙이는 경향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문제가 있든 없든 의사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서 보다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유학하는 여러 유튜버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 점은 확실히 한국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 점은 회사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짧게나마 한국에서 회사생활 했던 시절, 문제제기를 하던 직원을 아니꼽게 보던 시선을 느낀 바가 있었는데,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그런 상황에서 자기 어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고과를 낮게 받는다고 지적하더라)




이에 비해 랩 생활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동료와의 비교의식이 생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건 나만 느끼는 단점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내 경험 상, 동료들이 없이 혼자 연구생활을 하던 1년차 때는 뭐 소통을 할 박사생들이 없으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연구 진척이 빠른건지, 느린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었는데, 동료들이 많아진 2년차에 들어서는 이런 저런 연구 내외적 부분에 대해서 동료들과 비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저 친구는 벌써 현장연구에 착수했는데, 나는 아직도 논문 리뷰 중이라니. 저 친구는 벌써 컨퍼런스 페이퍼가 통과되어 컨퍼런스에서 발표까지 한다는 데 나는 페이퍼는 커녕 데이터도 없다니, 저 친구는 대형프로젝트에 소속돼서 착착착 연구가 진행되는데 나는 혼자서 주제 잡는 것부터 맨 땅에 헤딩하고 있다니 등등. 물론 주제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머리로는 십분 알고 있지만 가끔 이렇게 피어나는 감정적인 비교는 어쩔 수가 없다. 특히나 외국에서 연구를 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언어능력 비교도 엄청 된다. 같은 외국인인데 저 친구는 저렇게 불어를 잘하다니! 심지어 2년밖에 안살았다는데! 이런 비교의식이 든다. 그 덕분에 매일매일 싫으나 좋으나 언어공부에 대한 모티베이션을 얻는다는 건 장점일 수도 있겠다.


이런 저런 랩 생활을 장단점을 살펴봤는데, 확실히 단점은 미미한데 비해 장점이 큰 것 같다. 비실험연구를 하는 전공자들은 랩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동료들에게 랩 생활을 함께 하자고 권유해보고, 물리적 랩이 없다면 주기적으로 만나서 커피 타임이라도 갖는 등 동료들과의 소통창구를 잘 만들어두는 것이 이 긴긴 장기전을 건강하게 잘 해내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다. 


물론! 랩생활도 사람 간의 일이라, 그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럴 때는 프레임을 최대한 바꾸려고 노력해보자. 당연히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 미.친.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이 사람이 내 삶을 도와주러 온 어벤저스 팀이다 그렇게 관계의 프레임을 바꿔보려고 해보자... 도움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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