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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ing Dec 02. 2019

출산 후 첫 번째 자존심, 수유

생생 리얼 조리원 스토리

"모유 안 나오면 어쩔 수 없지! 분유 먹이면 되지!"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남편이랑도 출산 전에 얘기했었다. 실제로 이 생각에는 변함없다. 모유 안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조리원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지루할 것만 같은, 아니 실제로 지루한 조리원 생활은 수유로 돌아간다.


"애기 모유는 잘 먹어요?" "가슴 너무 아프지 않아요?" "애기가 빨다가 계속 잠이 들어서.." 조리원에서 식사 도중 오가는 말들 중 반은 "모유수유" 얘기라 확신한다. 출산 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 출산 후 조리원으로 옮기자마자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과제는 "수유"였다. 내 가슴에서 유즙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가슴 울혈을 느끼는 것, 심지어 이왕 나오는 거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욕심이 생기는 것도 처음이다.


하루 6번의 수유 콜

"수유할 수 있겠어요 산모님?" 수화기 너머로 친절한 말투의 질문. 거절할 수 없다. 아기가 배고파서 울고 있다는 것. 부랴부랴 가운을 걸치고 수유쿠션을 들고 내려간다. 출근 때는 아침에 그렇게 일어나기 힘든 몸이 조리원에서는 애기가 보고 싶고, 밤사이 잘 있었는지 궁금하여 금방 일어나서 나간다. 오후에는 조리원 프로그램이 있는 시간이라 프로그램 시간을 잘 맞춰야지 생각하며 내려가고 (하지만 프로그램 가야 할 시간에 딱 맞춰서 울어주신다), 저녁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간다. 새어보니 6번이었다.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연락 말아달라고 부탁한 나의 경우) 외출이라도 하거나 마사지라도 가거나 마땅한 이유 없이 거절하는 건 너무 어렵다. "분유로 먹여주세요~" 말은 마치 '엄마로서의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는다'를 대변하는 말과 같게 느껴진다.


수유실 풍경

수유실로 내려오면 이미 수유하고 있는 다른 산모들이 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앉아서 수유 준비를 하며 우리 아기를 기다린다. 다들 가슴을 내놓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표정들은 단 세 가지다. 멍하거나, 어쩔 줄 몰라하거나 (아기가 울 때. 젖을 줘도 안아줘 봐도 계속 울 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보며 반사신경으로 웃는 표정. 아기가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온 힘을 다 주며! 엄마 젖을 빠는 모습, 멍하니 내 눈을 바라보며 "넌 누구니?"라는 표정을 지을 때,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생떼를 부리는 모습, 한 번씩 배냇짓을 할 때, 엄마들은 웃는다. 한 시간 동안 아기 표정들만 관찰하고 올라오는 경우도 많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것을 빤히 보는 데만 쓰는 비효율적인 일. 수유실에서 일어난다.


돌아와서는 폭풍 검색

수유실에서 돌아보면 잘 먹는 아이들. 젖이 잘 나오는 산모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 아기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빨다가 양이 부족하여 우는데... 미안한 마음 가지지 않기로 했는데, 수유실에 있다 보면 괜히 속상하고 괜히 미안하다. "우웅~ 엄마가 미안해, 아이코 모유가 부족해요? 분유 줄까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 방으로 돌아와서는 모유에 좋다는 '모유촉진 티', '모유 잘 나오는 법', '기저부 마사지' 등을 폭풍 검색한다. 티브이를 여유롭게 보는 시간은 매우 짧다.  


출산 전에 친구들이 "조리원에 가서 모유수유로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조언해 준 말들이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실감 나는 요즘. 딱히 스트레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조리원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여기서는 다른 곳에 신경 쓸 곳이 마땅히 없기 때문. 삼시 세 끼와 간식까지 챙겨주고, 빨래해 주고, 쾌적한 환경도 제공해 준다. 중간에 교육과 운동도 시켜주니 말이다. 사람이 하루 중에 어떤 일에 집중하고 신경 쓸 곳이 필요한데, 그걸 "수유"라는 것이 채워 준다. 그래서 비교적 산모들이 하루 6-8번의 콜에도 내려와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조리원 5일째 생활 중이다. 정말 최상의 조건인데, 생각보다 즐겁거나 생기발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몸이 안 좋아서. 산후우울증과 같이 호르몬 변화로. 너무 반복적인 일상이라서. 낯선 환경과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 정도로 생각한다. 조리원 동기가 우애가 깊다고 많이 들어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우리 조리원만 그런 건지) 식사할 때만 얘기를 나누고 다른 소통의 시간은 없다. 오히려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이 사람과 친해질까? 저 사람은 어떨까? 탐색전에 돌입하는 나의 성격 때문인지 더욱 신경이 쓰인다. 또한 신생아실 선생님들께 이것저것 잘 물어보고 튀는 산모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애기 관련 질문 하나 하려면 몇 번이고 생각해서 하나 질문 던지고, 선생님들의 말투나 행동 등에 신경이 쓰이곤 한다.


그리고 방에 올라오면서 "애기 관련된 건데 왜 적극적이지 못할까?"부터 "내가 엄마로서 잘할 수 있을까"까지 생각한다. 그리고 방에 들어오면 지쳐서 풀썩 침대에 눕는다. 집으로 돌아가면 더욱 힘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리고 '자존감'이라는 것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낙엽이 흔들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26도의 따뜻한 방에서 "이 생활이 행복이며, 즐겨보자!"라고 다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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