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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Mar 09. 2019

나의 음악 채집 이야기 #1

일곱 번째 재즈 이야기: When you wish upon a star

Jazz Memory#007


"아나~. 이거 니 들으라."


어디서 얻어 오셨는지 아버지가 퇴근길에 CD 한 장 내게 불쑥 들이 미셨다. CD를 받긴 받았는데 이게 뭔가 했다. 딱히 표지는 없고 CD 표면에는 큼지막하게 'Jazz Collection'이라고만 각인되어 있었다. 아직 음악적 취향이 없던 초등학교 5학년 덩치 큰 아이는 산지 얼마 안 된 CD 플레이어에 아버지가 주신 CD를 넣고 틀어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일곱 개의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기억하는 재즈를 대면하는 인생 첫 순간이다. 


모든 곡이 생소했었지만 일곱 곡 중 유일하게 들어본 곡이 있었다. 


'어? 이거 디즈니 영화 볼 때 나오는 그 노래 아니가?'


다행히 CD 표면에 노래 제목은 있었다. 이제 알파벳 겨우 아는 아이가 본다한들 무슨 말인지 해석도 안되고 그나마 아는 단어, 특히 'Disney'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어? 분명 그거 맞는데...' 


그 유명한 월트 디즈니 오프닝 영상 (어릴 적 그 시절의 그 영상은 아니다.)


변주되긴 했지만 멜로디는 분명 디즈니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그 음이 맞았다. 아이들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마성의 선율. 환상의 나라, 피터팬과 팅커벨이 산다는 원더랜드에 날 데려다줄 것 같은 설렘에 마음이 벅차오르게 하는 마법의 음악. 영화관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나오면 모두가 침묵하게 되는 바로 그 곡이었다. 


'6분? 우와 이 곡이 이렇게나 길었었나? 30초도 안되었던 거 같은데.' 


노래 제목 옆에 같이 각인된 플레이 타임을 보고 살짝 어리둥절했다. 왜 그렇게 긴지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어렸던 난 그 음악이 마냥 좋았다. 달랐지만 신났고 알지 못했지만 좋았다. 막연히 재즈란 게 이런 건가보다 하며 들었다. 지금도 딱히 재즈에 대한 조예가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마음은 나이를 먹어도 변함없다. 'When you wish upon a star'. 디즈니를 대표하는 이 곡이 내가 처음 채집한 재즈 곡이다.


이렇듯 음악을 채집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카페, 술집, TV 프로그램, 영화, 인터넷 할 거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의 멜로디가 유난히 귀에 쏙 잘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곡의 제목을 찾는다. 예전보다 지금이 나은 건 스마트폰으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도랄까. 그렇지만 그도 한계는 명확하다. 한 곳에 머물면 호불호와 상관없이 다른 세상을 알 수 없듯 듣던 곡만 듣다 보면 다른 뮤지션을 알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는 좋은 재즈 음악을 더 알고 싶어서 재즈바에 간다. 혼자서든, 연인이든, 친구든, 누구와 함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날은 꼭 갈래' 이렇게 마음먹으면 그 날 저녁은 모든 스케줄을 기필코 비워두고 홍대까지 나선다. 혼자 가면 월요일에 간다. 월요일의 클럽 에반스에는 'Super Jam day'가 열린다. 신진 재즈 아티스트들에 무대에서 연주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날이다. (이미 지난 에세이에서 거의 같은 얘기를 다룬 적 있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Jam 연주를 하기 위해선 연주자들이 다들 아는 곡 위주로 해야 하니 [Real Book]이라는 재즈 모음집에 수록된 명곡만 허용한다. (특정 유명 뮤지션으로 대상을 달리 제한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연주자들은 잘 알지만 나 같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재즈 명곡들을 많이 들을 수가 있다. 그래서 월요일의 클럽 에반스는 내게는 음악 채집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물론 월요일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날이다. 주말은 그 어느 날보다 제일 멀리 떨어져 있고 일은 지근거리에서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니 월요일 밤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음악을 듣다는 것이 직장인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집에 돌아오면 거의 12시다. 한 주 동안 처리해야 할 업무에 대한 부담도 있다. 심지어 당일 저녁 8시까지 일하고 바로 재즈바로 오기라도 하면 다음 날 좀 피곤하다. 다행스럽게 내 업무가 지난 삼 년 동안 주 40시간을 크게 넘어선 적이 없었고 작년부터는 유연근무제로 업무시간 조정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남들에 비해 부담이 덜 하다. 


재즈 명곡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심 외에도 월요일의 재즈바를 즐기는 건 음악 채집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진다. 힐링이 된다. 편해진 마음에 이불속에 파묻혀 잠을 청하면 그 날 들었던 음악을 꿈속에서 복기라도 하듯 유난히 인상 깊었던 멜로디가 머릿속을 채우고 그러다 잠이 든다. 그러고 아침이 되면 예쁜 디즈니 영화 한 편이라도 본 것 마냥 평소보다 좋은 기분으로 눈이 떠진다.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 번 월요일 저녁을 나를 위해 비워둔다. 



Introduction of Song
곽윤찬 트리오의 'When you wish upon a star' @ MBC 김동률의 포유

디즈니 만화영화의 오프닝으로 더 잘 알려진 'When you wish upon a star'는 1940년 영화 '피노키오'의 주제곡으로 그 해 '아카데이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디즈니 영화의 오프닝 곡으로 삽입되어 더욱 알려졌으며 많은 가수와 뮤지션들에 의해 사랑받고 있는 세계적인 명곡이다. 아는 사람이면 다 아는 피노키오 이야기대로 이 노래의 가사 역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특히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재해석되었는데 워낙 버전이 많고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가 없어 취향대로 듣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는 곽윤찬 트리오가 연주한 버전이 제일 좋았다. 멜로디를 최대한 살리면서 재즈 특유의 경쾌한 리듬감을 가미해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다. 원곡을 먼저 듣고 재즈풍으로 편곡된 버전들을 들어보자. 원곡은 80년 전 버전이라 현대적 느낌을 담은 버전을 먼저 듣고 감상하면 상대적으로 올드하고 밋밋하다. 하지만 원곡도 그 나름의 매력은 여전하다.


Pinocchio OST, When you wish upon a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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