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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Oct 12. 2021

견생 185일차, 암컷 강아지의 중성화 수술

(10/4, 견생 6개월차) 우리 집에 아기 풍산개가 왔다

두 달쯤 전부턴가.. 병원에 가면 원장님이 물어보셨었다.

"계속 데리고 계실 건가요?"


처음엔 시골로 가려던 강아지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물어보신 거였다. 앞으로 쭉 함께 지낼 거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럼 이다음에 고려할 수 있는 게 중성화 수술이라며 안내해 주셨다.

암컷 강아지에게 중성화 수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고, 첫 번째 발정기 출혈이 오기 전에 하는 게 차라리 경험하지 않고 나을 거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중 대형견은 그 시기가 소형견보다 늦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을 좀 더 갖겠다고 하고 사례와 자료들을 더 찾아보고 있었다.


중성화 수술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언제 그 시기가 올지 몰라 발정기 때 입힐 팬티도 미리 사뒀었더랬지.. 너무 예쁜데 앞으로 입힐 일은 없을 듯...






내가 알기로 중성화 수술은 필수가 아니다.

집 안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경우 암컷, 수컷 모두 발정기가 오면 견주가 좀 귀찮아지기야 하지만 관리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암컷은 여성의 생리통과 비슷한 수준이라 예민해진다고 하고, 수컷은 붕가붕가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는데 그건 뭐 수컷들은 중성화를 하든 안 하든 계속하는 것 같고...

혹시라도 수술을 하지 않은 강아지들이 산책하다가 불의의 사고가 날까 봐? 중성화 수술을 하기엔 이건 견주의 불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겐 이유가 되지 않았다.





중성화 수술을 결심하게 된 계기


원장님께 이야기를 듣고 사례와 자료를 찾다가 해외 논문까지도 가봤는데 파고들기엔 너무 어려웠다. 병원에서도 하시는 말씀은 발정기 때마다 자궁이 반복적으로 늘어났다 줄었다 하면서 생길 수 있는 자궁 축농증과 유선종양 등의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이 크다고 하셨다. 유튜브나 카페 등에서도 중성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주로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와 본인들이 개를 키우며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유가 그러한 질병을 조기에 처치하지 못해서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반대되는 의견으로는 질병 예방 차원이라면 사람도 미리 중성화를 하지 그렇냐는 말이 항상 따라다녔다.


사실 나는 강아지가 처음이라 그 병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고, 사람에게도 병은 조기에 발견해서 빨리 치료하면 되지 않냐는 입장이라 한 번이라도 더 의사 선생님을 뵈어야지 싶어 구충제도 일부러 병원에 가서 먹이고 있던 참이었다. 해서 질병의 조기 예방 차원에서는 사실 반반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성화 수술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도 여기저기를 들여다봐서 출처가 어디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특히나 암컷 강아지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주어야 하는 이유가 적힌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대도시 중에서도 아파트만 빽빽한 동네에 살아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동네에 개장수들이 돌아다니는 곳들이 있다. 그런 동네에서는 개를 유괴하거나 밤에 잘 때 훔쳐가는 일들이 왕왕 있는데, 그때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암컷 강아지들은 개농장으로 팔려간다고 한다. 그리고 뜬장에 갇혀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개는 가임기가 죽을 때까지임)


그 내용을 읽고서 너무 놀랐고,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저 내용이 왜 그렇게 마음속 깊이 박혔을까 생각해봤더니, 할아버지 댁에서 키우던 개를 잃어버린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인가 싶다. 할아버지 계시는 시골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거의 우리 집을 거쳐갔던터라 이전에도 짧게는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데리고 있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갔던 아이들 중에 개장수들이 밤에 몰래 훔쳐가거나 낮에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데려가서 잃어버렸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저 댓글을 읽다가 우리 집을 거쳐가서 시골집에서 몇 년간 잘 지내던 풍산개를 3-4년 전 어느 날 대낮에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것으로 유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산 날의 몇천 배나 되는 여생을 지옥에서 지내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수술하는 김에 내장 칩도 넣어달라고 했다. 목에 달아준 외장 칩은 누군가 마음먹고 떼 버리면 그만이니 두 개를 다 달고 있으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2주 전, 심장사상충을 하러 가서 수술 날짜를 잡고 왔다. 오전 10시에 맡기고 오후 5시쯤 데려가서 다음날 드레싱 하러 다시 나와서 체크하고 일주일 뒤에 실밥을 풀면 된다고 했다.






D-1. 수술 전날

사월이는 하루 세 번 사료를 먹는다. 아침 7시, 오후 1시, 저녁 7시에 6시간 간격으로.

수술 9시간 전부터 금식이라 저녁을 먹이고는 11시쯤에 물그릇도 치웠다. 지금 생각하니 좀 더 먹일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아, 수술하고 나서는 당분간 목욕을 못할 것 같아서 낮에 목욕도 시켰다. 목욕하고 털 바짝 마르면 깔끔하니 너무 예쁨.



D-DAY. 수술 당일, 수술 전


아침을 먹이고 단지 내를 돌며 산책을 다녀왔다. 원래 아침엔 뒷산에 올라가는데, 갔다가 뒹굴어서 지저분해질까 봐 오늘은 단지 안으로 대체. 응가도 잘했다.



다행히 남편과 나 둘 다 쉬는 날이라 남편 차로 병원에 갔다. 난 뒷좌석에 앉아 사월쓰를 쓰다듬으며 갔지..

자기가 지금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차 탔으니까 문 열라고 해서 창 밖으로 코 내밀고 냄새 맡는 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을 보더니 좋다고 두 발로 서서 난리가 났다. 원장님 나오시니까 원장님 다리 잡고 또 두 발로 서서 좋다고 난리...

....앞으로도 좋아해야 할텐데....


진료실로 들어가 원장님께 수술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암컷 강아지의 중성화 수술은 정확히 말하면 자궁 적출술이고, 양쪽 난소까지 다 들어내는 수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양쪽 난소는 바로 위의 신장과 붙어 있기 때문에 그 사이의 근육을 잘라내야 하는데, 신장과 난소 사이가 얼마나 단단하게 붙어있는지에 따라 수술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하셨다.



* 풍산이나 진도 견종은 겁이 많아서 그게 사나움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월이가 사람 좋아하는 걸 보시더니 차라리 이게 낫다고 하셨음.







D-DAY. 수술 당일, 수술 후


아침 10시에 병원에 맡기고 저녁 6시 넘어서 데려왔더니 거의 열 시간 만에 보는 거라 반갑다고 왔다 갔다 한다. 평소 같았음 남편한테 갔다 나한테 왔다 열 번도 넘게 했을 애가 아픈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마취가 깨고 나면 놀라고 또 아파서 병원 사람들을 보고 으르렁 거리거나 짖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사월이는 깨자마자 그르렁거려서 좀 무서울 뻔했지만 곧 얌전해졌다고 한다. 링거 바늘이 걸리적거려서 물어 뜯기도 한다는데 뜯지도 않고 얌전하게 다 맞았다고.. 남편과 나를 만나고서 우릴 반겨주면서도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께도 꼬리 치는 걸 보니 앞으로도 병원 가는 것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안고 나서 보니 수술 부위 터지지 않게 솜 붕대로 싸고 압박붕대로 또 한 번 감싸서 칭칭 감겨 있었다. 짠..


원장님께서 내장 칩이 잘 동작한다는 걸 기계로 찍어서 보여주셨다. 왼쪽 어깨에 위치하고 있다는데 아무 자국이 없어서 여쭤보니 내장 칩은 바늘이 굵은 주사기에 들어있어서 주사 맞듯이 넣는 거라고 한다.

사월이는 오늘부로 등록 번호가 두 개인 강아지가 되었음!


수술 부위 덧나지 않게 일주일치 약을 아침저녁 12시간 간격으로 먹이라고 주셨다.


요 사진을 보니 어딘지 모르게 몸이 전체적으로 부은 느낌도 든다.

 

엄마가 사월이 너무 고생했다고 영양식 먹인다고 해서 부모님 댁으로 데려왔다. 황태를 물에 불려 소금기를 빼고 계란까지 넣어 끓인 황태 계란국. 호강한다 너...


내일 병원에 가서 드레싱을 해야 하는데, 내일은 남편이 출근이라 나 혼자 아픈 애를 데리고 운전해서 올 엄두가 안 나서 부모님 댁에 두기로 했다.(병원이 친정과 가까운 곳에 있음) 덕분에 사월쓰는 황탯국도 먹고 닭곰탕도 먹고 아주 호강했다. 내가 집으로 데려왔으면 그런 게 다 어딨어...




D+1. 수술 다음날


다음날 드레싱 하러 병원 가서 붕대를 풀러 보니 상처는 이 정도. 소형견 상처는 더 작던데 얜 중형견이니까..

다섯 바늘이 예쁘게 잘 자리 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원장님이 수술하려고 배의 털을 밀고 보니 배가 너무 깨끗해서 신기했다고 하시던데 정말 새하얗네... 보통 강아지 배에 반점들이 많던데 사월쓰 배에는 그런 반점들이 없다. 아기 피부 같아..


목요일까지는 병원에 매일 가야 해서 병원 진료를 보고 부모님 댁에 다시 데려가 놓고 왔다.










D+3. 압박 붕대 푸는 날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어서 압박 붕대는 풀고 옷을 입혀 주신다기에 기대했더랬지..

이게 웬걸.. 내복 입혀주셨음 ㅋㅋㅋ


환견복으로 찾아보니까 이게 병원에서 임시로 많이 쓰는 방법이었다. 압박 붕대가 두 겹인걸 이용해서 팔 구멍을 내고 니트처럼 쏙 입혀주셨다. 배 부분이 말려 올라가서 다리 구멍도 내볼까 생각했는데, 벗겼다가 다시 입히기 어려울게 뻔해서 시도하진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안 입는 옷으로 한 번 해볼 생각이 있지 나에겐...


나흘 뒤에 실밥 풀러 오기 전까지 집에서 하루 한 번 소독해주라고 소독솜을 넣어주셨다.


엄마는 내심 더 데리고 있고 싶으신 것 같았는데, 더 폐를 끼칠 수 없어 우리 집으로 슝슝-

이전까진 뒷좌석에 미끄럼 방지 시트를 깔고 앉혔었는데, 좌석에 그냥 두니까 서있다가 바닥에 떨어질 때가 있어서 하우스 훈련하려고 뒀던 소프트 켄넬을 내 차 뒷좌석에 설치했다.


처음엔 안 들어가려고 용을 쓰더니 아무래도 차가 흔들리니까 저 안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속으로 쏙 들어가서 누워있는다. 윙크도 찡긋-


점심시간에 병원에 다녀온 거라 나는 다시 일 모드..

아직까진 아픈지 뛰지는 못하고 어슬렁거리며 내 주변을 맴돈다. 잘 올라가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전에 쓰던 쿠션을 책상 옆에 뒀더니 그 위에 안착- 우리 사월이 너무 많이 컸어..


중형견 아가들은 움직임이 커서 내복은 곧 오프숄더가 되어버려서 늘어난 목 부분을 뒤로 당겨 쫌매줌.


요즘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활동을 멈춰서 내가 이렇게 심심한가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 인식표를 새로 만들어볼까 하며 사온 폼폼으로 만든 목걸이. 남편이 보더니 "샤머니즘 같아.."라고 했다. 목걸이도 알록달록한데 내복까지 다 늘어나서 거적때기 걸치고 제사 지내는 제사장 같다는 얘기인가 보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덩치가 커서 무서워하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데, 사실 사월쓰는 애기 티가 많이 나는데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꼬리 흔들고 배 보이고 누워버림.. 근데 그걸 한 번 본 사람이야 알지 처음 보거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일단 큰 개가 달려들면 그냥 무서우니까...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게 어떻게 하면 얘가 사람들에게 덜 무서운 애처럼 보일까 하는 거다. 그중 하나가 폼폼 목걸이!









D+7. 실밥 푸는 날


오늘도 쉬는 날이라 남편이랑 함께 병원에 방문했다. 오늘도 역시나 간호사 선생님 보고 좋다고 난리..

내복은 가위로 잘라서 벗겼다. 실밥 한 땀 한 땀 잘라 주시면서 예쁘게 잘 아물었다며, 그래도 안쪽에 피부와 근육 조직은 아직 완전히 다 붙은 게 아니니까 격하게 뛰는 활동은 당분간 자제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 중2 모드인가..









사월이는 수술하는 당일날에도 아무 일이 없었고 이후로도 별 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간혹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수술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고, 병원도 잘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견주의 몫이고 그 후의 결과 또한 감내해야 할 테니.






실밥을 풀기 전까진 격한 산책은 못했고 하루 한 번 정도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실밥 풀고 나서는 아침, 저녁에 단지를 도는 중인데 아무래도 사월이가 원하는 만큼 돌아다니질 못하니 지루한 모양이다. 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던지며 놀아주는 것도 안 하고 있어서 좀 짠하기도 하다.

그래도 수술한 곳이 다 아물기 전까지는 이렇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2-3주 뒤에 내외부 기생충 약하러 또 병원에 가야 하니 그때 상태 체크를 부탁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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