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목은 생각하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찾아보니 있었다.
후손들은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말과 글 문화의 기틀에서 성장하지만, 때로는 기성세대가 만든 것이 오히려 창의성에 대한 '라이선스' 낙인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문화권에서는 관대해서 한국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베껴서 성공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제목을 고민한 이유는 이렇다. 앞으로는 공개적 고민보다는 비공개적 고민이 더 많아서 대부분은 일기장에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아마 한 달 내에 이루어질 것이고, 내가 추진하는 많은 프로젝트가 DROP 될 것이다. 이어 나갈 수도 있지만 그 만한 능력이 될는지는 나 스스로도 확답할 수는 없다. 다만, 약속한 부분(크라우드 펀딩 만들기, 결제 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아예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마무리를 지어 놓으려는 심산이다.
뉴스를 보다 보면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나 역시 40대 후반이 되도록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덕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도 어느 정도는 상상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전세 사기나 악마 같은 인간들의 펼치는 가스라이팅에 희생되는 사람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고통이 너무나도 크다 보니 내가 아는 것보다는 더 클 것을 안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비유나 은유가 많을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게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쓸 것이다.
처가댁 식구 중 한 명이 유재품을 만든다. 우유를 안 사줘서 몇 톤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래서 내려가면 **우유를 몇 박스씩 들고 오는데 유통 기한 지낸 것이 생겼다. 우유 목욕을 해 보았다. 목욕이라고 해서 머리를 감는데 우유 자체가 물이 아니다 보니 샴푸를 써야 할지 안 써야 할지 난감했다. 작은 팩으로 되어 있어서 2개를 뜯으니 머리를 감은 느낌이 났는데 28개가 남다 보니... 그냥 샴푸를 쓰기로 했다. 샴푸를 쓰고 머리 헹굴 때 우유를 쓰니 그래도 10개 넘게 쓸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우유로 잘 씻기는 것 같았다. 조금 자신감이 생기자 욕조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우유를 팩에서 짰다. 살살 짜도 주변으로 우유가 약간 튀었다. 제대로 안 씻으면 우유 썩은 내가 날 것 같아서 다시 앉기로 했다. 몸을 씻을 때도 마찬가지로 비누를 써야 할지 난감했다. 우유 자체가 도브 비누랑 같지 않을까? 뭔가 미끌미끌하기도 하는데 비누를 쓴 것으로 간주를 해야 할까? 우유로 목욕을 하는 내내 고소한 냄새가 났다. 정말 기분 좋은 냄새였다. 다시 앉기로 했지만 아직 앉은 건 아니라 뒤돌아 거울을 보니 얼굴에 우유 방울이 튀어서 평소에 티브이나 유튜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재밌었다. 다시 앉은 후에 이래저래 우유를 짜다 보니 문득 왜 눈이 안 따갑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눈이 따갑지 않았다. 우유팩을 하나 더 뜯어서 눈에 부어 보았다. 전혀 눈이 따갑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몸에서 우유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물로 씻었다. 우유향은 많이 약해졌지만 그대로 났다. 기분 좋은 향이었지만 우유를 짤 때 고소한 그 냄새는 아니고 우유가 떨어진 곳에 마른 휴지로 닦고 나서 나는 냄새 그것이었다. 물티슈를 써야 할 그런 향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역하지는 않아서 그냥 물로만 계속 몸을 씻었다. 4시간 정도는 몸에서 자꾸 우유향이 났던 것 같다. 내 코가 무뎌진 건지 정말 우유향이 날아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한 번은 더 목욕해도 될 것 같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모르지만 왠지 피부가 좋아진 것 같다.
정말로 며칠 전에 우유 목욕을 했고, 그것에 대해 쓸 것이다. 그나마 나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뭔가를 볼 때 넓게 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그리고 하나의 일을 집중하면 빨리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일 단위를 작게 나누면 유연성이 커진다. 그러한 기법이나 방법을 누군가에게 전수하고 싶어 졌었고, 다른 분야를 다루 보니 대부분은 학문으로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시리즈는 조금 더 기술을 향하게 하고 programmer로 묶고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기술 공개는 자세히 하지 못하지만 홍보와 마케팅의 교집합이 있는 부분은 오히려 +가 되기에 공개도 하고 기업 구성원들과 향 후 진행 방향에 대한 논의도 했었다. 그러면서 항상 고려하는 점은, 또 어딘가에 있을 나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 좋아하고, 사기 많이 당하고,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수많은 보석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 뺏기는. 다양한 모습 중에 그런 모습을 가진 나에게 뭔가 남겨 주고 싶었고, 그것이 후세대에게 넘겨줄 무엇인가라고 믿었다.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은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퍼플렉시티에서도 브런치 크롤링을 많이 하고 또 우선순위도 위에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던 영향이 간다. 나는 개발자긴 하지만 기술 오픈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늘 더 고차원적 고민은 회사에서 하고 있고, 나머지 기술은 다른 사람들을 졸부로 만들어준 기술이기 때문이고, 그런 기술은 더더욱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줘서 기회주의로 은퇴할 사람보다는 함께 계속 일하며 치열하게 고민해 줄 사람의 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을 테고 또 그것이 맞지만.
사람 클래스를 나누는 인간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연료로 써서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된 후 아프리카 빈민이 아닌, 자국민에게 조금만 신경 썼더라도 불쌍한 사람들이 TV에 아직도 나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능력도 안되고 앞으로 더 해 나갈 용기도 없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포지셔닝하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내 삶도 맞다는 정신 승리를 해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호하게 말하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돼지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더 돈 많고, 더 뛰어난 사람, 대표적으로 일론머스크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푸틴이나 시진핑, 김정은이 앉아서 놀기만 해서 그런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다. 다만, 일하는 사람은 '봉기' 할 용기를 늘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하고 국가도 그런 연습을 지원해 줘야 한다. 광화문에 집회가 없으면 만들어 줘야 한다. 좌/우 편향적 기사만 내는 언론부터,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광화문으로 와서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하며, 1인당 시위 금액을 지원해줘야 한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수많은 시위가 일어나야 한다. 잦은 시위는 과격하지 않은 시위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우유 목욕처럼, 시위 지원 주장처럼 낯선 경험 속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밀어 넣는다. 나의 경우 내가 원해서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낯선 경험 속에 또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 수 없이 많다. 자살자도 너무 많다. 그런 환경에서 내가 줄 수 있는 보답은 그냥 내 삶 역시 피곤하고 괴롭게 두는 것이다. 다만, 차이는 분명하다. 나는 견딜 수 있는 고통이고 그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은 비 온 뒤 굳는 땅처럼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 현실이나 감정에 무뎌진다는 것일 수도 있으나 강하다는 것은 자신도 버티지만 다른 사람에게 우산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산은 본인의 눈물도 내리는 비와 함께 흘러 보내며, 지키는 사람의 웃음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살다 또 떠났다.
그래. 이 사실을 알면, 어른이 된 것이다. 나의 낮보다 아름다운 밤에 있는 그대들에게 고하노니, 부디 살아서 아침을 맞이하길 바란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찾지 못한, 낮과 밤조차도 구분 못하는 어리고 불쌍한 친구들을 위한 우산이 되어 주길 바란다. 당신은 그렇게 땅에 내려온 천사니까.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람을 돕는 이유가 그렇다. 죽을 때 들고 가려고 했던 돈의 액수만큼, 지옥불에 탈 것임은 자명하다. 마치 개미가 인간을 신으로 생각하듯. 우주라는 개념을 배우지만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100개 국어를 할 수 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한 사람과 대화할 1개의 언어면, 충분하고 1개의 레스토랑이면 충분하다. 함께 여행할 여행지 1개... 그런 1이 쌓여 세상을 이룬다. 24시간 종전을 장담했던 트럼프도 3년 7개월 전쟁을 아직도 못 끝내고 있다. 인간은 비루하고 아무것도 아니다. 작은 곳에 만족하는 것이 맞다. 2018년의 다음 단어를 다시 소환해 본다. 그리고 한 마디 던지고 싶다.
소확행
법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느끼는 소확행을 판단하거나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류에서 사라져야 할 인간이다. 언젠가 스타트업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행복조차 돈이 없는 행복이라고 말하는 인간을 만났었는데. 지인이라도, 죽어도 단 1의 슬픔도 없을 것임을 말해둔다. 사실, 진작에 마무리했어야 할 인생이다. 어둠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들의 소확행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막상 살아보니 판단하는 인간이 60%는 넘어서 그러덩가 말던가. 란 마음도 있기도 하다. 내 인생 테두리 안에만 안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