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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Feb 24. 2017

연인 같은 친구는 안 돼?

내 친구를 당신 마음대로 내 연인으로 둔갑시키지 말아줄래요


"남자친구하고는 헤어졌어?"

말 없이 순대국을 먹던 부장이 대뜸 말을 걸었다. 아이고 헤어진 지 오래예요 하고 밥을 한 술 떠 먹는데 부장은 이때다 싶었는지 그럼 B랑 잘 해보면 되겠네 하고는 쩝쩝대며 밥을 먹었다.


"부장, B는 그냥 친구입니다."

"아니 왜 친구 하다가 애인도 하고 그러는거지"

"아뇨 부장… 저희는 그런 사이 아니예요."


B는 5년 지기 친구다. 내 소개로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채 안 됐다. 나이 많은 남자들 사이에 으레 있는 참견이겠거니 하고 지나갔는데, 며칠 뒤 B가 내게 날 선 카톡을 보냈다.


-혹시 부장이 너한테 헛소리 해?

=아니 왜. 무슨 일 있어?

-자꾸 나랑 너랑 엮으려고 하잖아.


B가 말하길, 부장은 너도 이제 부모님께 여자친구를 보여드려야지 않겠냐며 나와 잘 해보라는 식으로 밥 먹는 내내 B를 괴롭혔다고 했다. 불쌍한 B는 부장의 말을 듣다 못해 "세상에 둘이 남게 되면 저는 혀 깨물고 죽을 겁니다"라며 나보다 죽는 쪽을 선택했다고 했다. 부장은 그 뒤로는 B나 나에게 서로를 엮으려는 말은 안 했다.




A는 나랑 죽이 잘 맞는 친구다. 내가 뱉은 헛소리는 A가 받아쳐 개드립이 되고 우리가 주고받은 이야기는 3자에게는 덤앤더머 급의 만담이 된다. SNS에서 주로 시작되는 우리의 만담은 서로의 SNS 친구들에게 공개된다. 


하는 이야기라봤자 먹는 것, 보는 것, 정치, 페미니즘, 게임, 책, 카메라 등등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뿐인데 어떤 사람은 우리를 못 엮어 안달이다. 


-아니 이 분들은 왜 이렇게 다정하게 대화를 나눠

-누가 보면 둘이 사귀는 줄 알겠네

-이 분 있는 곳엔 항상 저 분이 있네

-둘이 무슨 관계야?

-솔직하게 말 해 괜찮아



제발 그만 해 주면 안 될까?


당신들이 타인의 인간관계에 관심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본다.


첫째, 이것은 나의 인간관계다.

내가 누굴 만나든 누구랑 친구를 하든 누구랑 연을 끊고 척을 지고 원수처럼 으르렁대든 당신이 상관할 것이 아니다. 내가 실수를 해도 내 탓이고 로또를 얻어도 내 운이다. 조언을 구한 적도 없고 조언을 구할 리도 없고 조언을 구하기 전 까지는 절대 훈수두지 말아야 한다. 


둘째, 내 연인은 내가 결정한다.

잘 어울리는 이들을 만나면 내심 아 잘 됐음 좋겠네 하고 생각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연인은 그들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연인을 결정하는 것도 오직 나 뿐이다. 


셋째, 당신의 오지랖은 내 인간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장이 B와 내게 서로 잘 해보라고 말을 했을 때 우리 사이가 이전보다 더 돈독해졌을까?

제 3자가 A와 나를 두고 사귀는 사이인데 아닌 척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하라고 했을 때 A와 내가 더 서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부장의 간섭 이후로 나는 B와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도 눈치보여 피하게 되었고 B도 마찬가지였다. 

A와는 어땠을까? 다른 이의 눈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친밀했던 관계는 은밀해지거나 혹은 소원해지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다.  




당신들은 대체 왜 남의 연애에 관심을 갖는가. 네 나이쯤 되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지,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아직도 많나 싶어서 손이 절로 이마에 닿는다.

연애는 성장 과업에 속하지 않는다. 그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성장 과업은 진학 졸업 취업 연애 결혼 출산같은 것들이 아니다. 성장 과업은 몇 살때 걸음마를 떼고 몇 살에 배변훈련을 마치고 몇 살에 셈을 터득하는 등등의 것들이다. 성장 과업은 사회가 정한 '정상'의 범주에 속함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써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연애 안 한다고 사회생활 못 하나? 결혼은? 출산은? 취업은? 졸업은? 


남들이 다 한다고 나도 꼭 해야 하는 것은 없다. 게다가 대상의 나이가 스물 서른 마흔쯤 되면 나와 비교할 사람 마저도 몇 되지 않는다. 비교할 사람도 없는데 왜 자꾸 비교를 하나. 그렇다고 나랑 김연아를 비교할 것은 아니지 않나. 당신과 박보검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처럼 말이다. 

하긴 김연아나 박보검도 연애는 안 하더라.


타인은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에 대해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관심있는 건 내가 뭘 안 하는지인 것 같다. 연애를 안 하는 것, 용서를 안 하는 것, 연민을 갖지 않는 것, 결혼을 안 하려는 것, 아이를 안 가지려는 것,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것, 희생하지 않으려는 것.

사랑과 용서 연민과 희생 부양과 보육은 여성의 성장과업이 아니다.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을 왜 내게 강요하는지, 댁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분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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