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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Mar 03. 2021

아주 찰나의 낭만

다만 기억은 오래 남기로 해요


아무리 망한 연애라도, 아주 찰나의 순간 정도는 영영 잊고싶지 않은, 로맨틱하고 소중한 기억이 하나 쯤은 남는다. (아니라면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군요)


당신과의 연애-물론 당신과의 연애가 망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에서도 그랬다. 우리가 아직 서로를 특별한 관계로 여기기 전, 몇 번 당신의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가곤 했다. 같이 커다란 모니터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수다를 떨었고, 당신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다가 내가 재밌게 할 만한 게임을 골라주고는 내 엉망진창인 플레이를 보면서 서로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리고 그 날도,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 방에서 각자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마주보고 앉아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보컬레슨을 받는다는 이야기, 무슨 노래를 연습하냐는 이야기, 제목을 말해줬는데, 나는 잘 모르는 노래라서. 한 번 불러줄까요?


좋죠.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눕다시피 앉아서 노래를 듣다가, 손을 마주잡고 만지작대다가, 노래가 2절로 넘어갈 즈음, 몸을 일으켜 네 어깨와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가장 가까이서 당신의 노래를 들었다. 조금 낮은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당신의 음색은 내 귓가에서 달콤하고 귀여운 가삿말을 노래했다. 그게 내 입꼬리를 잡아당기기도 했고, 아무도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의 온기를 온 몸으로 느꼈다. 


이 세상에 아주 우리 둘 뿐인 듯 한, 온전히 외로우면서도 완벽하게 충만한, 그런 만족감이 나를 가득 채웠다. 

노래를 제법 잘 하는 당신이었기때문에 그 순간이 더욱 낭만적이었던 게 아닐까. 그저 귀엽기만 할 수도 있던 순간이, 황홀한 순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던 이유는 당신의 감미로운 목소리 덕분이었다.


그 후로도 종종 당신은 노래를 불러주었고, 보컬 연습을 하는 동안 녹음해 둔 파일을 전해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늦은 밤 나란히 누워서 온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문득 당신의 노래가 듣고싶어 청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노래, 저기 의자에 앉아서 불러줬던 거, 한번 더 불러줘요.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기로 한 후에 당신이 내게 불러준 노래는, 그 전보다 더 특별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때만큼 좋았다. 당신의 부드러운 음색도, 나의 말랑말랑했던 마음도.


사랑이라는, 매번 마법같은 감정에 우리는 바보같이 매혹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영락없이 배신당해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좁은 방의 문을 닫고 들어앉는다. 행복한 결말을 보장받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언제나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하고, 우리는 그렇지 않을거야 하는 자기기만적인(!) 믿음으로 반복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어떨 지 몰라도 나같은 사랑꾼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인생의 과업(?).


스포티파이가 추천해 준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당신이 불러준 노래가 흘러나와서, 언젠가 다시 만나 맛있는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지만,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을 날이 올까 하는 의문을 남긴 채 우리는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해보니 당신이 불러준 노래 두 곡 모두 별에 대한 내용이었구나. 야경 보러 한밤중에 훌쩍 떠나자는 이야긴 몇 번 했었는데 막상 멀리 떠난 적은 없던 우리. 그래도, 손을 맞잡고 당신의 노래를 들었던 그 날 만큼은 마음 속에서 작은 은하수가 생겨났던 것 같아.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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