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이가 어느 순간부터 '고모 미워'을 입에 달고 산다.
미디어 시대에 살면서 현대인들은 수많은 아이디와 닉네임, 대화명을 사용한다.
나 또한 씩씩공주, 꼬마차 모모, 심지어는 급하게 만들어 쓴 귀신잡아먹기라는 닉네임까지도 써보았다. 아무튼 온라인 상의 나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꼬야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꼬야는 까꿍이가 지어준 나의 별명 중 제일 이쁜 별명으로 '고모야'라는 말을 까꿍이 식대로 부른 말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해 환자복을 입고도 복도 의자에 앉아 고모를 애타게 기다리며 엘리베이터 문만을 살피다가 내가 내리자마자 '꼬야'하며 달려와 안겼던 까꿍이,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그 복도에 있던 간호사들과 환자, 보호자들은 대체 꼬야가 누군데 저렇게 반가워해? 했다고 한다.
그러던 까꿍이가 어느 순간부터 '고모 미워'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나도 '까꿍!!! 정말!! 고모가 이놈! 한다!!'를 달고 산다.
하지만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늘 양보하고 까꿍이를 잘 챙기는 콩이가 기특하고 혹시 마음이 상할까 비밀 데이트를 해주곤 했는데 최근에는 콩이가 먼저 비밀을 제안했다.
"고모, 나 비밀하고 싶어. 찡코 네로 커피 마시러 가자."
"콩아, 왜? 유치원 이제 빠지면 안 되는 데에."
"근데, 나 찡코도 보고 싶고, 바람도 쐬고 싶고...." 하며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까꿍이에게 어린 나이에 엄마 품도 양보하고, 이제는 할머니 품도 양보해야 하는 콩이, 그래서 고모에게 의지하고 말이라도 조곤조곤 할라치면 금세 질투쟁이 까꿍이의 방해공작이 들어오고, 요즘 콩이의 일곱 살 인생이 어지간히 힘들 것이다.
그걸 알아서였을까?
콩이 입장에서 신경을 쓰다 보니, 나는 까꿍이를 너무 쉽게 혼내기만 했다.
"누나 때리지 마", "차 안에서 움직이면 다쳐.", "어허, 앉아 있어." "누가 할머니한테 그래?"
까꿍이가 왜 그러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으면 물어라도 봤어야 하는 건데 난 물어보지도 않고, '안돼. 하지 마'를 너무 쉽게 내뱉고 있었다.
까꿍이의 "고모! 미워!라는 외침 속에 많은 서운함과 질투가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콩이맘이 해준 말이 생각이 났다.
"고모, 까꿍이가 누나 비밀해주는 거 다 안다고 말하더라고요."
"어머, 어떻게 알았데?"
"느낌이 그랬데요."
느낌으로 알아 말은 못 하고, 얼마나 서운 했을까? 극성맞은 동생 덕에 늘 양보만 하는 콩이에게만 신경 쓰다 보니 까꿍이의 본심을 읽지 못했던 나, 정말 오랜만에 까꿍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갔다.
"까꿍아, 오늘 우리도 비밀하자. 맛있는 것도 먹고 헬로카봇도 사러 가자."
깡총깡총 뛰며 환하게 웃는 까꿍이의 미소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리고 까꿍이가 점심을 먹으며 뜬금없이 말했다.
"고모, 나 오늘 너무 행복해."라고.
아무리 여섯 살 천방지축 까꿍이라도 느낌으로 알았다.
그저 좋고 반가웠던 꼬야가 누나에게 더 신경이 가 있다는 걸.
콩이의 일곱 살 인생이 안쓰럽고 대견해도, 까꿍이의 여섯 살 인생도 행복한 날이 많아지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