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극복 일기 part 4.
퇴근길, 복잡 미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 그래도 오늘은 일 할 때는 전혀 생각 안 나더라. 장하다'라고 자신을 칭찬을 하며, 나를 다독였다.
'그래, 아직 괜찮을 리 없잖아. 너무 무리해서 억누르진 말자'. 더 펑펑 울어야 미련이 없어질 것 같은데, 울다가 중간에 멈춘 기분이 든다. 아니다, 화를 덜 냈던가? 그렇다고 마냥 언제까지 허우적거릴 수도 없다. 굵고 짧게 애도하고 매듭 지어야지.
잡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너무 오래 머물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최근 깨달은 점 중에서 공개 가능한 내용을 써보려고 한다.
#01
사랑과 일상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았다
연애는 마치 직장생활과 비슷하다. 일과 삶의 균형, 근무시간과 퇴근 후의 균형이 중요하듯이, 사랑과 내 일상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나는 내 일에 몰두했다고 착각했었다. 그래, 업무 자체를 허투루 하진 않았지. 근무 시간에는 우리 각자 일에 몰두했다. 그동안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점엔 1도 서운하지 않았다.
퇴근 후가 문제였다. 저녁 시간, 그는 공부를 했고, 나는 그를 기다렸다. 본업 외에 나만을 위한 일에 더 몰두했어야 했다. 강아지처럼 그를 기다리지 말고, 기다리지 않는 척 애쓰지 말고, 진짜 기다리지 말고 나도 나만을 위한 다른 일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아이맥을 질렀었다. 아이맥 가지고 놀면서 다른 걸 해보려고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 근무시간에 일 하느라 전혀 그 사람 생각이 나지 않았던 만큼 몰두하지는 못했다. '퇴근길에 연락하고, 집에 들어가면 연락 두절이잖아, 나 심심하고 서운해'라는 생각의 꼬리를 끊지 못했다.
그 사람이 나를 덜 신경 써주고 자신의 개인 시간을 중시한 탓도 있지만, 내가 사랑과 일상의 균형을 이루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던 탓도 크다.
#02
나는 나 자신과 연애했어
자존감이 낮은데 자신에게 관심이 많아서 자기애는 있는 사람이다. 자존감은 높고 낮음보다, 조금 낮더라도 기복 없이 유지되는 게 더 중요하다. 자존감이 과도하게 높으면 언제나 높게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하다.
이런 나는 내 존재감을 확인받는 데에 민감하다. '내가 나를 보듬어줘야지'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지나간 사람을 잊는 시간 보다, 그 사람과 연애하면서 행복했던 나를 보내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성향은 연애할 때도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이별 후에 깨달았다.
헤어지기 직전, 나는 나 자신과 연애하고, 나 자신과 놀고 있었다. 위에 썼던 1번 내용을 나름 적용해보려 애썼던 결과인 것 같다. 건강하게 반영되지 못한 결과물이었지. 즉, 혼자 연애했던 거다. 그 사람이 원하고 나도 원하는 것을 둘이 같이 하면서 놀아야 하는데, 그 사람은 원하지 않는데 나만 원하는 것을 하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그때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보면서 당황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겠지. 내 딴에는 내가 나를 다독이려고 했던 일이지만, 그 사람에겐 부담으로 느껴졌겠지.
#03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차가워져야 하는 아이러니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어야 했다. 나한테 그 사람이 전부가 되게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 그 사람 선택 하나에, 말 한마디에, 메시지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어야 했다.
친구와 적당한 거리를 두듯이, 애인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자. 친구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고, 너무 안 좋은 소리를 하며 몰아세우지 않듯이, 애인에게도 그렇게 하자. 친구에게 관심과 치유를 갈구하지 않듯이, 애인에게도 그렇게 하자. 친구의 개인 시간과 목표를 존중하듯이, 애인에게도 그렇게 하자. 어설픈 생색내지 마. 각자 인생과 미래는 자신이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 기대를 버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10가지 단점보다 1가지 장점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동성 친구와는 잘 해오던 거리감 유지를 애인과는 왜 서툴렀을까.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어야 하는 부분은 왜 관대하게 넘어갔을까. 그 사람을 좋아하던 감정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나니, 그땐 몰랐고 그러지 말아야 했던 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아, 내가 그때 너무 쉽게 넘어가 줬구나.
아, 의견을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구나.
아, 내가 화를 더 냈어야 했구나.
아, 더 냉정했어야 했구나.
내가 내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렸구나.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진득하게 지켜봐 줄 여유 혹은 그릇이 부족했구나. 무슨 일을 겪든 늘 결심한다. 이번 계기로 더 성장해야지. 더 나아져야지. 더 괜찮아지겠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