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씨는 누구인가?
중년. 여러분은 중년인가요? 맞다면 왜 인가요? 아니라면 어째서 아닌가요?
아기는 자라서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자라서 청소년이, 청소년은 청년, 청년은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인은 자라지 않고 나이만 들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청년이 되기까지 19년간 4단계의 시기를 거치는데, 34세 청년*(청년기본법상 청년의 마지막 나이)이 65세 노인(노인복지법상 노년이 시작되는 나이)*이 되기까지 30여 년은 중간 단계가 없습니다. 이 30년가량을 우리는 중년(中年)이라고 부릅니다. 한자도 참 재미가 없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중기를 뜻한다고 해서 中(가운데 중)을 씁니다.
우리는 방금 35세부터 64세까지가 중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정해야 할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방금 전 중년의 정의는 법 조항의 일부에서 가져온 것일 뿐 나라마다,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정부 부처마다, 집단마다 중년의 정의를 다르게 합니다. 대한민국 국고 보조금 사용 기준으로는 30세부터 중년입니다. 사랑의 교회 청년부는 만 37세까지입니다. 종교 화합을 위해 서울의 어느 사찰 기준도 드리겠습니다. 봉은사의 청년회는 45세까지 입니다. 청년창업지원금은 만 39세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쯤이면 대체 중년이 어떤 시기를 말하는 건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중년을 정의하는 공통된 기준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제멋대로 중년을 40세에서 64세까지로 정하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너는 네가 중년인것 같으냐.”고 물었을 때 대충 불혹정도가 되면 “네, 맞습니다.” 하더라고요. 놀랍게도 통계청 기준의 중년 구간도 40세~64세입니다.
2022년 8월 통계청 조사 기준, 대한민국 총 인구는 51,558,441명으로 약 5,100만 명입니다. 이 중 40세에서 64세까지의 중년 인구는 2,100만 명으로 무려 40%에 육박합니다. 숫자 없이 그래프의 모양만 보아도 전 연령의 중심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불룩합니다. 인생에서의 중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입니다.
중년은 가장 많이 일하고, 소득이 높은 연령대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은 태어나 죽는 날 까지 생애주기 동안 흑자보다 적자를 더 많이 냅니다. 살면서 적자를 내는 동안에는 사회와 가정이 비용을 대신 감당해줍니다.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시기는 28세부터 60세까지인데 이들이 사회적 비용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것입니다. 젊은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 우리가 일하는 동안에 낸 세금이 각종 복지로 쓰이는 것이 예입니다.
임금 소득은 40대에, 자영자 노동 소득은 50대에 정점에 달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말하면 4050은 연 5,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 구간입니다. 근로/사업자 전체 소득 평균은 약 4,000만 원, 중앙값은 3,300만 원으로 연 5,000만 원 이상이면 소득을 5개 분위로 구분했을 때 4, 5분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소득 중 약 70%를 지출합니다. 한 마디로 돈도 가장 많이 벌고, 세금도 가장 많이 내서 가정과 나라를 먹여 살리는 시기가 바로 중년입니다.
덧붙이자면 가장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연령인 만큼 소득 격차 또한 가장 심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해당 연령 구간 안에서만 소득을 계산하면 평균 소득이 4,400만 원인데 반해 중위값은 2,400만 원으로 근로자 전체에 비해 평균과 중위값 차가 큽니다.
대한민국 총 2,100만 가구 중 중년 가구주/원이 포함된 가구는 약 1,300만으로 전체 가구의 64%에 육박합니다. 이 가구들은 주로 아파트 또는 단독 주택에서 부부 + 자녀가 함께 살다가 자녀가 25세~30세 정도가 되면 독립하여 부부만으로 구성된 가구로 변화합니다.
중년기 내내 나이가 들수록 주택 소유 비중은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이를테면 40대 초반 가구주의 39%가 주택을 소유하지만 60대 초반 가구주의 주택 소유 비중은 45%가 넘습니다. ‘저 많은 아파트와 집들의 주인은 누구고 누가 살고 있는 걸까?’ 궁금해 본 적이 있다면 ‘중년이 중심인 어느 가정’이라 답해도 좋습니다.
가정의 중심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일까요? 40-64세 인구는 높은 소득과 자산에 비해 여유가 없는 연령구간이기도 합니다. 수면시간이 가장 짧아 8시간을 채 못 자고, 여가를 가장 즐기지 않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유산소 운동률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중증 질환 발병률이 높아집니다.
대인관계 및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있어서 절정기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세계가 가장 덜 궁금해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정한 시기이고 이미 사회 속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너무 잘 지내서일까요? 구글(Google)과 네이버(Naver)에서 사용자들이 중년에 관해 검색한 비율은 다른 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물론 엄마, 아빠, 아줌마, 아저씨, 사장님, 부장님, 과장님, 차장님, 책임님, 선임님, 대표님, 사모님 등 사회적인 역할을 검색어에 포함했을 때 결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특정 세대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나 어려움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 주는 청년, 노년기와 달리 중년을 대하는 태도는 미묘하게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후에 외로움에 관한 고민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합니다.
중년에 관한 특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훨씬 많이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다른 연령 구간에 비해 가장 높은 세대이고, 경제적 지위나 연령에 따라 차별을 느낀다고 생각하면서도 성차별은 가장 적게 느낍니다. 가사 노동 비율이 가장 높고, 은퇴 후에도 가사 노동에 쓰는 시간이 많은데 약간의 습관과 자식 세대의 가사노동 부담을 이 세대가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많이 벌고 본인 수입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지출도 많아 자금과 시간 여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중년이 정말 중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기틀이 잡히던 과정과 경제성장, IMF 사태 등 사회/경제적 풍파를 모두 겪었습니다. 그만큼 상처도 많고 내적인 힘도 강한 세대입니다. 청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중간 단계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이자 영향력이 큰 세대인 거죠. 엄마, 아빠가 행복해야 가정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은 중년이 행복하고 여유로워야 사회 전체에도 그 넉넉함이 스밀 수 있다는 말로도 쓸 수 있습니다. 바쁘고 피곤할수록 억지로라도 틈을 내 나 자신을 돌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중년과 세대라는 말을 본문에서 반복해서 사용했지만, 나이나 세대로 묶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연령이 그렇습니다만 인생의 방향성과 가치관, 가족 구성에 따라 생활양식이 본격적으로 다양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안고 있는 고민과 행복의 종류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희동 산책>은 중년을 나이로 묶거나 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여 집중 양육기에서 벗어나 인생이 다시 새로운 시기로 접어든다고 느낄 만한 분들을 “연희씨”와 “연남씨” 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가정과 직장, 주변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행복하고 또 정신없이 피곤했을 “연희씨”와 “연남씨”가 생활에서 여유와 활력을 누릴 수 있을 방법들을 지속해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당분간은 #건강 #커뮤니티 #배움 #일자리 라는 키워드로 다가가려 합니다. “연희씨”와 “연남씨”가 가정과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느라 잠시 미루었던 것들을 다시 삶으로 불러들이는 연습을 함께 하면서 자주 행복하고 설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