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지금쯤 브런치북 수상작이 결정되어, 당선 작가들에게 연락이 갔을 것이다. 계약을 진행하고, 수상작에 문제가 없는지 최종 검토하려면 최소 1주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상작에 대한 정보가 미리 알려지면 안 되기에 관계자들은 엄중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맘놓고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당선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매년 브런치북에 응모해왔다. 늘 수상을 기대하며 응모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수상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내년도 습관처럼 또다시 응모할 것이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처럼 말이다.
수상작이 발표될 때면 브런치는 늘 어수선해진다. 당선된 소수의 작가들은 그동안 숨겨왔던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고, 반대로 수상하지 못한 대다수의 작가 중 일부는 아쉬움과 때로는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는 의지가 꺾인 듯 글을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연말의 바쁜 일정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분위기는 그렇다.
나는 이에 대해 한 가지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수상 발표로 인해 침울하거나 슬픈 작가들에게 말이다. 브런치북 수상은 우리의 글이 '좋다' 혹은 '나쁘다'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 단지, 수상을 하는 출판사의 가치와 비즈니스 방향에 '맞는다' 혹은 '맞지 않는다'를 평가하는 기준일 뿐이다. 그러니 수상 결과로 자신의 글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글로 대신하며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중요하다.
제목에 혹해서 클릭한 분은 첫 문장을 보고 허탈할 것이다. "수상이 얼마나 중요한데! 네가 뭐라고 말하는지 한 번 봐야겠다"라고 비판의식을 갖고 클릭한 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 그깟 수상이 뭐가 중요하다고!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겠지?"라는 기대와 함께 위로를 받기 위해 들어온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부류 모두에게 허탈함을 선사하는 첫 문장으로 글을 써본다.
브런치북 수상자 발표를 일주일 앞둔 시기부터 수상 관련 글이 브런치에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몰랐던 사실인데 수상자에게는 일주일 전에 미리 연락이 가기 때문에, 이 시점까지 연락을 못 받았다는 것은 선정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이에 대한 '분노', '허탈함', '슬픔', '해탈' 등 다양한 감정이 글을 통해 표출되고 있었다.
수상 여부에 따른 감정은 다양했지만 수상의 중요성에 대한 의견은 딱 두 가지로 나뉘었다. 중요하다와 중요하지 않다로. 물론 이러한 의견은 개인적인 감정 및 정신승리가 작용하기에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모두의 의견은 그 나름의 설득력과 의미가 있어 보였다. 다만 나에게 수상의 중요성에 대해 묻는다면 첫 문장과 같이 '중요하다'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브런치북 수상은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쓰기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일단 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전할 수 있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쓴 사람이라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평소보다 수십 배 이상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의견을 나에게 전하는 경험을 말이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이 노출되고 수많은 리플을 받게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무섭기도 하다. 악플이라도 있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큰 자양분이 된다. 브런치북 수상은 이러한 알고리즘 간택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일상적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브런치 메인에 내 글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출판사의 지원을 통해 브런치 플랫폼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글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 에토스를 얻을 수 있다. '브런치북 수상자'라는 것은 작가에게 '명문대'에 필적할만한 타이틀이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집중도가 달라지는데, 수상자라는 타이틀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 글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일종의 후광효과를 만들어낸다. 동일한 아침 루틴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유재석처럼 'somebody'인 경우와 당신이 모르는 'nobody'일 때 시청자의 집중도도와 관심이 극심하게 차이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삼요소인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 중에서 '에토스'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에 대해 궁금한 분은 아래 글 참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돈이다. 속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을 하든 '돈'이라는 문제를 떼고 생각하기란 힘들다. 배우 윤여정 씨가 "돈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해"라고 말한 것은 가벼운 농담처럼 보이는 무거운 진실이다.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글쓰기에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만 있다면 '팔리는 글'이 아닌 '세상에 전하고픈 글'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아닌 본업이 따로 있는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에게 '돈'은 글쓰기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티켓일 것이다.
수상의 중요성을 길게 이야기했는데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수상여부는 우연이 개입한 하나의 재료이고 그것을 어떻게 요리할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수상 여부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상은 반드시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최고의 작품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객관적으로 '최고의 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이미 수상 여부가 결정되었다면 더더욱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이 결과라 불리는 '재료'를 어떻게 해석하고 요리할 것인가다.
이 재료를 패배로 해석하고 글쓰기를 등한시할지, 아니면 조금 더 나은 그리고 색다른 글쓰기를 요구하는 신호로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같은 재료는 천차만별의 요리로 재탄생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2022 월드컵 우승이 극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최약체로 꼽히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첫 경기의 충격적인 패배에 있다. 2022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탈락은 이처럼 우리에게 충격적인 패배일 수 있다. 첫 경기의 충격적인 패배가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더 극적인 드라마를 부여했듯, 우리에게 올해의 경험은 미래의 트로피에 부여할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꿋꿋이 써나가 봅시다.
P.S. 수상자 여러분에게도 큰 축하를 드립니다. 수상이 여러분의 글쓰기에 날개가 되어 주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출처: AP뉴시스
사진: Unsplash의Giorgio Trov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