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의 런던베이글뮤지엄(LBM)이 사모펀드에 2,000억 원에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매출 796억 원, 영업이익 243억 원을 기록한 건실한 회사지만, 직영점이 10개도 채 되지 않는 오프라인 브랜드가 2,000억 원에 인수된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매각 금액만 보면 흡사 IT 스타트업의 엑싯 사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매각의 주인공, ‘료(이효정)’가 책을 냈다. 제목은 <료의 생각 없는 생각>. 표지 상단에는 ‘PHILOSOPHY RYO’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이 ‘돈’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은연중에 선언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책의 형식은 제목처럼 자유롭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간 에세이로,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앞부분에는 런던 코벤트 가든 근처의 한 카페를 들렀다가 "카페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장면이, 마지막 장에는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인터뷰가 있다. 이를 제외하면 시간의 흐름보다는 생각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글이다.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자유로운 감각으로 사랑받는 료가 실은 누구보다 치열한 '비자유'의 나날을 거쳐 지금의 스타일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프리스타일이 가능한 건, 프리하지 않은 매일이 모여서일 거야.”
표면적으로 보이는 ‘자유로움’은, 오랜 시간 인내하고 축적된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그녀의 고객 중심적 사고였다. 료는 흔히 ‘나다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녀가 '나다움'에만 매물되었다면 돈을 벌기 힘들었을거라 본다. 왜냐하면 돈을 지불하는 주체는 ‘나’가 아닌 ‘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의 니즈를 고려하지 않은 ‘나다움’은 일시적인 흥미는 유발할 수 있을지언정,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료의 고객 중심 마인드가 명확히 드러난다.
“브랜드 기획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몸으로 공간을 만들고 수십 번 시뮬레이션하면서 ‘첫 손님이 느낄 감정’을 구현해 보려 애씁니다.”
자신의 감각이 아니라,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 느낄 감정에 몰입한다. 고객의 감정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고 그 경험을 기획에 반영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성적 브랜딩을 넘어선 구체적이고 정밀한 퍼포먼스 사고에 가깝다.
그리고 책 제목인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은,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의도하지 않은 생각’, 즉 애초에 책으로 출간할 목적이 없었던 단상들이라고 한다. 이 설명을 듣고 나는 또 하나의 힌트를 얻는다. 지금처럼 결과물이 상향평준화된 시대, 그리고 누구나 AI의 도움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핵심이 '과정'이라는 점이다. 얼마나 좋은 결과물이냐보다,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얼마나 몰입했느냐.이런 태도를 영어로는 autotelic이라고 표현한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은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몰입, 즉 목적 없는 창작의 순수성을 담고 있다. 어쩌면, 그 몰입의 결과가 2,000억 원이라는 수치로 드러난 것 아닐까.
나다움 × 고객 중심 × 몰입 = 2,000억. 이것이 료의 공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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