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지현 Jul 13. 2021

엄마 사람은 다 계획이 있단다.

프롤로그

엄마 사람은 다 계획이 있단다.


 엄마 사람인 나는 오래전부터 ‘엄마표’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좋아하는 바, 두 딸아이에게 ‘엄마표 백일상’, ’ 엄마표 성장 동영상’, ’ 엄마표 미술’, ’ 엄마표 영어’ 등등 그들의 성공 여부를 떠나 뚝심 있게 때로는 완벽한 엄마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엄마표 영어’는 첫째 딸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초등 고학년이 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고, 둘째 딸아이 또한 나름의 우리 집 전통(?)을 이어 진행 중이다.

 ‘사교육’이 아닌 ‘엄마표 영어’를 팔랑귀를 부여잡고 고집스럽게 끌어온 가장 큰 이유를 솔직하게 꼽자면, 학원비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비싼 학원비를 들여 진행한 사교육은 옆집 아이에게는 탄탄대로 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가시밭길일 수 있고, 내 아이는 엄마인 내가 더 잘 안다는 단순한 생각과 어려운 결정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잘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딱 그 학원비만큼 여행적금을 들자!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면서 남들이 보낸다는 유명 대형학원의 학원비만큼 적금을 들자고 생각했던 때가 첫째 아이가 초등 1학년 무렵이었다. 삼십만 원의 금액으로 시작한 적금은 만기에 만기를 이어 오롯한 4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그리고 2020년 마흔이라는 문턱 앞에서 나는 반복적이고 티 나지 않는 일과 육아에 너무 지쳐있었고,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마흔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마침 그 시기에 회사 일도 꼬여 퇴사 각이었고, 만기를 앞둔 적금은 여행을 가라고 그린라이트를 켜주는데 어찌 마다할 것인가?


 그 무렵, 주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을 이용하여 해외에서 또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붐이 일었고, 나 또한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던 어느 날 쌓인 설거지를 하는 나의 코끝을 부엌 쪽창에서 불어오는 찬기운을 머금은 초가을 바람이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데 뭔가에 씐 듯 혼자 내뱉는다.


그냥 유럽으로 떠날까?


 나에게는 여행적금이라는 든든한 여행자금이 있었고, 반 고흐 르누아르 모네 마티스 등 작가 별로 빠짐없이 다녔었던 무수한 전시회와 미술관 관람으로 쌓은 ‘엄마표 미술’ 내공 덕분에 미술을 너무 좋아하는 두 딸아이를 위한 유럽 미술여행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가짜 그림’ 말고 ‘진짜 그림’을 눈에 담아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는 만큼 보인다.


 사실 나는 이번이 첫 유럽여행은 아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기 전에 무조건 여행을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남편과 함께 2008년 영국-프랑스-스위스 서유럽을 8박 9일간 자유일정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는 현재보다 유럽에 관한 콘텐츠가 매우 부족해서 백과사전 두께의 ‘이지 유럽’ 여행책을 나라별로 분권 하여 들고 다니며 유럽여행 관련 카페들을 통해 소소한 정보를 얻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설프게 준비해서 떠난 유럽, 지금 말로 빌려하자면 힙하다는 명소는 빠짐없이 다니고, 유명하다는 미술관 박물관도 분명 방문했었던 거 같은데, 현재 내 머릿속에 남은 작품은 유리관에 갇혀있던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뿐이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유럽을 다녀오고 나서도 아쉽다거나 영혼 없이 감상했었던 그 시간이 안타깝다 싶을 감정 따위는 없었다. 난 에펠탑을 본 당당한 유럽 유경험자일 뿐.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그 당시 유럽여행은 영국-프랑스-스위스 찍었다는 느낌이었고, 유럽 미술은 교양 있는 분들이 감상하는 사치스럽고 고매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학창 시절의 미술은 국영수사과 공부하는 데 있어 시간 낭비되는 과목이자, 감상이 아닌 암기과목 정도로 치부되었으니 뭐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이런 미술 ‘잘알못’에게도 뜻밖의 배움의 기회라는 것이 있었으니, 딸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표 미술’의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미술관 박물관 전시를 감상하러 다니게 된 것이다.

 2016년 8월 여름방학을 시작으로 앤서니 브라운전, 미켈란젤로전, 오르세 미술관전(반 고흐, 고갱, 밀레), 르누아르의 여인, 천경자전, 클림트 인사이드 전, 모네 빛을 그리다, 코리아 팝아트전, 백남준 아트센터, 샤갈 러브 앤 라이프전, 니키 드 생팔 전, 에르베 튈레 색색깔깔전, 피카소와 큐비즘, 피카소에서 김환기까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 더 뮤즈 드가 to 가우디(드가, 가우디, 쇠라, 밀레, 무하) 등등 셀 수 없을 만큼의 전시회를 쫓아다니다 보니 미술에 대해 관심이 가고 더 알아보고 싶은 계기가 생기게 되었다.


엄마, 이건 쇠라의 점묘법같이 그림을 그렸네요.
붓터치가 꼭 반 고흐 같이 거칠게 그렸어요.
팝아트 같은 포스터네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의 무심코 툭 하고 튀어나온 아이의 말은 온몸에 소름 돋을 만큼의 짜릿함을 가져다주었고 사교육 현장에서 달달달 외워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으로 읽어내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교육이다 싶었다.




엄마가 ‘가짜 그림’ 말고 ‘진짜 그림’ 보여줄게.
에펠탑은 서비스야.



미켈란젤로전(용산 전쟁기념관) 2016 / 피에타 (산 피에트로 대성당) 2020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_우정아트센터 2019 / 영국 내셔널갤러리_해바라기(sunflowers) 빈센트 반 고흐


여행은 타이밍이다


 '유럽여행을 가자!' 결심하고 생각해보니 한 달가량의 기간 동안 아이들과 유럽여행을 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이고 그런 비용을 뽕 뽑을 만큼의 가성비(價性比)와 가심비(價心比)가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2020년 첫째 딸아이는 만 10(예비초5), 둘째 딸아이는 만 7(예비초1)로 이른 나이에 유럽여행을 섣불리 가는 것 아닌가? '유럽 미술여행'이라는 콘셉트가 있지만 세계사에 대한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가 가장 시기적절한지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딸아이들과 유럽 미술여행을 간다고 이야기하니 맨 처음 하는 말은 하나같이 '첫째는 어느 정도 괜찮을 것 같은데 둘째는 너무 어려서 체력적으로 무리될 것 같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를 기약하자니 엄마 사람의 넘치는 의욕은 주체할 수 없었고, 런던 교통비가 11세까지 무료라는데 첫째가 딱 마지노선이라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가기 위해 모든 조건을 끼워 맞추는 나의 모습을 보니 가긴 가야겠구나 싶었다. 답은 이미 정해놓고 장화 신은 고양이 눈으로 내 뜻대로 이야기해줄 것을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고민의 끝은 언제나 고향 친구 N이 있다. 명절이라 고향, 부산을 내려가서 해운대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유럽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다음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때에 또 무슨 일이 생겨서 못 갈지도 모르잖아.
가고자 하는 지금이 맞는 거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코로나 격리를 일주일 차이로 면했던 우리로서는 코로나 19로 여행의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지금, 여행 또한 사랑 못지않게 타이밍이구나 싶다. 

그 친구의 조언 덕분에 용감하게 나는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런던 IN 로마 OUT으로 6개국 11 도시 38 39 딸과 함께하는 살아보는 여행, 유럽 미술여행을 말이다.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