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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Sep 29. 2021

죽으면 카톡 리스트에서도 볼 수 없다니

친애하는 친구가 죽은 지 3년이 되었다.


D는 내 생에 유일한 '남사친'이었다. 사실 남자라고 부르기도 간지럽고, 오히려 젊은 삼촌의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 D가 몇 주 전 꿈에 나왔다. 슬프게도 꿈에서조차 D는 죽어있었다. D를 기리는 자리에서, 그가 살면서 어떤 가치와 마음가짐으로 살았는지, 아내에게 어떤 남편이었는지가 회자되었는데 실제로 D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 누구도 그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보이던 보이지 않던 맞다고 생각한 가치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꿈에서, 울음을 참다가 결국 오열하며 잠에서 깼다. 깨서도 계속 눈물이 났다. 9월 셋째 주, D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동안 카카오톡 친구 리스트에 D의 이름이 남아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곁에 없지만 우리의 대화는 남아서 그가 지니던 온기를, 따뜻한 유머를 아끼는 물건 꺼내보듯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리스트에 D의 이름이 사라졌다.


사람이 죽으면 카카오톡에서도 사라지는구나.


가까운 지인이 사망 신고를 했든, 일정 기간 동안 로그인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삭제가 되는 쪽이든. 그래도 리스트에 남아줬으면 했는데. 그의 이름을 보면 천국이든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위안을 얻었을까.


친구가 죽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욱신거린다. 첫 1년 동안은 신나는 일이 생기거나, 넋두리할 사람이 필요할 때 D 가 떠올랐다가 이내, '참, D 이제 없지'라는 생각에 가슴에 바늘 같은 것으로 쿡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닌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고 그저 먹먹해진다.


D가 살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나눈 채팅에서 나는 사랑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분명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랑이 선물을 샀을 거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 누구보다 사랑이를 예뻐했을 랜선 삼촌이었을 텐데. 나는 그에게 사랑이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은 많지만, D 만큼 도저히 갚지 못할 빚을 일방적으로 진 사람은 없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부터 시작해서, 초록 잎새와 가지와 기둥, 뿌리에 묻은 흙마저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때로는 그의 친절에 무뎌지다 못해,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내 인성이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진다. 역시나,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큰 그릇이다.


대학원 논문 사사에 D에 대한 감사를 적었었다. D는 결국 이걸 못 봤을 것이다…


그런 그가 결혼 10년 차에도 아이를 갖지 못했던 건 축복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별로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가 아빠가 되었더라면, 정말 좋은 아빠가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D는 나에게 친구 같은 아빠와도 같았다. 이성의 감정은 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빠가 아니면 뭘까. 문득, D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파편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칼리만탄 섬에서 차를 타고 가며 나눴던 이야기. 겨우 3개월 만에 만났는데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걱정시켰던 비 오는 족자카르타의 저녁. 방콕 수상 시장에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 시답잖은 카톡 대화들.


하지만 역시나 가장 깊이 기억에 남는 건 그의 친절함과 유쾌함, 늘 흔들림 없이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이었다. 어떤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이야기를 해도 늘 긍정적인 시야를 담아 받아쳐 주었다. 그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한다.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거라고. 여전히 그의 부재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나를 다시 만났을 때 할 농담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를 기억하며 지금보다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세상은 D를 잃었지만 남겨진 친구로써 이렇게라도 그를 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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