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 Sep 01. 2017

퇴사하는 날

 퇴사하는 날엔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햇살 또한 좋아서 포근한 날씨였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편한 옷을 입고 편안한 마음으로 회사를 향했다. 그 날의 난 일찍 퇴근할 생각이었다. 내 업무에 대한 정리나 인수인계는 이미 진작에 끝났고 남은 일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것과 회사 인사팀에 서류 몇 가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 그날 해야 하는 것들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적으로 지금까지 거쳐왔던 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찾아가며 인사를 건넸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두가 왜 나가는지,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나는 지금껏 내가 만든 서비스의 개발 버전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내가 그런 얘길 하면 나더러 '부럽다'라고 얘기를 했다. 사실 생각해보자면 참 이상한 얘기이다. 내가 퇴사하고자 하는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곳이었고 많은 연봉과 지위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가시덤불로 뛰어드는 나더러 '부럽다'라고 했다.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하는 일에 대한 불만족감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 불안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개발자로서 성장을 하고 그로 인해 일의 재미와 내 삶의 경제적 안정성을 찾고 싶어서 퇴사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회사의 울타리가 너무나 포근하고 안전하지만 그 울타리의 주인이 평생 동안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에 나는 나 스스로 강해지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개발과 코딩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개발이 즐겁지 않다면? 그리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두렵다면? 아마 나라도 도전을 택하기보단 지금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했던 "부럽다"란 말은 내가 스타트업으로 가는 것을 부러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좋은 지위와 연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부러워할 리 없다. 그것보다는 '떠날 수 있는 용기'와 '다른 무언갈 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웃으면서 "이곳에 남는 게 더 좋은 거예요"라고 대답을 해줬었다.


차근차근 인사팀에게 전달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그것을 담당자에게 건네줬다. 그 담당자는 어떤 서류를 건네주며 내 담당 임원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그 당시 우리 팀에 새로운 임원이 도착하여 리더가 된 시기였다. 미국에서 일하던 사람이고 한국말보단 영어가 편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항상 자신을 ~상무님 보다는 이름을 부르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분은 일반적인 한국 기업의 임원보다 대화를 나누기 편안해 보였기 때문에 서명을 받아 내는 것은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는 문제였다. 나는 임원에게 바로 걸어가서 면담을 신청했다. 그는 나에게 앉을자리를 권해주며 역시나 왜 나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나는 그에게 진짜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각하고 설계하고 코딩을 통해 구현하는, 내가 생각하는 엔지니어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곳에선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해줬다. "그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추후엔 나도 새로운 것을 직접 만드는 방향으로 팀을 이끌 것이다"라고 말을 해줬다. 사실 속으로 감탄했다. 벤처 기업가 출신답게 개발 내재화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줄 사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시니어 엔지니어들을 다시 떠올리며 그것이 힘들 것임을 직감했다. 머리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물건을 받쳐 올려줄 허리의 힘(시니어 엔지니어의 실력과 의지)이 너무나도 약함을 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멋진 생각인 것 같다고 가볍게 말해주며 서명을 받았다. 더 이상 길게 얘기해봤자 어차피 나의 말도, 그분의 말도 서로의 생각에서 엇나갈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업무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하던 프로젝트와 어느 정도 관련 있는 부서 사람인 듯한데 이제껏 한 번도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는 남이었다. 그가 나에게 업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자 나는 "전 오늘 퇴사를 하기 때문에 아무개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간단히 답했다. 그다음 그의 대답이 참 재밌었다. "아 그러세요? 어디로 가세요? 좋은 데로 가시나 봐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앞서 말했듯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는다. 나는 굳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그냥 일이 있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자기가 있던 울타리를 떠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궁금증의 대상이구나란 것을 느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볼 정도로.


  모든 서류 상황이 준비되자마자 나는 마지막으로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내 행동반경에 속하던 곳을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나의 사회생활이 시작된 곳이고 다신 들어올 수 없는 곳임을 알기 때문에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이윽고 완전히 회사 밖으로 나왔을 때,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난 것임을 알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량했으며 기분 또한 좋았다. 내 인생에서 큰 터닝포인트 중 하나임이 분명한 날이었다.


그 날의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