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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혜 Jan 20. 2023

나의 제주 그곳들

내가 지냈던 게스트하우스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처음부터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해야지."하고 제주에 갔던 것이 아니었기에 스텝 지원을 한 건 약간 충동적이었다. 그럼에도 운이 따라서 꽤 좋은 시설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시작을 하게 되었다.



; 도심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던 곳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가 바로 서핑이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를 고르는 데에도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첫 번째, 서핑샵이 있는 이호테우 해수욕장과 가까운 곳. 두 번째, 근처에 쏘카존이 있는 곳. 스텝 모집 공고를 둘러보다 두 가지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하고 바로 연락을 취했다.


애월읍 하귀에 있는 4층짜리 신축 주택이었다. 1층은 사모님께서 공방을 운영하시고, 4층은 사장님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 2, 3층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처음 마주한 분위기는 새로 지어진 건물만큼이나 깔끔했다. 당시 스텝과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던 매니저님 성격 역시 그러했다. 원목으로 만든 침대와, 매번 세탁소에 맡기는 하얀 침구. 사장님의 취미였던 드럼과 일렉 기타로 꾸며진 공용 공간 한켠.



삼삼오오 게스트들이 모이는 저녁 시간이 되면, 매일 같은 레퍼토리로 스몰톡을 거셨던 사장님. 함께 스텝으로 일했던 동생과 나는, 뒤쪽에서 사장님보다 한 템포 앞서 레퍼토리를 읊으며 킥킥댔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날이면 노래방 기계까지 대동해 한 명씩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면 그곳의 귀염둥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마스코트였던 사강이와 엄지. 탈출 본능이 강한 사강이는 산책을 하다 목줄을 풀고 도망가버려서 한참을 쫓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제주 공항, 제주시와도 그리 멀지 않았던 이곳은 아파트와 주택이 많이 있던 주거 단지여서 도심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던 곳이었다. 그렇게 한 달간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서 경험도 쌓고, 제주에 더 지내봐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엔 아예 남쪽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 귤밭과 돌담이 있는 정겨운 곳

그렇게 고른 두 번째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한 시골 동네 위미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우리 게스트하우스 담벼락이 제주 돌담이고, 이웃집 할아버지 밭이 귤밭인. 정말이지 제주스러운 동네. 이전에 지냈던 곳과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였지만 이곳만의 매력이 있었다.



일하는 날이면 빨래와 수건을 걷어다가 통돌이 세탁기에 돌려놓고, 꺼내와 마당 햇살에 건조시키던 그런 곳. 오전 일과를 마치고 쫄랑이와 함께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날씨가 좋은 날엔 구명조끼 챙겨 들고 포구로 물놀이 나가던 이상적인 제주에서의 삶.



 

위미에서 지내는 동안, 혼자 동네를 거닐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바쁘게 일상을 사는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나와의 깊은 대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현재의 나를 곰곰이 생각해 보며 미래를 그리는 일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예술적인 공간에서 틈나는 대로 그림도 그려보고. 




바다와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던 곳.

서쪽과 남쪽에서 지내보았으니, 마지막은 동쪽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 세화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마지막 이사를 했다. 그동안 지냈던 곳에서는 암묵적으로 '소주 마시기'가 금지였던 곳이라, 나는 근 3개월을 금주한 채 살았다. 그러다 도착한 이곳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매일 밤 게스트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술을 부르고, 사랑도 불러왔다.



바로 앞에 펼쳐진 바다. 귓가에 철썩이는 파도소리. 매일 저녁 바다와 노을을 바라보는 게 일상이었던 곳. 무더운 낮에는 튜브를 싣고 해수욕장으로 향했고, 앞바다에 물이 가득 차는 만조가 되면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링을 하러 뛰어들었다.




털북숭이들과 함께했던 나날들. 산책하러 나가면 흥에 겨워 흔들던 꼬리. 간식 앞에서만 보여주던 애교, 스스럼없이 내 팔베개를 베고 눕던 녀석.



나는 이 짧기도, 길기도 했던 5개월의 추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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