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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초이스 May 23. 2020

다 같이 힘들다고 안 힘든 건 아니다.

그건 제가 말할 때만 효과 있어요.

갓 직무 이동을 했을 때,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주로 선배들 옆에서 히스토리를 몰라도 할 수 있는 일들, 택배 보내기, 샘플 사 오기와 같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들을 했었어요. 한껏 긴장했던 탓인지, 평소 잘 안 쓰던 몸을 쓴 탓인지 퇴근하고 나면 안 쑤시는 곳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좋은 인상을 남기고픈 욕심에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려고 아침 6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하다 보니 피곤이 누적되었죠.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 엄청 추웠던 지난 1월, 집을 나서면 아직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시각. 내가 원해서 이동한만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매일 집을 나서곤 했더랬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호락호락하진 않더라구요. 택배 보내는 것을 마스터 해갈 무렵, 제 앞으로 하나 둘 업무가 할당되었고 '딱 이만큼이 한계인 것 같아'란 생각이 들 때쯤 알고 보니 그마저도 선배들이 절 위해 공통 업무를 대신해 주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죠. 


하루는 회식 자리에서 한 선배한테 물어봤어요. 

"저는 몇 달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힘든데, 선배는 어떻게 해내요?"

그랬더니, 선배가



다들 똑같이 힘들지 뭐



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나는 내 눈 앞에 놓인 수많은 일에 치여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데, 다들 똑같이 힘드니까 자신도 괜찮다니. '겸손'과 '여유'가 동시에 느껴져 멋지더라고요. 나도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힘들어 죽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 멋지게 '다들 똑같이 힘든데요, 뭘.'이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1년을 넘기고, 어느덧 마케팅 부서로 온 지 1년 6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배가 했던 말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겸손'과 '여유'의 표현이라기보단 다들 똑같이 힘들다고 생각해야만, 그래야만 버틸 수 있겠더라고요. 



(나만 힘들게 아니라) 다들 똑같이 힘들지 뭐


였던 거죠. '다들 똑같이 힘들지 뭐. (괜찮아)'가 아니라요.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그래도 버티겠더라고요. 자꾸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기만 하잖아요.



그런데요, 그렇다고 제가 힘들어할 때, 

다들 똑같이 힘들지 뭐



라고 말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같이 힘들다고 제가 안 힘든 건 아니잖아요?

그 건 제가 저한테 말해줄 때만 효과가 있는 말이에요.

그러니 추가로 일거리를 더 줄 때라던지, 누군가 힘들어할 때, 다들 똑같이 힘들다는 말로 퉁치려 말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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