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un 26. 2023

방언

 어린 시절 처음 방언 하는 사람을 봤을  나는 외국어라고 생각했다. 가본  없는 어느 이름 모를 나라의 말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기도원에서 봤던 방언 하는 사람들은 주변 신도들의 부러움을 샀다. 어린 학생이 방언을 하는 날에는 당장 간증의 주인공이   있었다. 이단 시비가 없는 정통 장로교 소속의 교회를 다녔지만 90년대는 경제나 종교도 모두 과열이 심했다. 방언을 비롯해서 치유와 회복 같은 이른바 ‘은사 유행처럼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신앙에 집착한다.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한다. 급격한 호황과 지독한 불황에 사이비가 유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집사님들은 방언을 은사라고 불렀다. 어려운 단어로 포장한 기이한 현상은 어린 내 눈에는 이상한 행동일 뿐이었다. 방언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받은 축복과는 달랐다. 일단 멋이 없었다. 기적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극적인 맛도 없었다. 그냥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빠르게 내뱉는 것뿐이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방언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주목받고 싶어 하지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싫어한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방언은 또래의 눈에는 그저 괴상하게 보일 뿐이다. 그 모습을 주변 친구들에게 들킨다는 상상을 하면 등골이 서늘했다. 일찍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면 현실과 종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종교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갖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현실을 세상이라는 단어로 구별해서 불렀다. 죄악이 들끓는 곳이라 전도와 인도로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어는 교인들을 결속함과 동시에 믿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의아했다. 세상이 더럽다면서 기독교인들은  속에 있는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기를 원했다. 신분도 빈부격차도 없는 천국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눈부신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신기했다. 모두가 신을 쫓거나 돈을 따르거나   하나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돈을 누구보다 좋아하면서 재물에 욕심 없다는 말을 하는 기독교인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현세에서도 부자로 살고 싶고 죽어서까지 남들보다 잘살고 싶은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는 복을 달라는 내용일 것이다. 그들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세상과 종교 사이의 벽을 체감하고 넘어설 때만 객관적인 현실 속의 진실을   있다.


 무리에서 벗어나야만 내가 속한 집단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볼 수 있다. 방언은 나에게는 매트릭스의 빨간약 같았다. 내가 봤던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얼굴이 아니었다. 말을 빠르게 내뱉느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그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불편해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속한 집단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종교는 좋은 안식처가 된다. 그러나 세상사람이라는 말로 구별 짓기 시작하면 종교는 전쟁터가 된다. 네 이웃을 먼저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폐쇄적인 인식론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신앙 밖의 세계는 결코 죄악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는 곳이다. 자신들만의 언어를 쓰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실까? 알아듣기 힘든 방언 대신에 모두가 이해하는 언어를 쓰는 친절함이 예수님이 말한 사랑일 것이다.

이전 25화 책의 무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