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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27. 2023

책의 무덤

 어렸을  우리 집에는  집안을 가득 채울 만큼 책이 많았다. 신학을 전공하면서 아빠가 구입한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목사를 꿈꿨던 아빠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신학대학에서도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대형교회에 부임했을 때도 독립해서 개척교회를 열고나서도 공부를 계속했다. 아빠가 가진 신학에 대한 열정에 비례해서 책은 점점 늘어났다.  읽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번씩 아빠의 책장  책들을 꺼내봤다. 책장을 가득 채운 두꺼운 신학서적들은 이해할  없는 문장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난해한 내용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굴리다 매번 책을 덮어버렸다.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책은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사를 자주 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책은 짐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형편이 안 좋았던 우리 가족은 늘 셋이서 이삿짐을 날랐다. 엄마와 아빠는 끙끙거리며 세탁기와 냉장고 소파까지 차에다 싣고 이사를 다녔다. 안양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같은 구에서 우리 가족은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심지어 동네에서 5분 거리의 다른 집으로 이사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최대의 난관은 책이었다. 하드커버로 장정된 두꺼운 책은 벽돌이나 마찬가지였다. 교회를 폐업하고 생전처음 보는 동네로 이사 갔던 날에도 아빠는 책을 모두 챙겨 왔다. 책은 아빠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교회를 열면 내부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아빠가 교회를 운영하는 일은 없었다. 수백 권의 신학책은 20년 넘게 책장 안에 갇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읽는 사람 하나 없이 침묵 속에서 세월만 맞았다.


 엄마는 몇 번이나 책을 도서관이나 지역의 교회에 기증하라고 했다.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나중에 쓸 일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목회를 재개하면 책을 볼 일이 많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0년 20년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없었다. 소중한 아빠의 보물은 세월 앞에 빛을 잃었다. 아빠는 조금씩 책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 막상 가져가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학문의 흐름이 바뀌면서 아빠가 애지중지했던 책은 모조리 가치를 잃어버렸다. 어제의 신문은 오늘 폐지가 될 뿐이다. 꺼내볼 사람 없는 책은 낡은 종이뭉치에 불과했다. 누렇게 변색된 책은 아빠의 보물상자에서 나와 폐지를 수집하는 할아버지의 리어카에 실렸다.


 아빠에게 책은 과거의 영광이자 미래를 꿈꾸는 희망이었다. 부러진 꿈의 조각이었고 다시 일어날 재기의 발판이었다. 오래된 꿈의 무덤에서 낡은 책을 들어내는 일은 묘지를 이장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빠의 꿈과 희망은 돌아올 수 없는 또 다른 무덤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열어 볼일 없는 책을 가득 싣고 바퀴 달린 상여는 사라졌다. 삶은 엄연히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결국 정리해야만 한다. 간절하게 원하고 절실하게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는 것들은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오는 것 같다. 떠나보내야 할 때 제대로 작별을 고하는 것 역시 삶을 인정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그날 아빠는 오랜 세월 꿈이라고 불렀던 감정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꿈을 향해 전력질주했던 젊은 시절 아빠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은 꿈의 흔적을 내가 아빠 대신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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