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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23. 2023

통성기도

 금요일 밤마다 교회에서 철야기도회가 열렸다. 예배대신 기도회라는 이름을  이유는 통성기도가 있어서 그랬던  같다.  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금요일 밤마다 올리는 기도소리는 정말 크고 쩌렁쩌렁했다. 어떤 집사님은 기도하다 울기도 했고   없는 단어를 늘어놓으면서 소리질렀다. 기도회의 끝은 늘 불을 다 끄고 올리는 통성기도였다. 하얀 형광등 불빛이 나가고 암전이 되면 기도소리는  배는  크게 들렸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매번  기도소리를 듣다 잠들었다. 울부짖는 기도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복음성가는 나의 자장가였다.


 엄마 아빠를 따라갔던 여러 부흥회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있었다. 통성기도는 90년대 한국 교회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도입부에 외치는 주여삼창을 제외하면 알아들을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기도원 부흥회의 통성기도시간은 전쟁터 같았다. 총성처럼 귀가 따갑게 쏟아지는 방언과 울부짖는 절규를 피해 나는 밖으로 나갔다. 예배당 입구 계단은  아이들 차지였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따라온  나이 또래의 교회키드들은  같은 표정이었다. 서로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린 나이에도 말없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이라도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곧바로 함께   있었다.


   시작된 통성기도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환한 가로등 아래에서 술래잡기와 얼음땡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기도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하면 교회키드들은 발길을 돌렸다. 예배당 입구에 마련된 담요를 꺼내 들고 각자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나도 담요를 돌돌 말아 누워서 엄마 옆에서 잠을 잤다. 나뿐만 아니라 교회키드들 모두에게 통성기도는 자장가였다. 아빠에게  그렇게 사람들은 울면서 기도를 하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다. 아빠는 어른들은 잘못한 것들을 용서받기 위해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죄를 지어서 서럽게 울면서 기도를 한다고 생각했다.  모습이 매번 이상해서 나는 어른이 되면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20 초반까지 다녔던 어느 교회에서 나는 유초등부 교사로 일했다. 한 아이가 나에게 어른들은  시끄러운  소리로 기도하는지를 질문했다. 울부짖으면서 기도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님이 높은 곳에 계셔서   들으시라고 어른들이  소리를 낸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작게 기도해도 괜찮다는 말도 덧붙여줬다.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적지 않은 고민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교회의 어른들의 행동을 보면서 혼자 고민했다. 질문을 해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같다. 통성기도 하는 어른들 옆에 곤히 잠든 교회키드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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