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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pr 30. 2024

배민은 IT 기업이 아니다

배달앱을 통해 본 플랫폼 산업의 실상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배달앱은 IT기업의 탈을 쓰고 있을 뿐 본업은 중개업이다. 배달앱은 음식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음식을 판매하는 생산자 그리고 배송기사인 라이더를 잇는다. 기존에 존재하는 시장참여자들 사이에 거래시스템을 만들어서 연결한 것이 배달앱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플랫폼을 조성하면 부가가치를 생산하면서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플랫폼 기업은 손해보지 않는다. 인건비와 운영비 그리고 부대비용까지 모두 이용자에게 청구한다. 소비자와 생산자 그리고 배송기사까지 전부 돈을 낸다. 플랫폼 기업은 시장참여자들에게 비용과 위험 그리고 책임을 전가하고 수익만 가져가는 체리피커다.


 배달료가 올라갈수록 플랫폼 이용자들은 손해를 본다. 음식 퀄리티와 서비스 질은 개선되지 않는다. 더 빠른 배달을 원한다면 프리미엄 서비스를 선택해야 한다. 생산자도 더 많은 주문을 받으려면 앱 상단에 본인의 점포를 노출시켜야 한다. 수수료뿐만 아니라 광고비를 지속적으로 지출해야 한다. 치킨게임은 이용자들의 몫이다. 라이더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배달료가 올랐지만 점주나 배송기사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늘지 않는다. 플랫폼은 한 번 만들고 나면 벗어날 수 없는 낙인과 같다. 시장지배자는 독점을 통해 시장을 통제하면서 락인(lock-in) 효과를 발생시킨다.


 2023년 배달의 민족은 매출 3조 4천억 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60% 이상 늘었고 영업이익률은 20%가 넘는다. 모회사인 외국기업에게 영업이익의 50% 가 훌쩍 넘는 4천억을 배당으로 넘겼다. 창립자인 김봉진 의장이 딜리버리히어로에 배달의 민족을 매각한 순간부터 한국과 아무 상관없는 외국기업이 됐다. 외식산업 전반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플랫폼을 구축한 배민은 한국인들의 주머니를 열심히 터는 중이다. 그래서 이런 실상을 철저하게 감추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배민이 기업이미지를 포장하는데 공을 들이는 직접적인 이유다.


 배민만큼 디자인 그룹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곳은 없다. 배달수수료로 먹고사는 중개사업을 첨단 IT기업으로 포장하는 센스는 역대급이다. ESG와 소상공인 상생을 내세우면서 이미지를 세탁하는 능력도 수준급이다. 일회용 포장용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면서 환경보호를 운운하는 마케팅 포인트는 환상적이다. 대부분의 수익을 배당으로 해외모기업에게 지급하는 본모습 철저하게 감추고 사회환원을 운운하는 점도 대단하다. 배달의 민족은 디자인을 통해 프로파간다를 실현하는 여우의 뇌를 가진 기업이다.


 디자이너 출신인 창립자 김봉진의 입김이 강했던 만큼 배민은 디자인에 큰 공을 들였다. 독자적인 폰트를 개발하고 센스 있는 광고를 선보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캐릭터와 컬러링 활용도 탁월했다. 참신함을 내세우면서 산뜻하고 유쾌한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배달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이 이미지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체 기술력 없는 플랫폼수수료 수익이 전부인 실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포장하는데 필요이상으로 공을 들인다면 내용물이 부실하거나 초라하거나 둘 중 하나다.

 

 최근 배민은 서빙로봇과 배달로봇 대여사업을 홍보하면서 AI기업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본업은 여전히 중개업이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수완은 갖췄지만 AI를 입에 담을 만한 압도적인 기술력은 없다. 모회사인 <우아한 형제들>은 뛰어난 디자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은 없다. 배달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한다. 먹고 남은 음식물은 이용자가 손수 치운다. 드론이나 AI로 움직이는 배달카트가 음식을 배달해 주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를 내놓고 주기적으로 앱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알리바바나 도어대시가 먼저 선보인 것들을 따라가는 수준이다.


 이러한 행보가 혁신이면 원료 가공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제조업은 기적이라고 불러야 한다. 엔씨소프트가 스스로를 게임회사가 아니라 IT설루션 기업으로 천명했지만 시장으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했다. 실력은 남이 인정해 줄 때 진짜가 된다. 자화자찬은 허풍이나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네카라쿠배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배민은 여전히 중개업자일 뿐이다. 적극적인 R&D 투자를 통해 신기술로 시장을 주도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용자들에게 수익을 쥐어 짜내려는 비즈니스모델만 강화하는 중이다. 이는 배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배달업계의 상황은 2010년대 한국 게임업계와 닮았다.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을 전환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자 한국 게임업계는 R&D와 신작 IP를 발굴하는 시도를 중단했다. 그저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과금모델강화에만 매진했다. MMORPG라 쓰고 리니지라이크로 읽는 양산형 게임들이 범람하면서 2020년대 한국게임시장은 주저앉았다. 배달앱들은 미래먹거리를 개척하고 발굴하려는 의지가 없다. 높은 월간이용자 수를 활용해서 커뮤니티를 만들 거나 공익목적의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지만 별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내놓은 업데이트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이름부터 모험을 상징하는 벤처기업이 도전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미래는 어두워진다.


 2024년 3월 기준 배민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 2186만 명이다. 천문학적인 사용자데이터를 확보하고 내놓은 서비스는 고작 메뉴추천이다. AI기술력을 운운하는 자화자찬이 민망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지 못하면 짐짝에 불과하다. 모험을 그만둘 때부터 쇠락이 시작된다. 이용자를 쥐어짜는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가 뚜렷하다. 신사업을 내놓지 못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현재 배달업계는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쿠폰과 이벤트를 남발하면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출은 결국 소비자들 주머니에서 나온다. 목적을 달성하면 이용료와 수수료를 대폭 인상할 것이 뻔하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소비자는 나약한 을에 불과하다. 독점기업이 만드는 락인(lock-in)은 낙인이나 마찬가지다. 이용자들은 플랫폼이 정한 이용약관과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독과점 업체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수익을 뽑아낼 수 있다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된다. IT기업이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독과점 구조를 갖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정상이다. 기업은 공익이 아니라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러나 사업을 한다면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있어야 한다.


 시장을 장악한 독과점 IT기업들은 적어도 기술 면에서는 주기적으로 혁신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배달업계는 혁신과 동떨어져있다. 적극적인 R&D 투자 없이 점유율 확대를 목적으로 마케팅 경쟁만 벌이고 있다. 업계 전체가 답보상태에 놓여있다. 몸집을 불리는 데만 혈안일 뿐 서비스품질과 사용자경험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다로 나가는 길을 막고 어장을 커다란 어항으로 만들면 닫힌 생태계가 완성된다. 초반에는 숫자가 불어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언젠가 가두리는 무덤이 된다. 수익은 앞으로도 쭉 건재하겠지만 혁신 없는 미래는 장밋빛보다 잿빛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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