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에 편리함을 더하면 지갑은 열린다
한국인의 삶에서 쿠팡은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생활이 됐다. 2023년 쿠팡은 연매출 31조를 달성했다. 유통기업 최초의 30조 원 고지를 정복한 것이다. 연간 영업이익 연속 흑자전환도 성공했다. 증권가는 흑전을 2028년 전후로 예측했었다. 6천억 원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하면서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업성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바닥을 기던 주가는 크게 반등했고 시장은 환호했다. 다만 급성장한 중국 이커머스의 견제를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유통공룡인 이마트도 29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얼핏 보면 성적표가 준수해 보인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바닥을 뚫고 마이너스 14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마트는 매년 최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10년 넘게 주가는 우하락 중이다. 실적은 역성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줄곧 오프라인 유통기업 1위 자리를 수성했지만 처음으로 쿠팡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사실 이마트는 단 한 번도 쿠팡을 잡아 본 적이 없다. 이마트를 필두로 신세계 그룹이 선보인 이커머스 전환사업은 대부분 실패했다. 쿠팡 와우멤버십을 벤치마킹한 구독모델 신세계 유니버스는 참패했다. 3조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옥션과 지마켓을 인수했지만 쿠팡에게 완전히 물을 먹었다. 같은 유통기업인 롯데나 GS의 상황도 비슷하지만 유독 이마트의 실패가 두드러진다. 전력을 투구했으므로 패배가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정용진 회장이 이끄는 신세계 그룹은 지난 4년간 전력을 쏟아부었다. 옥션과 지마켓을 인수하고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취득해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MZ세대 공략을 위해 W컨셉 같은 패션 부문을 강화했고 NFT와 메타버스 같은 트렌드 역시 빠르게 파고들었다. SNS와 CF를 활용하여 감각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팝업스토어와 샵인샵을 활용하여 다양한 브랜드를 발굴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돈키호테 베끼기’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 삐에로쇼핑 같은 수를 두기도 했다. 투자 행보도 과감했다. 이마트 성수점을 비롯한 알짜배기 부동산을 매각하여 얻은 실탄은 전부 이커머스에 배팅했다. 그러나 배팅은 실패했고 햇수로 5년 가까이 도전은 모두 실패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시장에서 오너리스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미트와 신세계는 시장에 늦게 진출한 신생기업도 아니고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도 아니다. 국내 재계서열 10위권의 대기업이다. 자금력과 인적자원, 사업경험까지 두루 갖춘 전통의 강호다. 하지만 오프라인의 강자인 정용진의 신세계 사단은 온라인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쿠팡은 되고 이마트는 안 되는 원인은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애써 이용할 만한 이유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마트와 신세계에서 제공하는 ‘사용자경험’은 메리트가 없다. 쿠팡의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은 이용자들에게 ‘쿠팡이 있는 삶’이라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
소셜커머스로 시작했던 쿠팡은 당시 2-3일 걸리던 유통물류 시스템을 혁신했다. 익일도착을 보장하는 로켓배송은 하루 만에 물건을 받아보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 ‘오늘 시키면 내일 온다’는 상식이 됐고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은 사용자경험을 ‘필요할 때 시켜도 바로 온다’는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배송에 집중한 쿠팡의 혁신은 사용자경험을 ‘시간해방’으로 진화했다. 정기배송 서비스는 1인가구, 신혼부부,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물건을 사러 가는 수고로움을 없애버렸다. 쿠팡 있는 삶은 상식을 넘어 소비흐름의 기준이 됐다. 이제 소비자들은 쿠팡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편리함에 편리함을 더하면 지갑은 자연스럽게 열린다. 와우멤버십은 빠른 배송과 무료반품 그리고 높은 적립을 보장한다. 물건을 사면 빠르게 받아볼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료로 반품하면 그만이다. 구매확정을 하면 높은 비율의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그렇게 구매만족률은 높은 재구매율로 이어진다. 아마존의 BM을 한국식으로 변형해서 벤치마킹한 만큼 쿠팡의 BM은 한국에 최적화된 형태다. 편의성과 속도에 집중한 쿠팡의 사용자경험은 락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와우멤버십은 빠르고 편한 배송뿐만 아니라 다른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OTT서비스인 쿠팡플레이와 배달앱 쿠팡이츠까지 이용할 수 있다. 본체는 빠른 배송이고 쿠팡플레이나 쿠팡이츠는 그림자다. 여전히 쿠팡은 본질인 유통과 배송에 집중하는 중이다. 사용자경험의 혁신은 본업에 집중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이 지점에서 크게 실패했다. 오프라인에서 느끼는 사용자경험은 온라인과 다르다. 차이점을 구별해서 투트랙 전략을 써야 했다. 쿠팡을 답습하려다 차별화에 완전히 실패했다. 오프라인에서 쌓은 노하우를 온라인에 적용하는 시도 역시 참패했다.
쿠팡은 IPO를 통해 확보한 실탄을 풀필먼트를 확장하는데 투자했다. 58% 인상한 와우멤버십에서 발생하는 수익 역시 물류센터에 추가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27년까지 로켓배송 확장에 투자하는 돈만 3조 원이 넘는다. 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을 의미하는 쿠세권은 3년 후에 전국으로 확대된다. 투자를 끝까지 하는 쪽이 치킨게임의 승자가 된다. 이커머스 역시 유통업과 같이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 신세계와 롯데, GS는 이커머스에 특화된 물류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지출을 망설였다. 그 사이 쿠팡은 막대한 실탄을 투자해서 비교우위를 달성했다.
시간이 지나자 쿠팡과 유통대기업들 간의 차이는 격차 수준으로 벌어졌다. 돈은 한 번 쓸 때 제대로 쓰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다. 치킨게임은 승자독식이다. 물류투자로 촉발된 혁신적인 배송은 긍정적인 사용자경험을 누적시켰고 이용자는 폭증했다. 쿠팡의 매출은 매년 신기록을 달성했고 영업이익이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의 BM을 만들 때 창안한 플라이휠 전략을 한국 시장에 최적화한 것이다. 쿠팡은 최적화에 성공했지만 대기업들은 모조리 실패했다. 결국 2023년 쿠팡의 연매출 30조 원 돌파는 유통공룡으로 불렸던 대기업들의 소리 없는 항복선언과 같다.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는 단순하고 직관적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 다각화 보다 일원화가 효과적이고 많은 선택지보다 유일한 대안이 혁신적이다. 더 많은 서비스가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가 1등을 만든다. 쿠팡은 쿠팡이라는 단일 브랜드에 집중했다. 배송과 물류라는 한 우물을 파면서 지속적인 투자와 서비스 개선에 역량을 집중했다. OTT와 배달앱을 선보였지만 언제나 중심은 이커머스다. 반대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SSG 그리고 지마켓과 옥션까지 선택지를 잔뜩 들고 나왔다. 통합을 강조하면서 멤버십을 내놨으나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브랜드를 한데 묶는데 실패했다.
이마트는 온라인에서 이마트몰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지금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실 이는 이마트 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신세계와 롯데, GS, 현대백화점 등 전통의 유통물류 대기업 모두가 낙제점을 받은 난제다. 이커머스에서 밀려난 유통대기업들은 오프라인 행사와 럭셔리 비즈니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선택과 집중으로 포장하겠지만 사실상 시장을 포기하고 꽁무니를 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치킨게임의 승자는 시장을 장악하는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쿠팡은 글로벌 온라인 명품패션 1위 업체 파페치를 인수했다. 유통대기업들의 본진인 럭셔리 비즈니스를 쿠팡이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2라운드의 승자는 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