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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08. 2024

알리 테무 쉬인 그리고 쿠팡

소비를 지배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심리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은 알테쉬로 불리며 중국이커머스 돌풍의 주역이 됐다. 중화권을 넘어 동아시아와 유럽 심지어 무역전쟁을 벌이는 상대국인 미국까지 진출했다. 불황이 오면 저렴한 가격이 구매의 상식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착한 소비와 ESG는 배부른 시절의 꿈같은 이야기다. C커머스로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초저가 상품은 조악한 품질이 문제다. 게다가 배송 기간도 상당히 느린 편이다. 그러나 가격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한다. 불경기의 얇은 지갑 사정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잔뜩 살 수 있는 소비자경험은 압도적인 만족감을 제공한다.


 부자처럼 쇼핑하라는 티무의 슬로건은 글로벌불황에 빠진 세계인의 심리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현대인들에게 소비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행위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 초저가소비는 일종의 도피처다. 영화 속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가득 쌓인 선물상자와 같은 것이다. 불경기의 소비양극화는 극대화된다. 극소수의 상류층은 비싸고 좋은 고급 사치품을 꾸준히 소비한다. 구매력에 타격을 입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저렴한 물건을 찾아 헤맨다.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은 지갑과 마음을 동시에 연다. 그리고 한 번 열리면 좀처럼 닫히지 않는다.


 소비를 지배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심리다.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가장 큰 동기는 가격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했다는 만족감이 재구매율을 결정한다. 구매율은 고객충성도로 이어지고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초저가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은 소비에 관한 상식을 이긴다. 취향 같은 심리적인 기준마저 압도한다. 조금 마음에 안 들더라도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하면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예외는 없다. 인간사회는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중국 이커머스의 초저가공세가 단시간에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격은 인류가 만든 강력한 형이상학적 괴물인 이데올로기 마저 파훼한다. 미국이 적으로 규정한 알테쉬는 미국 본토를 완전히 점령했다. 중국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은 가격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저렴한 초저가상품을 소비하는 습관에 길들여졌다. 잔뜩 사도 아마존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하다. 품질이 엉망이라도 괜찮다. 하나만 건져도 돈을 번 기분을 안겨준다. 적은 돈으로 택배상자를 잔뜩 뜯어보는 행복을 선사하는 사용자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결국 구매는 또 다른 구매로 이어진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개인정보유출 이슈에도 미국인들은 개의치 않는다.


 SNS를 평정한 틱톡 다음은 알테쉬 같은 이커머스가 미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AI반도체 물자를 제재하고 수출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작 타격을 입는 건 미국이다. 미국 국민들의 심리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중국 IT기업들이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시장에서 알리와 테무의 매출은 반년 만에 130% 이상 상승했다. 3만 원 이하의 저가 상품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초저가상품을 구매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에 사람들이 점점 길들여지는 중이다. 올 4월 기준 두 기업의 MAU를 합치면 1700만 명에 달한다. 1위 사업자인 쿠팡의 3090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이커머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경험이다. 국내 유통대기업들은 사용자 경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쿠팡에게 밀려났다. 쿠팡은 빠른 배송을 통해 ‘쿠팡이 있는 삶’과 ‘쿠세권’이라는 사용자경험을 상식으로 만들었다. 상식은 시간이 지나면 기준이 된다. 빠른 배송은 이제 이커머스의 산업표준이 됐다. 오프라인 유통기업대비 저렴한 가격 역시 쿠팡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사용자경험이었다. 그러나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쿠팡도 못했던 초저가전략을 들고 나왔다. 중국본토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직배송하는 시스템을 단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용자경험으로 시장지배자 지위에 오른 쿠팡은 더 나은 혁신을 제공하면서 왕좌를 수성해야 한다. 혁신은 늘 돈이 든다. 쿠팡이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더 큰 투자를 집행하는 것뿐이다. 배송과 물류 인프라를 확대해서 쿠세권의 영토를 넓히는 것만이 쿠팡의 생존법이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같은 해외시장 개척을 천명했지만 결코 쉽지 않다. 쇼피나 라자다 고젝 같은 시장지배자들이 쌓은 철옹성은 무너뜨리기 힘들다. 일본 진출에서 물을 먹었던 쿠팡 입장에서는 본토인 한국 시장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쿠팡이 오늘 발표한 1분기 성적표에서 눈길을 끄는 항목은 두 가지였다. 분기 매출은 사상 최초로 9조 원을 달성했다. 이대로라면 2024년 연매출 40조를 넘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파페치 인수로 인한 지출이 재무에 반영되었다는 의견을 내놨지만 중국 이커머스에게 밀렸다는 기사가 더 주목받았다. 창립자 김범석 의장은 조 단위의 추가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초저가공세를 위기로 인식했다는 반증이다. 가격 앞에서 소비자는 갈대가 된다. 선호도와 충성도는 불경기 앞에서 의미 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배송이 느려도 기다리면 그만이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한국인이라도 참는 게 이득이라면 기다림을 학습하게 된다. C커머스는 압도적인 초저가공세를 벌이고 있다. 가격이 갖는 비교우위로 미국 유통업계를 평정한 아마존마저 한 수 접을 정도다. 심지어 알리나 테무에서 물건을 떼다 오픈마켓과 쿠팡에서 파는 개인사업자들도 많다. 쿠팡은 초저가에 맞서 더 나은 사용자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물론 국내 유통대기업들에 비하면 쿠팡의 상황은 나쁘지 않다. 와우멤버십 충성고객층이 갑작스럽게 대거 이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리나 테무의 프로모션과 할인 폭이 줄면 C커머스의 파죽지세도 한풀 꺾일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 쿠팡은 중국 기업들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여야 한다. 이마트나 롯데, GS와의 경쟁에서 격차를 벌렸지만 완전히 고사시킨 것은 아니다. 현재 쿠팡에게 밀려난 유통대기업들은 반쿠팡연합을 결성해서 적극적으로 빈틈을 노리는 중이다. 소비자들은 프로모션으로 제공하는 할인혜택을 빼먹다 곧 떠나겠지만 그동안 쿠팡의 매출은 감소한다. 뼈를 끊을 수는 없겠지만 자잘한 생채기를 내서 흠집을 만들 수는 있다. 쿠팡은 대내외의 경쟁자를 모두 상대해야 한다. 챔피언이 되고 나면 타이틀방어전이 일상이 된다. 정상에 올라도 제 발로 은퇴하지 않으면 타이틀을 빼앗기고 은퇴하게 된다.


 유통업계의 절대강자는 없다. 쿠팡이 국내 유통업계를 평정하고 전통강호들을 전부 물리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쿠팡도 결국 한국이라는 시장을 제패한 지역챔피언에 불과하다. 통합챔피언이 되려면 C커머스를 물리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르카도리브레나 아마존과 맞서야 한다. 체급을 키우지 않으면 쿠팡도 고꾸라질 것이다. 1위에 올랐다 사라진 다음이나 위워크의 전례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애플도 파산 위기에 몰린 적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10년간 우하락 했다. 비즈니스는 예외가 없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은 희망과 절망 모두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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