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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09. 2024

한국 대기업들이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이유

혁신을 주저하고 모험을 두려워하는 K기업문화

 코로나가 끝난 시점부터 한국 대기업들이 성장동력을 잃었다는 시장의 평가가 이어졌다. 외국인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고 외산자본의 유출도 심심찮게 보도됐다. 국내 대기업들이 미래먹거리를 탐색하는 방식은 주로 투자와 인수다. 직접 발로 뛰면서 몸으로 부딪히는 스타일을 버리고 자본만 이용해서 쉽게 성과를 내려고 한다. 신사업에 도전해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빠르게 접는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해서 기반을 다지고 기틀을 잡으려면 다년간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효율화라는 미명을 쫓느라 도전을 거의 포기해 버렸다.


 국내 대기업들은 초기 시장에 진입해서 입지를 구축한 스타트업이나 벤처의 지분을 취득한다. 인베스트먼트와 VC 혹은 컨소시엄 형태로 투자해서 요행을 기대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으려고 거위농장을 사들이는 꼴이다. 그러다 시장성을 확인하면 재무적 투자를 전략적 투자로 상향하고 합병과 인수를 내세우고 간판을 바꾼다. 모험을 두려워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한 성공공식만을 답습한다. IT 대기업들 상황도 비슷하다. 카카오는 R&D에 소극적이었던 만큼 AI혁명의 어떤 수혜도 입지 못했다. 엔터산업에 편중된 투자 때문에 지난 3년간 기술혁신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는 기존 산업에 침투해서 수수료를 받아먹는 플랫폼 비즈니스만 반복하는 중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골목상권을 침탈한다는 비아냥을 듣다 보니 기업 이미지는 엉망이 됐다. 네이버는 이커머스를 통해 확고한 수익모델을 구축했다. 그러나 기술투자를 늘려야 할 시기에 2조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서 중고거래 플랫폼 포쉬마크를 인수했다. 뒤늦게 하이퍼클로바X를 내놓으면서 AI돌풍을 예고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다. IT기업 본연의 혁신을 잃어버리고 사업확장이라는 명분으로 크림과 발란 오늘의 집 같은 내수시장에 집착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해외 IT 기업들과 기술경쟁에서 밀려버렸다.


 한국대기업의 현재 상황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고물가시대에 내수는 발목이 잡혔고 수출실적은 특정 기업에 편중되어 있다. 반도체가 고꾸라지면 증시와 생산성 지표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위기에 빠지지 않은 분야는 없다. 눈앞의 수익만 쫓다 보니 미래를 등한시했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원동력은 R&D다.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 기업들은 기술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반대로 한국 대기업들은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대외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둔 현금성자산으로 부동산만 구입했다. 부동산불패에 배팅하는 것도 전략이나 현실을 보려면 눈을 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창업자인 파운더 혹은 혈연으로 묶인 오너일가의 입김이 절대적인 국내 대기업들의 성장동력은 한계가 뚜렷하다. 사업성과는 오너와 경영후계자의 공이고 손실과 실책은 임직원들의 과가 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자정작용이 없다. 경기가 좋을 때는 호재를 보도하며 주가를 끌어올릴만한 용비어천가를 불러댄다. 그러나 외부환경이 급변하는 시대가 되면 한국 대기업은 유난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경영인과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수뇌부가 없는 만큼 유연한 대처가 힘들다. 유통 대기업들의 미래는 어둡다. 혁신 대신에 선택한 3,4세 경영이 가져올 결과는 뻔하다. 핏줄이 능력보다 위에 있는 구조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성공공식은 시장이 바뀌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비즈니스의 기본이지만 모든 기업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유통대기업들은 기존의 성공공식을 이커머스 시장에 적용했다가 참패했다. 오너와 파운더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결정은 모조리 실패했다. 네이버와 쿠팡에게 참패한 신세계와 이마트, 롯데 그리고 GS의 시장점유율은 처참한 상태다. 오프라인에서 먹혔던 성공공식을 온라인 사업에 그대로 써먹는 안일함이 악수였다. 온라인 시장에서 통하는 문법을 학습하는 것을 거부한 대가는 혹독했다.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자존심을 버리고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같은 유통채널을 운영하는 방식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통하지 않았다. 전략을 수정하고 새로운 공략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늘 하던 대로 자금력에 기대는 악수를 뒀다. 잘 나가는 사업체를 인수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안일한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다. 한 번 써먹은 성공공식은 새로운 분야에 통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잊은 것이다. GS는 2400억 원을 들여 배달업계 3위 요기요를 인수했다. 롯데쇼핑은 300억 원을 출자해서 중고나라 지분을 획득했다. 신세계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3조 5천억 원에 달하는 돈으로 지마켓과 옥션을 사들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인수 당시 2위였던 요기요의 입지는 3위로 내려앉았고 쿠팡과 배민의 출혈경쟁으로 인해 점유율을 빼앗기는 중이다. 중고나라는 번개장터와 당근마켓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최악은 신세계다. 지마켓과 옥션 인수로 얻은 이커머스 점유율 3위는 의미 없는 완장에 불과했다. 쿠팡과 네이버가 격차를 벌리면서 매출은 박살이 났다. 풀필먼트 확장에 쿠팡이 10조를 투자하는 동안 신세계는 3조 5천억 원짜리 간판을 산 꼴이 됐다. 반전을 꾀하고자 뒤늦게 쿠팡과 네이버의 사업모델을 그대로 답습했다. 후발주자가 된 유통 공룡들은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베끼기에 나섰다.


 운영노하우와 사용자경험 그리고 고객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BM 벤치마킹을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롯데와 신세계 그리고 GS는 이커머스를 거의 말아먹었다. 패착의 가장 큰 원인은 이용자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쇼핑앱이었다. 쿠팡이나 네이버는 서비스를 일원화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앱을 운영했다. 반대로 대기업 3사는 산하에 보유 중인 여러 유통브랜드를 중구난방으로 배치했다. UXUI도 직관적이지 않은 데다 혜택과 이벤트를 찾아보려면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신동빈 회장의 회심의 일격이라고 추켜세웠던 롯데ON은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다.


 이커머스의 핵심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결제시스템이다. 무신사와 쿠팡은 결제가 빠르고 쉽다. 롯데ON은 할인과 쿠폰을 적용하고 애스크로 결제를 하기까지 과정이 복잡하다. 멤버십도 유통채널에 따라 달라진다. 백화점과 온라인 몰의 할인율이 차이가 난다거나 카드혜택 안내가 부족했다. 쿠팡과 네이버의 멤버십을 벤치마킹한 SSG의 신세계유니버스도 기대이하였다. 배송속도나 무료반품, 포인트백에서 쿠팡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신세계 산하 브랜드가 아니면 쓸 일없는 포인트는 메리트가 없다. 사용이 자유로운 네이버에 비하면 신세계유니버스는 갑갑하다 못해 답답하다. 매력적인 사용자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신세계는 스타벅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팔아먹고 있을 뿐이다.


 국내 유통 대기업 앞에 붙는 강호라는 미사여구를 삭제해야 할 때가 됐다. 철옹성 같았던 오프라인 사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IT기술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다. 온라인 시장에서 영토를 확장하지 못하면 오프라인의 점유율마저 빼앗기게 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찾는 발길을 스마트폰 위에서 쇼핑앱을 누르는 손길이 대체했다. 작년 쿠팡은 사상 최초로 매출 30조 원을 넘겼다. 올 1분기 매출만 9조 원에 달했다. 이대로 간다면 올해 40조 원을 넘길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의 매출은 감소한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입지를 다진 신흥강자들은 오프라인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중이다.


 무신사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각지에 오픈하고 있다. SNS에서 주목받은 소규모 브랜드들은 팝업스토어를 통해 오프라인 소비자들과 만나는 중이다. 유통대기업들 역시 오프라인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지만 트렌드를 이끄는 힘은 더 이상 없다. 늘 하던 럭셔리사업 말고 별다른 답이 보이지 않는다. 초저가경쟁은 알리와 테무에게 상대가 안된다. 속도와 편의성은 쿠팡과 네이버에게 오래전에 밀렸다. VIP위에 VVVIP를 만드는 ‘차별화된 차등화’를 통해 부자들을 짜내는 것 말고 답이 없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졌지만 변할 생각이 없으므로 온라인에서 영향력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진보적인 시도는 환영받지만 진부함은 결국 도태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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