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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12. 2024

배달의 민족은 불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은 소비자 주권을 파괴한다

 결론부터 먼저 밝히자면 배달앱 수수료를 아무리 올려도 한국인들은 배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편리함에 한 번 길들여지고 나면 인간은 동물로 전락한다. 성토가 줄을 잇고 탈퇴와 불매 이야기가 나오지만 의미 없다. 분노는 휘발성이 강한 순간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쿠팡과 유니클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들이댄 불매의 칼날은 흑역사로 남았다. 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남양유업 역시 B2B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감정은 휘발성이 강하다. 그러나 생활은 현실이다.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기업은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다. 반발과 불만이 속출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구독요금제와 할인혜택을 뿌리면 논란은 차츰 수그러든다. 어차피 배민을 떠나는 사람들은 다른 배달앱을 사용할 것이다. 엑소더스는 그저 서비스 갈아타기에 불과하다. 배달앱의 편의성에 길들여진 이들은 배달앱이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도 일종의 중독이다. 수수료인상이슈가 배달앱 시장의 쇠퇴와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낮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편리함에 중독된 소비자는 합리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 욕하면서 쓰고 툴툴거리면서 결제할 뿐이다.


 수수료장사는 큰 수익을 내려면 막대한 거래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장을 장악해서 독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배민은 일찌감치 70%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쿠팡이츠 대비 낮은 수수료를 유지하면서도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시장지배자가 되자마자 배민은 수익화사업에 열을 올렸다. 검색노출을 올리기 위해 점주들은 광고료를 지불해야 했다. 비용절감을 위해서 부대비용과 운영비를 점주와 라이더에게 전가했다. 상생을 약속하고 각자도생을 꺼내든 배민의 배신은 천문학적인 수익으로 돌아왔다.


 2023년 배달의 민족은 7천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특성상 영업이익의 대부분은 중개수수료였을 것이다. 첨단 IT기업을 표방하고 있지만 배민은 수익구조로 볼 때 수수료 장사를 하는 중개업자일 뿐이다. 배달앱시장의 절대강자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회적인 책무나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일도 없다. 배달시장 내 만연한 불평등과 비용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배민에게 진정한 고객은 없다. 업주와 라이더는 플랫폼 노동자에 불과하다. 회원은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이용자일 뿐이다. 말장난 같지만 어느 쪽에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배민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서비스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업주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중개인에 불과하다. 배달업은 이전부터 있었다. 상황이 유리하면 IT기업 완장을 자랑하지만 불리해지면 중개자에 불과하다는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권리를 가지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매력적인 비즈니스가 플랫폼산업이다. 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면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할 필요가 없다. 공익적인 차원이든 소비자 주권이든 문제를 제기하면 그저 시장과 소비자를 연결할 뿐이라고 답변하면 그만이다. 소비자의 권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를 배달의 민족에게만 한정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시각이다. 배달앱시장을 비롯한 플랫폼 비즈니스 전체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전에 없던 사업도 함께 출현한다. 수수료를 가져가는 중개업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전통적인 형태의 중개업은 책임소재가 분명한 편이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잘되면 술이 석 잔이지만 망하면 뺨을 맞는다는 룰이 존재했다. 하지만 기술로 시장과 이용자 노동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룰을 파괴했다.


 수익을 내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플랫폼 산업은 스마트혁명의 명암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편리함을 얻는 대신 사람들은 소비자의 권리를 상실했다. 챗봇이 차지한 고객센터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반복해서 들려줄 뿐이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다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지는 곳은 없다. 독과점 플랫폼 사업자들은 갑이다. 수뇌부는 결정하고 실무자들은 공지사항을 통해 통보한다. 가격을 인상하고 혜택은 줄이고 약관마저 변경해도 소비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을에 불과한 이용자는 선택지가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 양자택일만 가능할 뿐이다.


 욕하면서도 배달앱을 쓰고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쿠폰을 사용한다. 다들 울면서 열심히 겨자를 먹는다. 미각과 현실은 적응이 빠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입에 맞아서 먹는 게 아니라 먹다 보면 입에 맞게 입맛이 변한다. 대안이 없다는 말이나 대체재를 찾을 수 없다는 표현은 핑계이자 변명일 뿐이다. 플랫폼서비스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지면 쉽게 버릴 수 없다. 배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까지 논란에서 자유로운 플랫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고객이 아니다. 모르는 사이에 이미 노예로 전락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악의 개념도 변했다. 과거의 사회적 패악은 불평등이었지만 지금은 불편함이 가장 큰 악이다. 그래서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기술은 축복이자 은혜로 칭송받는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손가락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진 이상 몸을 일으키는 것은 귀찮은 일이 됐다. 번거로운 일을 처리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사람들은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한다. 과거의 인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투쟁했지만 이제는 저항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빅테크 기업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생활뿐만 아니리 의식까지 의지하게 됐다.


 배민의 수수료인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통보였다. 소비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플랫폼 기업은 거의 없다. 이용자들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지만 월간이용자를 의미하는 MAU는 하락하지 않을 것이다. 쿠팡이츠나 요기요로 탈배민 할 뿐 배달앱 시장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은 서로 경쟁하지만 결코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독과점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면 자기 영토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풍요를 누린다. 이용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개인정보를 넘기고 AI 딥러닝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데이터까지 제공해야만 한다. 우리는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플랫폼이 우리를 이용하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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