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나 다름없는 승자독식 AI 경쟁
미래학자 로이 아마라는 기술은 단기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장기적으로 과소평가된다는 말을 남겼다. 생성 AI에 대한 찬양일색이던 시장이 불과 1년 만에 달라졌다. 8월 초 엔비디아를 필두로 전 세계 AI혁명을 진두지휘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일제히 폭락했다. 구체적인 하락 원인이 없었던 만큼 추세는 며칠 만에 상승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그동안 숨어있던 비관론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첨단기술은 늘 꿈이나 다름없는 비현실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자본시장은 기술이 가진 영향력을 계산해서 기업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정치와 언론이 가세하면서 거품이 형성되고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인간성과 탐욕을 분리할 수 없으므로 역사는 늘 반복된다. 생성 AI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된 낙관론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폭락과 붕괴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뉴스를 장식하는 중이다. 그러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식시장에 돈이 몰려들고 있다. 세계는 기술혁명을 주도하는 미국 빅테크 주에 크게 배팅을 했다.
‘빅 3’ 애플과 엔비디아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1경을 훌쩍 넘는다. 생성 AI가 가져올 대격변을 믿는 신도들은 급락과 변동을 거듭하는 경제상황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실적을 넘어서 전망을 건너 아예 믿음으로 사는 구간에 왔다. 그러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승은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기업이 기차라면 실적은 연료고 전망은 선로다. 연료가 떨어지면 전진하지 못하고 정지했다가 결국 밀려나게 된다. 초대형 기술주도 예외는 없다. AI투자는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치킨게임이다. 손을 떼는 순간 곧바로 패배자가 된다.
IT 업계는 역사적으로 늘 승자독식이 지배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기권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붉은 여왕효과와 치킨게임이 만나면 극한의 출혈경쟁이 발생한다. 빅테크들은 천문학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막중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초월적인 수준의 지출을 감내해야 한다. MS나 구글이 그랬듯이 승자독식으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이상 끝까지 가야 한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멈출 수는 없다.
생성 AI가 나오기 전에는 기술적인 해자와 분야 간 경계선이 명확했다.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러나 추론 그리고 분석이 동시에 작동하는 생성 AI는 업종 간의 경계선을 지워버렸다. 차세대 AI를 완성한다면 다른 빅테크의 전문영역을 강탈할 수도 있다. 물러설 수도 없고 양보할 수 도 없는 극한의 경쟁은 이미 전쟁이 됐다. 빅테크들은 생성 AI에 무제한으로 돈을 투자하고 딥러닝용 AI반도체를 미친 듯이 사들였다. 엔비디아의 상상을 초월하는 실적은 붉은 여왕이 만든 치킨게임의 산물이다.
하지만 투자는 탄탄한 매출에서 나온다. 경기침체와 불황이 찾아오면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고 경쟁대열에서 밀려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다. 투자를 줄이면서 기술패권쟁탈전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은 악재가 되어 급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손을 떼면 주가는 낭떠러지로 직행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처럼 시장을 주도하는 중심체가 있다. 탈락자가 속출하면서 엔비디아의 실적이 하락한다면 AI혁명이 촉발한 세계경제의 지반이 흔들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장 진짜 큰 문제는 생성 AI기술의 실효성이다. 완전한 자율주행의 출시가 늦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AI만 가지고 무한대에 가까운 도로 위의 변수를 완벽하게 대응할 수 없다. 변칙적인 상황에 반응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대체하는 완벽한 설루션은 아니다. 생성 AI는 AI반도체의 막강한 연산능력을 기반으로 학습하고 문제에 맞는 해법을 찾는다. 경우의 수를 확률적으로 추론해서 결과를 추출한다. 고도로 발전한 연산추론능력은 결과물을 창조물로 보이게 만들지만 진짜 창조는 아니다. 매뉴얼을 토대로 다채로운 형태의 퍼즐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다.
창조는 연산과 사고를 연결하는 통섭을 토대로 발생한다. 수학적 계산만으로는 창조적인 발상을 온전하게 이끌어낼 수 없다. 모방하고 계산하는 반쪽짜리 뇌 만 가지고 이전에 없던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은 낮다. 기술적 한계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AI의 딜레마를 극복해야만 전인미답의 고지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아니지만 AI에게 인간성이 요구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차세대 AI는 철학적인 사고능력을 통해서 연산 너머의 연상을 구현해야만 한다.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IT기업만이 승자독식에 성공하게 될 것이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법칙을 선보이지 못한다면 특별할 것 없는 혁신에서 그칠 뿐이다. 진정한 혁명은 아직 멀었다. 챗GPT도 세상을 당장 바꾸지는 못했다. 혁신은 맞지만 혁명이라고 부르기에 생성 AI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AI기술은 분명 문명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능도 아니고 전능하지도 않은 알고리즘일 뿐이다. 혁신을 거치면서 기술은 징검다리를 타고 혁명으로 이어진다. 낙관론이나 비관론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어차피 기술혁명은 온다. 다만,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사회는 혼란을 겪고 윤리적인 문제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시장은 과열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예측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여줄 것 같다. 인류의 역사에서 쉽게 획득한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적 발전은 없었다. 신세계가 도래하려면 구시대의 낡은 체제가 완전히 붕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붕괴는 늘 그랬듯이 전란이나 공황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힘의 질서가 재편되고 불변으로 통하는 상식이 사라지면 결국 시장이 무너진다. 세계 3차 대전을 제외한다면 AI버블이 가장 큰 위험요소다.
IT기업들이 벌이는 치킨게임은 난이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하드코어 위에 슈퍼하드코어 모드가 기다리고 있다. 경영악화, 외부변수, 기술개발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경쟁자보다 항상 앞서 나가야 한다. 참가자들이 전부 포기해서 하나만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은 멈추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빅테크 기업들 간에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발생할 것이다. 하나뿐인 승자를 제외하면 모두 패배자로 전락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이 부메랑이 되어 시장을 강타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시장은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닷컴버블을 거치고 지금까지 생존한 IT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장지배자가 된 빅테크 기업 아래 명줄만 부지하고 있는 메달리스트들이 수두룩하다. 금융자본은 늘 반박자 빠르게 반응한다. 기술의 한계를 알아차리자마자 상황은 급변한다. 장밋빛 전망은 실망으로 이어지고 탐욕과 불안이 균형이 무너진다.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이 멎으면서 패닉이 발생한다. 떨어질 일 없다던 주가는 폭락하고 망할 일 없다던 기업은 문을 닫는다. 역사는 반복이다. 승자독식 구조라는 점에서 본다면 치킨게임이 아니라 오징어게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