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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5. 2024

승자의 저주에 허덕이는 신세계

시장과 소비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2021년 3.4조 원을 주고 옥션과 지마켓을 인수했다. 함께 입찰경쟁을 벌였던 롯데를 제치고 최종승자가 됐다. 인수작업 완료후 이커머스 기업으로서 통합된 시너지를 기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SSG를 상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점에서 볼 때 기대는 의심 한 점 없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경영진은 쿠팡과 네이버 그리고 SSG닷컴이라는 천하삼분지계를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에 제갈량은 없었다. 연간 24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토대로 성장을 자신했으나 결과는 초라했다.


 2022년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쿠팡이 24% 네이버는 23%대였다. 지마켓과 옥션 그리고 SSG 닷컴의 점유율을 전부 합쳐도 11% 에 불과했다. 3년 가까이 지난 현재 이마트는 3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SSG는 만년적자에서 올해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인수전에서 승리한 승자였지만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신세계는 이커머스에서 비롯된 적자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마트는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성수본점을 1조 천억에 매각했다. 차입금을 대출받고 풋옵션까지 엮여가면서 옥션과 지마켓을 손에 넣었다. 패자가 되기 위해 그룹의 사활을 걸고 배팅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신세계 그룹은 재계서열 11위의 재벌기업이다. 3조 원대의 인수대금은 큰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자산총액만 62조에 달하는 굴지의 유통대기업이다. 실제로 보유한 부동산자산을 유동화한다면 부채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무리한 인수에서 비롯된 재무건전성 악화가 신세계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본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주력 사업인 부동산자산을 매각하면 주가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쿠팡의 매출은 국내 유통대기업을 모두 제쳤다. 사업수익을 물류망 확충에 재투자하는 전략이 성공하면서 흑자전환마저 성공했다.


 쿠팡은 2028년까지 3조원을 물류센터에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전통의 강호로 불리는 유통대기업들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롯데와 신세계는 사실상 패배를 선언했다. 그나마 남은 자리를 지키는 수성전을 벌이려고 했으나 C커머스의 공습이 이어졌다. 막대한 매몰비용을 지불한 이상 이커머스 시장에서 발을 뺄 수는 없다. 하지만 불황에 돌입하면서 본업인 유통업이 타격을 받았다. 시련은 연달아 찾아오는 법이다. 식음료, 건설, 호텔, 면세점 등 현금창출력이 강점인 사업이 전부 흔들리고 있다. 신세계는 내우외환에 빠졌다.


 매년 1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가져다준 스타벅스는 저가커피 브랜드의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타필드와 이마트를 찾는 방문객은 늘었지만 매출 면에서는 극적인 성장을 달성하지 못했다. 고정지출인 인건비와 유통원가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돌아선 소비심리는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사람들은 목적이 있어야만 쇼핑센터와 백화점을 찾는다. 이커머스의 편의성을 이길 만큼 특별한 소비자경험이 없다면 오프라인은 경쟁력이 없다.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사치품 마저 매출면에서 위기다. 성장하지 못하고 현상유지만 한다면 사업적으로는 전부 내리막이다.


 해외시장으로 적극적인 활로를 모색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세계는 내수유통기업이다. 적극적인 사업확장은 전부 국내에 한정되어 있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경제성장률을 따라 매출이 늘지만 불황이 장기화된다면 경쟁력은 크게 둔화된다. 사실 쿠팡도 내수에 치중한 기업이다. 해외진출에서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그러나 불황 속에서 쿠팡은 편의성과 가격경쟁력을 통해 국내 유통대기업들의 입지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신사업이나 해외진출을 위한 시간은 벌었다. 아마존, 알리바바, 테무, 라자다와 경쟁해야 하지만 신세계보다는 상황이 좋다.


 본업의 입지가 좁아졌을 때 기업은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심한다. 강력한 경쟁자들을 상대로 무제한에 가까운 지출을 벌이는 치킨게임 아니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신세계는 둘 다 실패했다. 치킨게임의 승자는 쿠팡이 됐다. 신세계가 실패한 이유는 크게 둘이다. 인수 후 경영통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SSG만의 강점이 없었다. 수직화된 신속한 운영체계가 없는 이상 수평화된 사업적 연계는 존재할 수 없다. 같은 계열로 묶이기만 했을 뿐 정작 기업 간 극적인 시너지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각각의 브랜드가 독립적인 운영을 통해 시장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지녔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마켓, 옥션, SSG닷컴 모두 쿠팡이나 네이버에 비해 특화된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가입해서 사용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결국 셋 다 각개격파 당했다. 지갑을 열게 만들만한 설득력이 없는 기업은 곧바로 도태된다. 소비자는 냉정하고 시장은 냉혹하다. 자본주의는 휴머니즘이 없다. 연합을 통해서 덩치는 불렸지만 전략이 없는 이상 전투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오합지졸은 머리수만 많을 뿐 전세가 밀리기 시작하면 금세 와해된다.


 롯데보다 그나마 이커머스에 진심이었던 신세계도 결과적으로 디지털전환에 실패했다. 3조 4천억이 들어간 빅딜은 그룹 전체의 재무건전성을 무너뜨렸다. 건설 사업부문은 유동성위기론의 주요 사례로 거론되다 자진 상폐를 결정했다. 패션부문을 보강하려고 2650억을 주고 사들인 W컨셉은 매출이 하락했다. 1352억을 써서 산 SK와이번스는 그나마 성과가 있었다. SSG랜더스로 이름을 바꾸고 2022년 리그에서 우승했다. 다만 그룹차원의 시너지를 일으킬만한 파급력은 약한 편이다. 4700억에 SBK코리아 지분을 가져온 것을 제외하면 이마트와 신세계의 투자 성적표는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신세계는 시장을 개척하고 직접 사업을 운영하는 노하우가 전무한 상태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전략으로 인해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수와 투자는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오프라인 유통에 강하다고 이커머스에서 성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근성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스토리는 소년만화 속에나 존재한다. 합병 과정에서 각 계열사에 전권을 위임했지만 시너지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업이었다. 어제의 경쟁자들을 모아놓고 천하통일을 말한다고 설득이 될까? 결국 동상이몽을 품은 채로 이합집산하다 모조리 각개격파당했다.


 방법은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혁신은 아래가 아니라 위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오너 경영은 컨트롤타워를 용납하지 않는다. 반쪽짜리 혁신을 내거는 사이 C커머스의 위협은 현실이 됐다.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에 물류센터를 짓고 K베뉴를 통해 국내상품을 해외로 배송하기로 했다. AI와 번역서비스 그리고 알리페이를 결제까지 지원한다. 해외진출과 국내사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플랫폼, 인프라, 솔루션을 전부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커머스 전환에서 밀려난 롯데와 신세계는 알리와 테무 앞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커머스가 촉발한 온오프라인 유통전환은 국가 간 장벽을 허물었다. 온라인 시장은 보호무역이나 관세가 없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배송 그리고 편의성을 선호한다. 싸고 편하지 않다면 곧바로 외면당할 뿐이다. 시장은 자비가 없고 소비자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신세계는 위기돌파전략으로 부동산을 꺼내 들었다. 2029년 화성시에 개장할 스타베이에 들어갈 사업비는 4조 5700억 원에 달한다. 테마파크, 호텔, 쇼핑센터, 골프장을 모두 갖춘 초대형복합리조트 사업은 역전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 신세계로 가는 동아줄이 될까? 아니면 이커머스가 그랬듯이 덧없는 일장춘몽으로 끝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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