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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이 설계한 치킨게임

전쟁이나 다름없는 승자독식 AI 경쟁

by 김태민

미래학자 로이 아마라는 기술은 단기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장기적으로 과소평가된다는 말을 남겼다. 생성 AI에 대한 찬양일색이던 시장이 불과 1년 만에 달라졌다. 2024년 8월 초 엔비디아를 필두로 전 세계 AI혁명을 이끄는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구체적인 하락 원인이 없었던 만큼 추세는 며칠 만에 곧바로 상승으로 전환됐다.


초창기의 첨단기술은 늘 꿈이나 다름없는 비현실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자본시장은 기술이 가진 영향력을 계산해서 기업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정치와 언론이 가세하면서 거품이 형성되고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인간성과 탐욕을 분리할 수 없으므로 역사는 늘 반복된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소수의견으로 치부당했던 비관론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생성 AI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비롯된 낙관론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폭락과 붕괴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잊을만하면 나오는 중이다. 그러나 시장붕괴와 거품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수는 계속해서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세계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AI혁명의 좌장인 미국으로 돈이 몰려들고 있다. 전 세계는 기술혁명을 주도하는 미국 빅테크에 사실상 올인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한화로 약 1경 원 대다. AI가 가져올 대격변을 믿는 신도들은 급락과 변동을 거듭하는 시장상황을 개의치 않는다.


실적을 넘고 전망을 건너 아예 믿음으로 빅테크를 매수하는 구간에 진입했다. 신기술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승은 결국 하락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기차라면 실적은 연료고 전망은 선로다. 연료가 떨어지면 전진하지 못하고 정지했다가 결국 멈추게 된다. 빅테크도 마찬가지다.


AI투자는 기술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치킨게임이다. 경쟁에서 주춤하는 순간 곧바로 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IT 업계는 역사적으로 늘 승자독식이 시장을 지배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경주에서 기권할 수 없다. 레이스에 합류하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붉은 여왕효과다.


여기에 치킨게임을 더하면 출혈경쟁이 발생한다. 빅테크들은 AI로 수익을 내고 있지만 기술투자에 훨씬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상태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초월적인 수준의 지출을 지속적으로 감내해야 한다. 실적이 늘어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 평정하는 지배자가 나타날 때까지 경쟁은 계속된다.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탔으므로 끝까지 가야만 한다. 결말을 알 수 없지만 멈출 수는 없다. 배팅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도전이 될지 패망을 낳는 도박이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생성 AI 시대 이전에는 기술적인 해자로 인해 분야 간 경계선이 명확했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했다.


이미지와 영상편집은 어도비가 지배했고 아틀라시안은 업무관리용 프로그램업계의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향상된 추론능력으로 능동적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AI기술은 업종 간의 경계선을 지워버렸다. 제미나이는 AI를 통해 이미지 편집 분야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챗GPT는 챗봇을 넘어 AI에이전트 기능으로 여러 생산성 프로그램을 대체하고 있다.


해자가 메워지기 시작했다. 차세대 AI는 국제적 산업표준으로 통하는 시장지배자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결국 물러설 수도 없고 양보할 수 도 없는 극한의 경쟁은 이제 전쟁이 됐다. 기업규모를 막론하고 벼랑 끝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레이스에 뛰어들어야 한다. 빅테크들은 AI에 무제한으로 돈을 들이붓는 중이다.


승자독식이므로 치킨게임은 가속도가 붙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4개 기업이 2024년 한 해에 쓴 돈만 300조가 넘는다. R&D와 데이터센터로 영역을 확장하면 지출규모는 500조 이상일 것이다. 오픈 AI는 오라클과 무려 400조짜리 데이터센터 계약을 맺었다. AI 무한경쟁 속에서 엔비디아는 글로벌 반도체기업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엔비디아의 초월적인 실적은 붉은 여왕이 만든 치킨게임의 산물이다.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자는 탄탄한 매출에서 나온다. 경기침체와 불황이 찾아오면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고 경쟁대열에서 밀려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레이스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은 악재가 되어 급락을 낳는다.


탈락자가 속출하면서 엔비디아의 매출과 실적이 하락한다면 AI혁명에 의존하는 세계증시가 붕괴할 수도 있다. 진짜 큰 문제는 AI기술의 실효성이다. 로보택시가 등장했지만 완전자율주행 출시가 늦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AI만 가지고 무한대에 가까운 도로 위의 변수를 완벽하게 대응할 수는 없다. 변칙적인 상황에 반응할 수는 있지만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현재 AI는 AI칩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의 컴퓨팅파워를 토대로 연산을 수행한다. 고도로 발전한 연산추론능력은 창조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지만 완벽한 창조는 아니다. 매뉴얼을 토대로 다채로운 형태의 퍼즐을 만들 수 있지만 아예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다. 창조는 연산과 사고를 연결하는 상상력을 토대로 나온다.


수학적 계산능력만 가지고는 창조적인 발상을 온전하게 구현할 수 없다. AI의 역량은 위대하지만 전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수준은 아직 멀었다. 권능에 가까운 AGI를 구현한 기업은 없다. 기술적 한계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AI의 딜레마를 극복해야만 고지를 정복할 수 있다. 상상하는 AI가 나오는 시점이 곧 특이점이다.


AI에게 인간성에 준하는 역량이 요구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차세대 AI는 철학적인 사고능력을 통해서 연산 너머의 상상을 구현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기업만이 승자독식에 성공한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법칙을 선보이지 못한다면 특별할 것 없는 혁신에서 그칠 뿐이다. 진정한 혁명은 아직 멀었다.


AI가 초래할 대격변의 상징으로 통했던 챗GPT 5.0 출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챗GPT의 업그레이드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혁신은 맞지만 혁명이라고 부르기에 AI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 물론 AI기술은 분명 문명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능이 아니다. 전지전능의 영역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혁신을 거치면서 기술은 징검다리를 타고 혁명으로 이어진다. 낙관론이나 비관론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어차피 기술혁명은 온다. 다만,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사회는 혼란을 겪고 윤리적인 문제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시장은 과열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예측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여줄 것 같다.


인류의 역사에서 쉽게 획득한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적 발전은 없었다. 신세계가 도래하려면 구시대의 낡은 체제가 완전히 붕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붕괴는 늘 그랬듯이 전란이나 공황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 힘의 질서가 재편되고 불변으로 통하는 상식이 사라지면 결국 시장이 무너진다. 세계 3차 대전을 제외한다면 AI버블이 가장 큰 위험요소다.


IT기업들이 벌이는 치킨게임은 난이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하드코어 위에 슈퍼하드코어 모드가 남아있다. 경영악화, 외부변수, 기술개발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경쟁자보다 항상 앞서 나가야 한다. 참가자들이 전부 포기하고 단 하나의 생존자가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은 멈추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빅테크 기업들 간에 넘을 수 없는 계급차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하나뿐인 승자를 제외하면 모두 패배자로 전락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이 부메랑이 되어 시장을 강타하게 될 것이다. 이미 시장은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닷컴버블을 거치고 지금까지 생존한 IT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장지배자가 된 빅테크 기업 아래 명줄만 부지하고 있는 메달리스트들이 수두룩하다.


금융자본은 늘 반박자 빠르게 반응한다. 기술의 한계를 알아차리자마자 상황은 급변한다. 장밋빛 전망은 실망으로 이어지고 탐욕과 불안이 균형이 무너진다.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이 멎으면 패닉이 발생한다. 떨어질 일 없다던 주가는 폭락하고 망할 일 없다던 기업은 문을 닫는다. 역사는 반복이다. AI경쟁은 치킨게임이 아니라 오징어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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