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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19. 2024

위기의 넥슨은 어디로 가야 할까

도덕적 해이와 리더십의 부재

 국내 게임업계의 2023년 성적표는 넥슨과 크래프톤을 제외하면 대부분 낙제점에 가까웠다. 넥슨은 작년 한 해 동안 총 3조 9323억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고 1조 2516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32%에 육박한다. 같은 시기 EA의 영업이익률은 18% 반디이남코는 11%대였다. 30%대 수익을 거두는 내는 글로벌 게임사는 닌텐도와 넥슨을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 5대 게임회사인 3N2K 중에서도 넥슨의 매출규모는 압도적이다. 넷마블과 엔씨소프트 그리고 크래프톤의 영업이익을 합쳐도 넥슨보다 적다.


 심지어 크래프톤은 2023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넥슨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1 넥슨의 매출은 2 크래프톤의  배에 달한다. 규모면에서 보자면 넥슨은 자타공인 글로벌 게임기업이다. 일본 증시상장된 게임사 중에서 넥슨보다  회사는 닌텐도뿐이다. 업계 레전드로 불리는 스퀘어에닉스나 캡콤도 넥슨보다 규모가 작다. 일본 콘텐츠기업의 대표주자인 반다이남코조차 영업이익률과 시가총액 면에서 넥슨보다   아래다. 그러나 기업의 매출규모와 재무상황만 보고 우열을 단언할 수는 없다. 넥슨은 대외적으로는 성장하는 모양새지만 내부적으로 본다면 위기에 직면해 있다.  4  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넥슨은 기업의 핵심인 신뢰를 잃어버렸다. 올해 초 넥슨의 메이플 큐브 사태가 터졌다. 인게임 내 확률 조작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슷한 문제가 몇 년 주기로 계속 반복되는 중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용자들에게 회사 차원에서 제시한 재발방지대책은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사과방송과 유저 보상패키지를 뿌리면서 매번 유야무야 넘어갔다. 성난 유저들의 불매운동과 정부 차원의 경고가 있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논란은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졌다. 이슈는 늘 또 다른 이슈가 덮어버렸다. 도덕적 해이는 사라지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더 심화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게임은 이너서클 문화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본인이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면 문제에 관한 직접적인 체감도는 낮은 편이다. 현명한 유저들이 협력해서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넥슨은 반복적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논란이 발생해도 매출은 지속적으로 우상향 했다. 보상 목적의 이벤트와 업데이트가 매출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언젠가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안일한 대응이 몇 년간 반복되다 결국 메이플 큐브 사태가 터졌다. 게이머들의 민심은 바닥에서 지하로 떨어졌고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를 통해 악명이 널리 퍼져나갔다.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넥슨의 전매특허였다. 다년간 쌓인 운영노하우를 통해서 유저들로부터 수익을 뽑아내는 노하우는 거의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과금모델 자체는 해악 아니다. 이용자에게 즐거움과 만족감을 준다면 수익과 재미를 동시에 잡는 묘수가 된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악랄한 확률형 BM만 남고 재미는 완전히 사라진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그리고 넷마블은 3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게임 내 과금구조를 업계표준으로 만들어버렸다. 치밀하게 설계한 도박성 콘텐츠는 한국 게임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칼로 흥한 자는 결국 칼 때문에 위기에 빠지게 된다.


 넥슨은 뿌린 대로 거뒀다. 소비자에 대한 누적된 기만행위는 민심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전히 넥슨 게임들은 매출은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신뢰를 크게 잃어버린 이상 앞으로의 행보는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가상현실에서 얻는 쾌락을 위해서 현실이 피폐해지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다. 매몰비용과 중독에 길들여진 극소수의 헤비유저들은 잔류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라이트유저들은 지속적으로 넥슨의 영향권에서 떠날 것이다. 이는 전망이 아니라 현실이다. 넥슨의 오리지널 IP들은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 <던전 앤 파이터> 모두 20여 년 가까이 서비스한 게임이다. 새로 유입되는 신규유저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넥슨의 오리지널 IP들은 전부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회비용 때문에 게임을 접을 수 없는 고인물들만 남아있고 신규 유저의 유입은 거의 없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매출은 분명 성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저가 대거 유입된 것보다는 게이머 1인당 지출이 늘어난 것에 가깝다. 그래서 넥슨은 2010년대부터 주요 IP의 노후화를 대비하기 위해 차기 IP를 발굴하는데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신작출시를 지속했다. 국내 대형게임사 중에서 넥슨만큼 적극적으로 개발프로젝트를 수행한 곳은 없다. 그러나 신뢰를 상실하고 악명이 늘어나면 이런 좋은 시도의 가치마저 반감된다.


 결과물이 좋아도 의도를 의심받게 되고 작품성을 인정받아도 사람들의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다시 유저를 기만하고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불신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작년 한 해 넥슨은 <퍼스트 디센던트>와 <더 파이널스>를 비롯한 다양한 신작라인업을 선보였다. 특히 산하 스튜디오인 민트로켓이 개발한 <데이브 더 다이버>는 기대 이상의 큰 흥행을 거뒀다. 넥슨의 신작들은 완성도와 작품성면에서 분명 호평받았다. 그러나 뒤에 넥슨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 국내외유저가 적지 않았다. 엔씨소프트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망가진 기업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렵다.


 창업주였던 故김정주 NXC 회장은 생전 넥슨이라는 기업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실질적인 경영은 오웬 마호니 대표의 몫이었지만 넥슨은 늘 김 회장의 설계를 기반으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대표와 창업주의 손발은 잘 맞았다. 스토케와 엠바크 그리고 네오플을 인수한 넥슨의 판단은 옳았다. 물론 넥슨게이트를 비롯한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다. 공이 있었던 만큼 과도 뚜렷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김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리더십의 공백이 생겼다. 10년 이상 넥슨을 실질적으로 경영한 오웬 마호니 대표도 조만간 넥슨을 떠난다. 그리고 창업주와 대표가 야심 차게 진행했던 신사업들은 대거 정리수순을 밟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을 매각하면서 미래먹거리로 선택했던 코인비즈니스에서 손을 뗐다. 5천 억 원을 들여 인수한 할리우드영화제작사 AGBO의 투자는 전손처리했다. 아시아의 디즈니를 꿈꾸며 미디어콘텐츠기업으로 도약하길 바랐던 김 회장의 유지는 뒤안길로 사라졌다. 던파를 넥슨에 안겨준 허민 원더피플 대표를 특급소방수로 기용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협력의 결과물이었던 <슈퍼피플 2>는 참패했다. 게이머들의 신뢰를 잃고 리더십의 부재에 직면한 현재 상황은 내우외환이나 마찬가지다. 새로 대표에 취임하게 될 이정헌 내정자는 ‘게임 내 콘텐츠 양을 2배 늘린다’는 방안을 내놨다. 아쉽지만 대내외 악재를 해소하는 묘안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넥슨의 주요 타이틀은 노후화되었지만 여전히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가 될 IP를 개발하기 위해 들인 노력도 하나 둘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넥슨은 콘텐츠를 유니버스 레벨로 확장시키는 시도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다. 디즈니와 닌텐도 그리고 스퀘어에닉스는 자사 콘텐츠를 활용한 원소스멀티유즈(OSMU) 유니버스를 구축했다. 반다이남코의 건담시리즈나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세계관을 넥슨은 손에 넣지 못했다. 넥슨의 미래는 콘텐츠 유니버스에 달려있다. 그러려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도덕적 해이나 다름없는 고질적인 악습을 먼저 끊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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