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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22. 2024

비극의 요람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행한 국민들이 늘어나는 나라

 한국은 사회적 비극의 전조증상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처하고 남들도 다 그렇다는 말로 넘어간다. 그런 일들이 누적되다 보면 관행이라는 이름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횡령이나 배임 부실공사 같은 거창한 사건을 가져올 필요도 없다. 당장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정서적 이상신호를 철저한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사회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해명과 변명을 섞어가며 사태를 축소하는데 집중했다. 적어도 지난 20년간 이런 현상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덮어놓고 모른척했던 이상징후들이 결국 사회적 질병이 된 것이다. 중독문제와 지능범죄가 매일 뉴스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각종 신경정신과 질환이 급증하고 있다. 대낮에 길을 가다 칼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사는 세상이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적 불안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우범지대가 없고 치안이 보장되어 있는 부자동네가 아니면 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생겼다. 덕분에 강남불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회 탓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경향은 고착되면 개인의 노력이나 대응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전 국민의 인식이 크게 전환되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의 의식개선은 불가능해 보인다. 폭탄이 터지고 나면 남는 것은 잔해뿐이다. 이미 폭발은 몇 번이나 일어났다. 재난과 참사라는 형태로 커다란 충격을 준 사회적 비극들을 떠올려보자.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그 후로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비극의 역사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징후를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는 태도는 한결같다.


 사람이 죽어야 제도가 개선되고 몇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어야 여론이 형성된다. 경제지표를 가지고 선진국이라고 말하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인명을 경시하고 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수에 불과한 패배자들이나 쓸모없는 하류인생들을 방치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제는 성장하고 국가경쟁력은 나날이 올라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무시당했던 사람들이 가공할만한 위력의 폭탄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어가 공격보다 몇 배는 어렵다. 총이 등장하고 수백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방탄복이 나왔다. 공권력의 압도적인 힘으로도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일탈범죄는 막을 수 없다.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신질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견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일은 국가소관이었다. 책임을 떠넘기고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관행은 여전하다. 일탈범죄를 일으킨 자들에게 동정이나 서사는 필요 없다. 그러나 발생배경에 국가의 그림자가 펼쳐져있었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마약의 유통과 확산, 제도의 취약점을 악용한 전세사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피싱범죄, 해마다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인명피해. 이 모든 것들이 당한 사람들이 잘못이라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개인의 문제를 단순히 일탈로 규정하고 예방과 해결에 중점을 두던 시대는 지났다. 온라인이 모든 인간을 24시간 연결하는 시대는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계산해야 한다. 사칙연산으로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나비효과가 몰고 올 거대한 파도를 예측해야 한다. 지지부진한 속도로 진상규명에 공권력과 매스컴이 붙어있는 동안 또 다른 참사가 소리 없이 다가온다.


 개인의 결함이나 소수의 문제로 치부했던 우리 사회의 어둠은 깊다. 사회 이면의 뒤틀린 지하세계는 어두운 욕망을 발산하려는 자들로 가득하다. 기술은 그들을 연결시키고 사회를 향한 증오는 그들을 결속시킨다. 참사와 비극은 범죄와 테러의 형태로 계속해서 터져 나올 것이다. 사람들 내면의 어둠이 지하세계의 밤과 만나 한국 사회에 거대한 심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앞으로 한국 사회는 안전할 수 있을까? 우리는 비극의 중심 속에 있다. 누군가는 안전을 보장받는 환경에서 구경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참극의 한 복판에서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양극화는 경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주에 국한되어 있던 삶의 질과 생활수준은 이제 생존문제로 확장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거치면서 성장한 강대국이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늘어난 체급에 비해 내면은 여전히 문제투성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불행하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회구성원들이 가득한 국가의 행복도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행한 국민들이 늘어나는 나라. 사회가 발전할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나라. 한국은 지금 비극의 요람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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