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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는 차이나 인베이전

중국기업이 한국시장을 공략하는 전략

by 김태민

알리바바의 한국 진출은 차이나 인베이전의 신호탄이었다. 3주 전 징둥닷컴이 한국진출을 선언했다. 징둥의 물류자회사인 JD로지스틱스는 인천과 이천에 물류센터를 오픈했다. 이커머스 플랫폼을 먼저 오픈하고 물류센터를 추후에 확보하는 테무나 알리익스프레스와 반대되는 행보다. 징둥은 가장 자신 있는 본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고객유치를 위해 무관세, 수수료 면제, 보조금 지급을 내세우면서 강도 높은 시장공략에 들어갔다. 낮은 비용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JD로지스틱스는 중국 1위 물류기업이다. 징둥닷컴뿐만 아니라 3자 물류 서비스를 통해 많은 기업의 배송을 책임지고 있다. 심지어 경쟁사인 알리바바마저 징둥의 물류서비스를 이용한다. 현재 19개 국가에서 100개가 넘는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최대 공급망까지 보유하고 있다. 징둥의 핵심전략은 경쟁사보다 낮은 비용으로 더 빨리 배송하는 것이다. 일찌감치 AI와 로봇에 투자해서 풀필먼트 센터를 자동화했다.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뿐만 아니라 내실까지 다졌다. 최근 컬리와 배민을 합친 중국 식품배송기업 다다넥서스까지 인수했다. 지난해 징둥의 매출은 약 230조 원으로 쿠팡의 5배가 넘는다.


자금력과 기술력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지만 징둥은 쿠팡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쿠팡과 네이버와 직접 경쟁하는 것보다 물류망을 공략하는 쪽이 낫다. 징둥은 본토에서 성공한 검증된 전략을 한국시장에 맞게 수정해서 최적화했다. 인천과 이천의 물류센터는 징둥의 글로벌물류망과 완벽하게 연동될 것이다. 수출수입에 드는 운송비용을 경쟁사보다 크게 절약할 수 있다.


고정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 이익은 알아서 따라오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인건비와 물가 그리고 유가에 영향을 받는 국내 물류기업과 유통채널은 운송비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자금여유가 있는 대기업들은 버티겠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은 가중되는 비용부담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 돈 앞에 장사 없다. 저렴한 이용요금을 내세우는 알리익스프레스나 JD로지스틱스의 고객은 결국 늘어나게 될 것이다.


직구로 물건을 떼다 파는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테무나 알리를 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징둥의 시장전략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시장에서 고객사와 이용자를 확보하지 않아도 사실 징둥은 이미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상태다. 알리바바나 테무도 마찬가지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은 치킨게임에 돌입해도 출혈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테무는 중국본토에서 생산한 저가 상품을 해외에서 손해보고 팔아도 이익이다.


재고나 다름없는 정크와 벌크를 던져주고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알리바바 산하 물류기업인 차이냐오의 유통망을 이용한다. 게다가 결제는 알리페이와 연동된 국내 간편결제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직구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고객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이전투구에서 살아남은 베테랑이다. 쿠팡과 네이버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노리지 않는다.


그들은 약한 틈을 파고 들어서 시장의 아래부터 훑는 전략을 선택했다.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이다. 강자는 소수다. 대다수는 약자다. 불황에 취약한 약자인 중소기업과 개인이용자의 유리지갑은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로부터 점유율을 빼앗아올 생각도 없다. 와우멤버십과 네이버멤버십 이용자들이 알리나 테무도 같이 쓰게 만들면 성공이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은 알리페이를 지원한다. 그리고 통관과 배송은 징둥이나 챠이냐오가 담당한다. 테무나 알리만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해외시장에 진출한 중국 기업은 모두 엮여있다. 그들은 경쟁자면서 동시에 시장개척을 위해 연합한 동료다. 정복과 토벌을 목적으로 하나의 깃발아래 모이는 군벌처럼 연대한다. 각자 맡은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다.


알리바바는 한국 핀테크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2010년대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국내 간편 결제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와 토스페이 모두 알리바바의 협력관계다. 심지어 카카오와 토스는 지분을 인수해서 대주주 지위에 있다. 결제시장은 일종의 파이프라인이다. 알리바바가 깐 무대 위로 여러 중국기업들이 몰려들었다. 앞으로 징둥은 공급망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는 활성이용자들을 늘리면서 한국 내 중국이커머스의 입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둘은 이미 쿠팡과 네이버 다음 3,4위에 위치한 상태다. 시장이 커지면 매출로 이어지고 결제망과 공급망의 규모도 더 커진다. 중국기업들은 본토에서는 서로 적이지만 해외시장 앞에서는 주저 없이 연대와 협력을 선택한다. 황제로부터 영토확장의 명을 받은 장수들처럼 그들은 ‘기묘한 꽌시’로 엮여있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내수경쟁보다 해외진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표면상 독려지만 사실 명령이나 다름없다. 시진핑 집권기의 공동부유를 달성하려면 중국대표기업들은 세계를 상대로 수익을 올려야 한다. 중국 기업들 입장에서 새로운 시장개척은 기업의 성장과제가 아니라 국가가 하달한 의무다. 무림의 여러 파벌은 언제나 충돌하면서 갈등하지만 대의 앞에 하나가 된다. 황명은 거역할 수 없다.


한국 이커머스 업계가 이합집산하는 사이에 중국은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토대로 국내 유망 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고 여러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정복전쟁을 할 때 현지에서 물자와 병력을 조달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전략은 없다. 한국은 성장과 혁신을 가져올 기업과 인재들을 손 놓고 빼앗기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영리하다. 정면승부를 피하고 취약점을 노렸다.


연합전선을 구축한 다음 각자 강점을 발휘해서 파고드는 절묘한 계책이 먹혔다. 시장을 선점하고 망을 장악해서 단계적으로 공략하는 전법까지 모두 성공했다. 스트레이트 한 방에 무너지는 복서는 없다. 잽이 쌓이다 보면 충격이 누적되면서 중심이 무너지고 스텝은 흐트러진다. 그때 날아온 보디블로를 맞고 순식간에 고꾸라진다. 한국시장은 이미 연달아 유효타를 허용한 상태다. 그러나 정작 국내 이커머스 기업은 중국시장의 문을 두드리지도 못했다.


잽은 커녕 링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세계와 롯데가 헤매는 사이 쿠팡은 우물의 승자가 됐다. 네이버와 1위를 가리는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두 기업 모두 해외사업은 부진하다. 우물 밖으로 나가는데 애를 먹는 중이다. 해외 이커머스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쿠팡은 아예 글로벌패션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해서 수익화 전략을 수정했다. 한국은 성장한계에 직면했다. 인구와 경제성장 모두 하락세로 전환했다.


세계 5위의 이커머스 시장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쿠팡의 성공신화는 국내 유통공룡들에게서 점유율을 빼앗아온 것에 불과하다.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내수 파먹기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미국과 중국의 시장지배자들과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경쟁을 스스로 포기한 상태다. 중국과 미국이 미래를 개척할 목적으로 AI에 투자할 때 한국은 부동산을 선택했다.


경쟁에서 밀려난 한국 기업들은 서울 부동산과 임대용 오피스빌딩을 사서 빚과 함께 금융자산만 늘리고 있다. 영토를 확장하는 치열한 정복전쟁이 일상인 시대를 역행하는 중이다. 땅만 탐하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은 한국을 상대로 공세를 벌이고 있지만 쿠팡이나 네이버는 우물 속 패권다툼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전자는 시련과 실패를 거쳐 승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승부를 주저하는 도망자는 기권과 패배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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