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쫀득쫀득한 쌀떡볶이로
떡볶이란 녀석은 보통 놈이 아니다. 맛있다. 정말이지 너무 맛있다. 탄수화물에 단짠과 매운맛이 버무려져 있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다. 떡볶이를 싫어하는 한국인은 잘 못 봤다. 소울푸드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떡볶이를 같이 먹는다는 것은 소울을 공유하는 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 즉석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계란에 라면사리를 넣어서 먹었는데 아직도 그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다. 앞치마를 둘러메고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그 정겨운 모습이란! 각자의 앞접시에 담긴 떡볶이 한 그릇에 우리의 마음은 푸근해졌다. 너무 배부르게 싹싹 긁어먹어서 일말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계란을 추가해서 2개를 먹었으니 단백질도 같이 보충되어 괜찮을 거라 합리화를 했다.
나 같은 떡볶이 러버들 덕분인지, 이 녀석은 몸값이 올라 어릴 적 분식집에서는 한 접시에 500원이던 것이 이제는 만원을 넘게 호가하고 있다. 게다가 즉석떡볶이, 국물떡볶이, 짜장떡볶이, 로제떡볶이... 베리에이션도 엄청 많아졌을뿐더러 사람들은 이제 쌀떡과 밀떡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떡볶이계의 르네상스다. 언젠가 처음에 고추장을 넣고 태초의 떡볶이를 만들었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할 것이다. (어느 분이신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쌀떡 밀떡 얘기가 나와서 잠깐 덧붙이자면 이것은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만큼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선택지이다. 나는 쌀떡의 쫄깃쫄깃함을 좋아하지만 밀떡도 배제하지 않는데, 다른 밀떡파들도 무조건 쌀떡만을 고집하다는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부먹찍먹 논란처럼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그만큼 떡볶이라는 음식 앞에서 사람들은 관대하고 포용력이 커진다.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와 튀김 한 그릇으로 한 끼를 때우면 행복하다. 특히 추운 겨울에 어묵국물과 함께 후후 불어가며 먹으면.. 어휴, 지금 글 쓰면서도 입에 침이 고인다. 국물이 그득한 국물 떡볶이도 좋다. 떡볶이를 다 먹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약간 설탕고추장물을 마시는 기분이 들어 몸에 미안하지만 뭐, 맨날 먹는 것은 아니니까. 하면서 뇌리를 노크하는 단짠맛에 몸을 맡겨본다.
다만 아직도 엄두가 안나는 것은 유명한 프랜차이즈인 엽기떡볶이다. 맵찔이인 내가 매운 단계 '착한 맛'을 먹고 의외로 괜찮아서 초보맛을 도전했다가 쿨피스와 물을 미친 듯이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대신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드는 매운 떡볶이를 먹고 나면 땀이 쫙 빠지고 정신이 번쩍 들긴 한다.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는 느낌. 하긴, 나를 포함하여 우리 현대인들은 가끔 이렇게 인생의 매운맛도 맛보고 주기적으로 정신을 차릴 필요도 있다.
조만간 딱 꽂히는 점심 메뉴가 없는 날에는 떡볶이를 먹자고 해봐야지. 너무 자주 먹으면야 몸에 해롭겠지만, 가끔씩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떡볶이를 먹는 경험은 분명 삶의 질을 향상해 줄 것이다. 떡볶이를 먹고, 가성비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손에 든 채 거리를 잠시 산책해야지. 날씨가 맑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화려함과 비쌈과 멋짐에 매혹되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것들을 종종거리며 쫓아가려 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는 평범한 떡볶이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 하루가 아름답고 즐거우며 평온할 수 있다. 친구와 떡볶이 1인분과 순대 1인분을 접시에 나눠 먹으며 하하 호호하던 평범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런 평범함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그런 날들이 모여 앞으로의 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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