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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2. 2021

2년 전력질주 후의 멈춤

일상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인생 선배로서 뭔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고 이런 걸 나도 모르게 추구했었나 보다.

내가 인생 선배이긴 하지만 이제는 내 입 풀칠하기 바빠  그 사명감(?)을 뒤로 한채 그냥 하루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아프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하는 모습이 조금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성장하지 않는 나의 미래와 운명이 그냥 나를 안주.. 아니 포기하게 만드는 것 같다.


따뜻한 햇볕에 그냥 하루 딸아이와 하하호호 떠든 시간, 

고시원에서 눈치 안 보고 이제는 편하게 코 골고 내 방에서 잘 수 있는 이 편안함.

하루 한 끼 삼각 김밥으로 어떻게 버티지 하며 괴로움에 사무치던 때를 뒤로 하고

맛있는 밥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나를 너무 안주하게 만든다.

물론 버틸 수 있는 총알이 얼마 없기에 두려움이 엄습하긴 하지만..


남들이 보면 지금 이 상황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아마 내 이전 상황이 너무 최악이어서 그런지

이 상황이 너무나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게 참으로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다.


각종 미디어에는 금융자산 10억을 가진 이들이 11% 증가했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도배를 한다.

마치 내가 그 11%에 들지 못해 낙오자가 된 것인 마냥

10억이 있던 없든 내가 인정을 받든 안 받든 그냥 무시하고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남 시선을 의식 하나 보다.


가끔은 산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심정이다.

어찌 보면 2년간 치열하게 달리던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이렇게 멍 때리는 게 일종의 산속 일지도 모르겠다.

멍 때린 지 3개월이 넘어간다.


그동안 우울증에 번아웃에 시달리던 게 언제냐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10년 동안 먹었던 약도 끊고

아침마다 조깅에 홈트에..

자꾸 이런 현상이 나의 마음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계속 집에 눌러 있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


아마 총알이 다 떨어져 인간관계와 조직이라는 걸 다시 느껴야 되는 시점이 온다면 또다시 괴로움에 시달리겠지만

결국 나는 사회적 동물이 아닌 혼자 생존해야 할 인간이 되는 것인가.

여렸을 적 많은 꿈과 공상으로 나의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큰 인물이 되는

나의 목소리를 듣는 이가 아무도 없기에 모두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위치가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근데 점점 나이가 먹어 그 꿈과 공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아닌 더 이상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체감이 될수록 난 하나둘씩 미래에 대한 포부와 시도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포부가 시도가 없어지고 꿈이 없어지니 내 위치가 나의 그냥 일상이 그냥 목표가 돼버려서 안주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혼자 우두커니 집에서 운둔 생활을 한 지 3개월 하고 10일이 지난 이 시점

난 왜 사는지 꼭 꿈을 달성하고 시도가 있어야 사는 건지 의문도 들기도 하고

신이 나에게 주신 일상을 그냥저냥 즐기는 게 죄처럼 느껴지는 하루이다.


누가 세뇌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원.

전력질주를 하다 3개월째 주저앉아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 수도..

마치 모두가 다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데 나만 주저앉아 있으니.


옛날 옛적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렇게 전력 질주를 했을까

왠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치 시대가 날 이렇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아니면 그들의 수명이 지금보다 현격히 짧기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과 어린 학생들이 가정폭력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달리고 죽음에 문턱을 오고 가는 걸 모른 체 하고 나 혼자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죄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떠오르지도 않고


왜 난 이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고.

뭐가 뭔지 내 생각과 정신이 옳은 건지 헷갈리는 하루다.


월요일에는 백신 2차 접종을 했다.

1차 때는 근육통에 괴로워했는데 2차는 이상하리 만큼 그냥 살짝 팔이 뻐근한 것 말고 괜찮네 하던 찰나 

신이 이놈아 한번 느껴 바라 하듯이 며칠 동안 괴로움이 내 몸을 감싸 저 고통에 바닥에서 헤엄치고 

이제야 좀 안정이 돼 이렇게 글을 쓴다.


난 언제까지 이런 생각과 생각과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누구처럼 칠렐레 팔렐레 인생을 살 수는 없는지


오늘은 내 방 전체가 불이 나 싸그리 다 타는 꿈을 꾸었다.

갑자기 한순간에 인생을 달리 할 수도 있는 이런 시대

하루하루가 살 얼음판인걸 아무도 모른 체 

천년만년 살 것 같은 기분으로 그냥 저렇게 살다

나이 70, 80 돼서 과거를 곱씹으며 그땐 좋았지 하며 홀로 쓸쓸히 병마와 싸우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눈이 온다.

첫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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