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는 바꿀 수 있답니다
보통은 내가 알피보다 동작이 빠르다. 외출 준비도, 잘 준비도, 타자 치는 속도도, 책을 읽는 속도도, 말투도. 알피가 멕시코인 특유의 여유를 타고났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단 꼼꼼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외출하고 집에 오면 알피가 신발을 다 벗을 때쯤에는 나는 이미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이다.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우린 아직도 서로의 빠름과 느림에 놀란다. 그런데 알피가 나보다 더 빠를 때도 있다. 바로 설거지를 할 때이다. 레스토랑 경력을 보면 설거지도 많이 했을게 분명한 알피는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설거지를 해치운다. 난 정말이지 알피가 설거지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손잡이에 거품이 묻어있는 채로 건조대에 놓여있는 프라이팬을 볼 때까지는.
조리대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알피가 설거지하는걸 유심히 봤다. 주방세제를 짜서 거품을 낸 뒤 박박 닦는 것 까지는 나와 같다. 나보다 훨씬 박력 있고 빠르다. 그런데.. 헹구는 속도 또한 빛의 속도다. 정확히 말하면 흐르는 물에 왕복으로 두 번 정도 통과시킨 컵과 그릇들이 건조대로 직행한다. 작고 귀여운 퐁퐁 거품이 뽀록 뽀록 거리는 유리컵을 보는 내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잔소리로 들리게 하지 않으면서 저 헹구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건조대에서 알피가 금방 올려놓은 컵을 집어 들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한다. “자기 이거 내가 한 번만 더 씻어도 될까요? 아직 거품이 있는데 다시 안 씻으면 내가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알피가 피식 웃는다. 어? 웃었으니까 조금 더 말해보자 싶어 말을 잇는다. “이거 세제 잘 안 씻어내면 일 년에 한 스푼씩 세제를 퍼먹는 격이 된대. 조금만 더 충분히 빡빡 닦아 주...” 뭔가 분위기가 급 다운된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슬쩍 보니 심기가 살짝 불편해진 얼굴이라 눈치껏 입을 닫는다. “뭐 그렇다고... 설거지 수고했어. 우리 남편 최고야!” 알피가 웃으며 눈을 살짝 흘기는데 아주 약간 삐진 것 같다.
사실 이건 나에게 낯선 경험은 아니다. 미국에서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살 때도 이 친구들이 설거지하는 걸 보고 난 뒤로는 그릇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헹궈서 쓰는 버릇이 생겼다. 호주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세제를 푼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한쪽에 더러운 그릇들을 다 몰아넣고 불린다. 그리고 그 그릇들을 하나씩 꺼내 흐르는 물에 대충 헹군 다음 탁탁 털어서 자연건조시키는 대신에 수건으로 그릇의 물기를 닦아내고 바로 찬장에 넣는다. 한 번은 그 집 따님이 설거지를 해서 주면 내가 물기를 닦는 역할을 했는데 거품이 남아있는 그릇을 자꾸 줘서 난감했던 기억이다. '서양 사람들이 설거지를 하는 방식은 왜 이럴까' 생각하다가 '이 집에서 쓰는 세제는 천연 유기농이거나 식용인가 보지' 하고 좋을 대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우리 집 주방에서 이걸 또 목격할 줄이야.
그 이후로는 알피가 설거지를 할 때마다 옆에서 주방을 정리하며 흘깃흘깃 보는 걸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알피도 내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있겠지. 말 없는 은근한 신경전이 이어지다가 결국 거품이 채 가시지 않은 숟가락이 건조대에 놓이는 걸 보고야 만다. “으악 미안해.. 잔소리하려는 건 아닌데 눈에 보이는 이상 어쩔 수 없단 말이야” 하며 숟가락을 집어 들어 다시 헹구는 걸로 마무리된다. 계속 이러다간 설거지 파업사태가 도래할 수 있으니 생각을 잘해야 한다.
결국 잔여 세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환경 설거지 비누를 찾아 주문하는 걸로 우리의 신경전은 일단락되었다. 알피가 놀린다. “남편은 교체가 안되니 세제를 바꾸기로 했구나? 오, 이거 괜찮은 광고 문구인데? 남편을 바꾸진 못하지만 세제는 바꿀 수 있답니다!”
아직은 농담이라도 “그러게 남편을 바꿀 걸 그랬나?” 같은 말은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신혼은 신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