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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Aug 23. 2021

사치


과외를 하다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었다.


'아, 곧 그만두게 되겠구나. 잘리겠구나.'


불안한 느낌은 늘 현실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현실에 옮겨졌을 때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다는 거지.


그런 과외는 십중팔구 내가 차라리 먼저 그만두고 싶어 하는 과외였다.


학생이 열심히 하지 않고. 자주 수업을 펑크내고.

그런 패턴.


수년간의 경험으로 그런 쎄-한 느낌을

난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돈벌자고 하는 거긴 하고, 내가 대단한 사명감을 지닌 교육자가 아닌지라 이 일에 아주 큰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더 좋았다.


그냥 꽁으로 돈 벌기는 싫었는데, 뭐랄까, 사기치는 것 같다도 느껴져서.



내가 그정도로 실력 없는 선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무성의로 일관하는 학생들과 씨름하기란 굉장히 힘든 일이었어.


내가 지쳐서, 양심팔고 돈만 땡기는게 잘 안 됐던 것 같아.


문제는 그런 과외 하나 짤리면 당장 삶이 휘청댔다는 것. 소비 계획이 한참 틀어졌지. 한달 수입의 최소 30% 이상을 차지하는 게 과외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내가 먼저 관둔 적은 없지만... 관두고 싶었던 적은 참 많았다. 차라리 먼저 잘라주었으면 싶은 적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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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 4년 전쯤 끄적였던 메모다. 과외를 하나 잘리고 난 후의.


왜 이때부터 직업인으로의 삶을 그렸던 걸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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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 과외니까 가능한 거였을 게다.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대학생이니까 가능한 거였다고. 내가 목숨걸고 일하는 직장에서도 그런 한가한 생각이 가능할까.


사보타주가, 태업이란게 가능할까?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사표장을 품에 넣어두고 만지작거리는 일이 가능할까. 당연히 아니겠지.


사치다. 과외를 잘리고도 마음의 짐을 한더미 내려놓을 수 있는 지금 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게  사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품 안에 늘 사직서 한장 쟁이고 다니는 직장인으로,

이때의 치기가 우습고 귀엽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직 사보타주는 하지 않고 있는 걸.

고통 속에서 나름의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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