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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Oct 22. 2024

삶은 마법보단 현실


1년차 때의 일이다. 수습 딱지를 간신히 떼고 맞은 여름. 나를 맞이한 건 폭우였다. 나날이 뻗쳐 오는 코로나19의 마수에서 허덕이기도 벅찼는데, 장마까지 겹치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비는 매년 오지만 그때처럼 직접 많은 비를 맞고, 비를 찾아다닌 적은 없었기에 여러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 해 여름의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비를 직접 맞지 않은 날 찾아왔다. 보도국에서 내근을 서던 날이다. 제보가 들어온 영상들을 묶어 설명하는 호우 피해 종합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감이 좋았던 제보 담당자가 찾아왔다. '아주 그럴듯한 영상'이 들어왔다면서 말이다. 



폭우에 무너져내린 경기도 이천의 어느 마을 어귀에서, 사람들이 땅을 판다. 흙은 물에 젖어있다. 그런데 흙을 파헤치니 무언가 하얀 게 꿈틀거린다. 강아지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흙 속에 새끼 강아지들이 파묻혀있던 거다. 오들오들 떠는 강아지들을 보며 '얘는 살았다'라며 사람들이 꺼내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었는데. 여기서 감동의 강도를 더 증폭시키는 스토리가 있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강아지들이 묻혀있는 걸 알았을까. 근처에서 어미개가 새끼들을 구해달라고 짖었단다. 



묶여있던 줄을 스스로 끊고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하루 넘게 구슬프게 짖었던 어미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땅을 파보았던 주민들. 기적처럼 땅속에서 살아 돌아온 강아지 네 마리. 정말이지 아름다운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스토리는 그 해 우리 회사에서 가장 '히트'를 친 아이템 중 하나였다. 유튜브 조회수가 400만이 넘었을 정도였으니.. 


뉴스가 나간 바로 다음날, 편집부가 강력히 요청했다. 후속작을 만들어달라고. 그래, 이런 아이템을 하루만 써먹고 끝내기는 아쉬웠겠지. 딱히 반박할 논리도 없어서 강아지들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도 이천까지 날아갔다. 그런데 웬걸. 이미 강아지 2마리가 벌써 입양을 가버렸다지 뭔가. 어떻게 하루 만에 강아지가 바로 입양이 수가 있지? 이상했다. 동물보호소장은 "잘 기를 만한 사람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근데 그 '잘 기를 만한'이라는 이야기의 근거가, 당시 나로서는 좀 갸우뚱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강아지 2마리를 입양한 분은 일을 쉬고 있는 중년의 경찰관이었다. 그는 암이 재발해서 투병을 하고 있는 환자기도 했다. TV 뉴스를 보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수소문을 해서 동물보호소로 달려왔다. 땅속에 파묻혀도 살아 돌아온 그 생명력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고,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힘을 얻고 싶다고, 함께 살아가보겠다고 했다. 동물보호소장은 그런 의지가 있는 분이라면 강아지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강아지를 키워본경험이 있는지, 기를 만한 공간이 있는지 등까지 꼼꼼하게 따진 것 같지는 않았다. 몇 가지 의문이 따라왔지만 굳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따지지는 않았다. 입양한 강아지 두 마리의 이름을 '무병'과 '장수'로 지었다는데, 거기에 던질 만한 질문은 아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좀더 이어진다. 그로부터 1년쯤 후, 나는 갑자기 어떤 단체 카톡 대화방에 초대됐다.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부고 메시지만 하나 올라왔다. 아는 이름이었다. 강아지 2마리를 입양해간 경찰관이었다. 숙연해졌다. 


잠시 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강아지 2마리는 어떻게 된거지?' 


시청 동물보호과에 전화를 넣었다. 어쨌든 나는 최초 보도를 한 사람이었고, 그 입양이 이뤄지는데 영향을 미쳤기에, 끝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들려온 이야기는 좀 많이 서글펐다. 입양자는 본인의 건강이 시시각각 나빠지는 가운데 강아지 2마리를 케어하는데 굉장한 어려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데려간 강아지들은 진도믹스(로 추정되는)였다. 대형견 2마리를 기른다는 건 건강한 사람도 힘든 일인데, 투병 중인 사람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중에 아무도 강아지들을 선뜻 맡아 기르겠단 말을 하지 않았단다. 결국 마땅한 입양처를 찾지 못한 입양자는 '당근마켓'에까지 글을 올려 강아지들을 데려갈 사람들을 찾았단다. 당연히 연락은 없었다.


그 즈음의 나는 '강아지 전문 기자'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어쩌다보니) 개 관련 기사를 쏟아낸 상태였다.  대부분 '개농장' 잠입 취재였다. 한국의 식견문화, 보신탕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아졌다. 무병과 장수도 그런 처지에 놓였을 수 있겠다는 걱정은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올라왔다. 두 마리 강아지의 행방을 쫓았다. 시청 담당자도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열심히 추적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여차저차 괜찮은 입양처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춘천의 모처로 두 마리가 갔단다. 그래..




이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부조리는 수도 없이 마주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부조리보다 더 잔상이 길게 가는 게 있다. '아이러니'다. 무병과 장수를 기원하며 입양한 강아지들은 그런 바람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땅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강아지들은 굶어죽거나, 들개가 되거나, 팔려갈 뻔했다. 하지만 2020년 8월의 뉴스를 본 사람들은 아름다운 미담만 기억할 것이다. 어미 개의 모성애, 강아지들의 생명력, 그리고 이를 보듬는 인간의 따스함과 희망찬 삶.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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