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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Oct 06. 2024

다하지 않을 기억이여

<소진의 기억>, 글, 나


독서는 오래된 취미다. 취미였다. 책을 제대로 읽어낸 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종종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을, 그것도 한국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그러면 나는 조금 고민에 빠지겠지. 누구의 이름을 대야 있어보일까? 사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은, 웬만하면 다들 좋다고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가, 보통은 이 이름을 댄다.  


김소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기만 할 이름이다.


7차 교육과정을 함께한 친구들에게는 EBS 교재에 그의 소설 중 일부분이 짤막하게나마 실린 적이 있다고 부연해 보았지만, 기억하는 이를 보지는 못했다.



소설가 김소진은 작가가 되기 전에는, 한겨레 신문사의 기자였다. 그리고 1997년에 불과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요절했다.


나는 책을 처음 접할 때 책날개부터 읽는다.  보통 저자의 소개가 적혀 있다. 요약된 작가의 이력을 읽을 때 집중력이 가장 좋다.  그런 내게 김소진의 생은 꽤나 매력적인 이력이었다. 기자도 했고, 작가도 했으니까. 하나만 하기도 어려운 직업을 둘씩이나. 처음 김소진을 알게 됐을 때의 나는 기자도 작가도 아닌 학생일 뿐이었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 생각난다. 대구 어딘가에서 캠핑을 했다. 아니, 창녕까지 갔던가.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 학원에서 만난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은 내 청소년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늘 가지고 있던 불안감과 열등감을 익히 알았고, 그걸 굳이 억누를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워했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첫번째 수능을 애매하게 본데다가 정시 원서를 개판으로 내서 재수 확률이 매우 높아진 시점이었다. 어깨가 푹 꺼진 나를 선생은 활짝 웃으며 반겼다.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나갔다. 겨울의 끝이 아직 매서웠지만, 작은 텐트 두 동을 연결하고, 난로까지 피워놓으니 제법 따뜻했다. 밤이 깊자 맥주를 마셨다. 버드와이저 두캔씩을 따서 마셨다. 번데기탕을 같이 끓여 먹으니 참 좋았다. 내가 술을 얼마나 마실지 몰라 두캔씩만 사왔다기에, 술잔은 금방 동이 났다. 대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한때 시인이었던 선생과 함께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선생이 썼던 시. 꿈꿨던 소설. 그리고 나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는 그의 말.


OO같은 사람이 소설을 써도 좋을 것 같아


남의 칭찬을 좀체 잊어버리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 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나보고 작가가 되어도 좋겠다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수학을 가르치던 시인이, 수학을 못해 골머리를 앓던 중학교1학년을 보고 그런 생각을 왜 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참 힘이 셌다. 그 후로 나는 작가라는 꿈을 아주 막연하게나마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살았다. 어쩌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을지도.





기자의 꿈을 확정지은 것은 좀더 후의 이야기다. 기자가 되는데는 시간이 약간 더 걸렸고. 사실 이 글은 그 어드메에서 쓴 글이다. 5년 이상을 서랍에서 묵혀뒀다가 처음부터 다시 쓴다. 이 글을 처음 쓰려고 할 때의 내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


틀을 넘나드는 다방면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어쩌면 기자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현업에서 5년 가까이 일하면서 느끼기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적 영역에 속하지 않는 사적인 글을 쓰는 게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글을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김소진을 다시 생각해냈다. 이 글을 처음 쓸 무렵 읽던 책 <소진의 기억>을 서가에서 찾아냈다. 재능을 미처 꽃피우지도 못한 채 스러진 한 사람을 위한 헌사가 담긴 책이다. 김소진에 대한 기억일까, 그가 태워버린 역사에 대한 기억일까?


무엇이 됐든 소진은 멋진 이름이다. 사실 김소진이 자신의 것을 온전히 소진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래도 사람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그의 글과 삶을 계속 곱씹는다. 그렇다면 그는 소진되지 않았다. 다하지 않을 것 같은 기억이다.


내 안에서도 그는 다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존재로 계속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소진을 보며, 나를 생각한다. 다하지 않을 기억을 위해. 언젠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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