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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Feb 14. 2020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구나

여섯 번째 인터뷰이. 변호사 문혜정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섯 번째 인터뷰이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문혜정님을 만났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교대역 근처에 위치한 코워킹스페이스에서 만나 2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안녕하세요. 변호사 문혜정입니다. 저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2014년부터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울 때 보람을 느끼며, 주로 이혼 및 성폭력 분야의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자연스레 바인더를 접하게 되었고, 업무와 일상을 관리하는 도구로 바인더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혜정 변호사의 법률 바인더’라는 블로그를 통해 법률정보와 일상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인더를 오래 쓴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쓰고 계신지 소개해달라.

바인더는 업무, 육아, 독서 같은 자기계발에 걸쳐서 쓰고. 일기도 쓰고. 내 전부를 기록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일할 때는 재판 일정이나 의뢰인들하고 상담 약속. 업무 스케줄을 바인더에 다 적어놓죠. 상담도 여기다가 하고요. 상담지라고 따로 있긴 하지만, 그건 의뢰인이 찾아왔을 때 적는 편이고, 전화 올 때는 보통 바인더에다가 상담 내용을 적어놔요.


먼슬리는 개인하고 업무를 따로 썼었는데 작년 말부터는 하나로 통합시켰어요. 재판 일정을 여기에다 한 번 적고, 뒤에 위클리에 다시 한번 적기에는 좀 그런 거예요. 개인 스케줄하고 업무 스케줄하고는 함께 돌아가니까. 업무는 빨간색, 자기계발은 파란색, 모임이나 사람들 만나는 거는 보라색. 개인은 초록색 펜을 써요. 재판 일정, 상담은 다 빨간색이고, 강조해야 할 게 있으면 형광펜으로 칠해서 써요. 그리고 매일 체크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리스트에도 동일하게 개인하고 업무가 같이 들어가요.


바인더에 쓰는 컬러를 역할에 따라 분류해서 별도의 페이지에 적어두었다

프로젝트 리스트에는 업무용으로 출근 기록, 블로그 포스팅, 책 쓰기 준비 / 개인용으로는 신문 읽기, 일기쓰기 가계부 쓰기, 기상 체크용으로 하고 있어요. 체크는 몰아서 할 때도 있고 틈틈이 할 때도 있어요. 만든 위클리 속지는 전체 일정을 계획해서 적고, 플랜커스 태스크형 속지는 업무 내용만 적어요. 혼자 일하다 보니까 내가 전부를 체크해야 하는데, 디지털로 체크는 하는데 익숙하지 않더라고요. 구글 킵도 쓰긴 하는데,  눈으로 보이는 것도 필요해서 바인더에도 따로 체크해요. 저한테 온라인(디지털)은 오프라인(아날로그)에 기록을 도와주기 위한 수단이에요. 그래서 Workflowy, Notion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 쓰고 있어요. 업무 내용은 웬만해서 모든 할 일을 적어요. 제출할 서면이 뭔지 적고. 상담했던 내용이 뭔지 적고. 변호사들은 일이 다 그거니까. 상담 일정, 재판 일정, 서면 제출. 그거는 빠짐없이 체크해야 하니까.


먼슬리의 프로젝트 리스트에는 업무와 개인 목표를 틈틈이 체크하고 있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일하시나.

정해진 게 없어요. 노마드. (웃음) 서면은 주로 사무실에서 많이 쓰고, 급하게 제출해야 될 자문 의견서 있잖아요. 외부에서 오는. 보통 법원에서 제출해야 할 서면 같은 거는 당일 재판에 나가면 다음 재판 날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이거는 작업하는데 시간을 요해서 사무실에서 주로 쓰고, 의견서나 기업에서 요청하는 자문 의견서는 급하게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집에 있으면 집이고, 사무실에 있으면 사무실이고. 급한 대로 처리해요


그리고 재판은 그냥 출석이에요. 아시는 분들은 많이 아실 거예요. 재판은 그냥 출석이니까. 기존에 제출한 서면에 대한 검토를 하러 가는 자리.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본다면?) 누군가 의뢰를 하면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저 같은 경우 대면 상담을 원칙으로 해서. 상담 약속을 잡고 약속을 잡았으면 위클리에 일정을 적고, 먼슬리에도 적고 네이버 캘린더에도 적고 (웃음) 그리고 상담을 하고 의뢰가 성사가 되면, 제출해야 될 서면이 나오잖아요. 예를 들어 의뢰인이 소를 제기한다. 소장이 하나 생기잖아요. 그러면 소장을 언제 제출해야 하고 그런 일정을 다 적는 거죠. 소장을 제출할 때 당사자한테 요청해야 될 서류를 적을 필요는 없는데 저는 다 적어요. 빠뜨릴까봐. 그거를 의뢰인한테 전달하고, 계속 커뮤니케이션하고 소장이 완성되면 제출하고 그러면 끝나고. 법원에서 재판 일정이 잡히면 일정을 적고, 더 추가로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으면 의뢰인과 조율해서 또다시 일정을 잡아요. 계속 반복이죠. 그래서 의뢰인하고 이야기를 많이 해야 돼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업무 전용으로 쓰는 위클리 속지. 왼쪽에는 이벤트나 간단한 할 일을. 오른쪽에는 상세한 업무 내용을 적어놓는다.

이 과정을 직원이 있는 분은, 직원이 먼저 처리하고 정리돼서 변호사에게 오는데 저는 그게 마음에 안 들어요. 서면을 제가 쓰니까. 재판도 내가 가니까. 직접 의뢰인하고 이야기를 해서 서면을 작성하고 의뢰인한테 피드백받고 제출하고 나서 재판에 나가면 재판은 사실 짧아요. 5분에서 10분이면 끝나요 (왜 이렇게 빨리 끝나요?) 이미 서류를 제출했으니까 재판은 그냥 확인하는 작업. 증인 신문이 있으면 재판에서 증인 불러다가 신문하는 정도?  TV에서 보듯이.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그럴 때는 재판이 길지만, 그 외 대부분은 10분 정도면 재판이 끝나요.


그러면 실질적으로 재판이 끝난 다음에 준비해야 될 것은 다음 재판. 다음 재판이 되기 전에 서면을 내야 하니까. 그러면 그 서면을 내야 하려면 다음 재판 일정 체크하고. 계속 반복돼요. 저는 그 과정을 바인더에 적어놔요. 일정 체크하고 다음에 제출해야 할 서면과 증거 체크하고, 의뢰인에게 잘 전달했는지 체크하고. (일정관리 정말 잘해야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재판에 출석하는 변호사가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일이 많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거에 대한 체크를 직접 다 해야 되니까. 그래서 그런 분들은 좋죠. 내 사건에 관심 있는 의뢰인들. 내 사건에 관심 없는 의뢰인이 많거든요. 내 사건에 오로지 관심 쏟는 의뢰인은 도움 많이 돼요. 


업무 하는 방식이 어떻게 되나.

업무할 때는 원드라이브와 네이버 캘린더, 구글 킵을 주로 써요. 구글 킵은 일정 정도만 체크하고, 업무는 서면을 한글 파일로 써요. 전자소송을 하니까. 한글 파일을 업로드하면 pdf로 자동 변환돼요. 업무 할 때 workflowy, notion은 거의 쓸 일은 없어요. 워드 작업만 하면 되니까. 상세 일정은 바인더에 적고. 간략한 거는 네이버 캘린더. 전화든 뭐든 일정이 잡히면 네이버 캘린더에 일단 적어놔요.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바인더를 먼저 봐요. 거기에 다 적고. 항상 바인더를 펴놓고 일을 해요. 옆에다가



항상 바인더를 펴놓고 일을 해요. 옆에다가



혼자서 일하려면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바인더를 써요. 저는 직원이 따로 없으니, 내 일정을 대신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서 바인더가 비서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예전에 직원이 있었을 때도 재판 일정 체크는 직접 했어요. 더블체크. 직원 분이 있으니까 직원 분이 일정을 체크해주지만, 저는 스스로 해야 할 것만 같은? 제가 재판을 나가잖아요. 내가 재판을 나가니까 안 할 수가 없어요. 비서가 있는 변호사들도. 오늘 내가 재판을 간다. 네이버 캘린더나, 구글 캘린더 쓰는 변호사들도 많거든요. 거기에 분명 일정이 적힌단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제가 체크하니까. 온라인에서만 일정 체크만 하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일정을 체크하는 거죠. 제일 중요한 건 서면이 빠짐없이 제출하는 거랑, 재판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해요. 재판할 때는 수첩을 들고 다니는데 조그마한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판사님이 다음 재판 일정을 잡을 때. 수첩을 보고 그 일정에 다른 재판이 잡혀있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판사님에게 그 날은 안 된다고 다른 날을 잡아달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문서 작업은 주로 한글 파일로 해요. 지금 쓰고 있는 책도 한글 파일에 목차를 잡고 쓰고 있어요. 원드라이브는 좋은 게 기록이 너무 두꺼우니까. 다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원드라이브에 있는 자료를 본다거나 필요할 때 볼 수 있다던가. 서피스 가지고 법정에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휴대전화 안 되지 않아요?) 잘 안 보려고 해요. 잠깐 급할 때 있으면 살짝 보긴 하는데, 핸드폰은 잘 안 보는 편. 서피스나 노트북은 업무용이라 볼 수 있다. 전자 소송된 이후로 변호사들도 아이패드, 서피스도 많이 들고 다닌다. 저는 아직은 아날로그 수첩만 들고 가요. 재판 10분밖에 안 걸리니까.


저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변호사를 선택했어요. 


원래 꿈이 변호사였나. 

아니요. (웃음) 공부할 때는 법조인은 꿈이었고, 원래는 판사가 되고 싶었는데 성적도 안되거니와 '시보'라는 걸 해요. (시보?) 다 경험하는 거. 법원에 두 달간 있고, 검찰청에도 두 달 정도 있어보고 변호사 사무실에도 두 달간 있어보고. 그걸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로테이션으로 돌아요. 그걸 할 때 검사는 피의자 신문을 할 때 상대방을 추궁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죄지은 사람들 조사하는 거긴 한데, 나이 드신 분들 상대로 밝혀내야 하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검사가 그 일만 하는 건 아니지만요. 판사는 법원에만 있는 것만 같아서 (웃음) 법원 안에서 기록을 보고 판결문 쓰는 직업이니까. 저도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저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변호사를 선택했어요. 변호사는 사람들과 좀 더 밀접한 느낌? 그런 느낌이 좀 있어요. 꼭 법적인 것뿐만 아니라 어쨌든 의뢰인들이 자신의 내밀한 것을 다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나도 느끼는 게 있고, 배울 점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만족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선택하라고 하면 그래도 변호사를 선택할 것 같아요. 변호사의 최대 장점은 자유예요. (어떤 자유인가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 일에 대해서. 선택의 자유가 있어요. 소속된 변호사라면 선택의 자유가 없겠지만, 개인 사업하는 변호사는 자유로움을 제일 먼저 꼽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 1인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나.

제일 힘든 상황에서 찾아오는 의뢰인이 많아요. 최후의 보루로. 그때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는. 내가 알고 있는 방법들이 있잖아요. 꼭 소송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소송이 있을 수도 있는데 소송 안에서도 사실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찾아올 분들도 계시니까. 그런 분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은 거. 돈도 벌면 좋겠지만 (웃음) 그걸 떠나서 돈만 진짜 벌려면 로펌에 들어가는 게 최고지만, 안정적인 걸 찾으면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좋고. 그것보다는 일에서도 보람을 찾고 싶어요.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줬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일을 통해서 나한테 무언가 인사이트 한 두 개는 있잖아요. 그런 것도 찾고 싶은 거죠. 그런 게 일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돈 받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끝. 이게 아니라.


2009년에는 울었지만, 2011년에 결국 웃었다.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보관하시는지.

기억을 환기하는 용도로 많이 써요. 메모를 하다 보면 남겨지는 게 있잖아요. 메모를 하면 메모하고 남는 것들. 그걸 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보관을 하는 거 같아요. 뭐를 보관해야겠다고 보관하는 게 아니라 (웃음) 무조건 다 기록하고, 기록한 결과물이 있으면 그걸 버리지를 못하는 거죠.


다시 볼 일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독서노트나 강연 들었을 때 기록했던 건 다시 보는데, 일정 적은 것들은 사실 몇 년 지나고는 굳이 볼 일이 없는 거 같아요. 몇 달 지나고는 그때 뭐 있었지? 확인하는 정도지. 일기 정도는 봐요. 그런데 일기도 뭐 어쩌다.


자기만족이 큰 거 같아요. 자기만족. 내가 쓴 내 글씨를 버리기가 아까운 거죠. 무언가 남는다는 게 좋아요. 일정을 안 적었을 때는 내가 뭐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한동안 바인더나 다이어리 안 썼을 때는 바인더를 쓰면서 달라진 건 다이어리에는 내 일정만 적잖아요. 바인더에는 그날 뭐했는지가 시간대가 적히잖아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구나. 뭘 하긴 했네. 시간을 무의미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기록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자기 위안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바인더에 1주일 일정 적는 게. 내가 사용한 시간을 기록하는 거. 그게 좋은 거 같아요. 안 썼을 때와 썼을 때를 보면 썼을 때가 확실히 좋아요. 그래서 쓰는 거 같아요. 이걸 적어서 그때 뭐했지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게 합격의 길"


손으로 기록을 하게 되면 얻는 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계속 적는 게 습관이 돼서. 습관처럼 적어요. 뭔가를. 전화를 하다가도 습관처럼 적고 있고, 메모를 남겨야 할 때나. 대화를 하다가도 누군가 무언가를 말할 때 인사이트가 있잖아요. 누군가 책을 추천한다거나. 핸드폰을 적든. 옆에 메모지가 있으면 메모지에 적든 일단 모두 적어요. 그리고 적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돼요. 아이 이유식 만들 때도 순서를 다 적고 시작하거든요. 그러면 정리가 된다고 해야 하나. 소장에 제출할 증거나 이런 거 알고 있지만 적는다고 했잖아요. 그걸 굳이 적는 이유가 시뮬레이션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게 눈에 보이니까 정리가 돼요. 그때 빠트린 게 눈에 보이고, 추가해야 할 게 눈에 확 보여요.



앞으로 바인더로 어떤 자료를 관리해보고 싶나. 

기존에 했던 것처럼 내 모든 걸 담고 싶어요. 앞으로 좀 더 욕심내서 기록하고 싶은 건 육아 바인더. 아이의 일정이나 병원 일정, 이유식 식단. 그리고 일기. 먹고 자는 것도 지금 쓰고 있는 위클리처럼 기록하고. 가장 큰 건 일기. 사진도 출력해서 붙여놓고. 사실 육아를 하다 보면 일상이 반복되니까. 오늘과 내일이 똑같아 보이더라도, 기록을 하면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자기 위안과 만족이 커요. 바로 그 점 덕분에 기록을 놓지 않는 것 같아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면 시간도 없고 잠도 못 자는데. 내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거. 허무하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거. 그게 계속 기록을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2020.01)



인터뷰이 : 문혜정 (블로그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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