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인터뷰이. 필라테스 강사 이나라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일곱 번째 인터뷰이는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나라님을 만났다. 판교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1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좋은 사람 이나라입니다. 6년 간, 4번의 이직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다가 올해 2월 ‘회사’라는 곳을 떠나 제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필라테스 강사를 하고 있어요. 혼자 수련하는 시간, 회원 분들과 온,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시간 모두 즐기며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다 보니 초예민했던 성격도 누그러지고 건강도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졌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 점점 좋은 사람이 되더라고요. 철부지 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턴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려고 해요.
탈회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예전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일단 스트레스를 풀려고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그게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직장을 다니면서 퇴사하는 사람들을 찾아봤어요. 이번 퇴사는 이직이 아니라 회사라는 곳을 들어가기 싫은 상황이어서 찾아보니까 그 사람들은 월급 외에 수익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직장을 다니면서 운동과 관련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게 됐고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어요. 내가 자격증을 따고는 있지만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이 모집이 되고 실제로 통장에 돈이 꽂히니까(웃음) 되긴 되는구나. 돌아가긴 돌아가는구나.
엄청 큰돈은 아니지만 회사의 시스템이 아니라 나의 재능으로 돈이 벌리니까 그런 경험을 처음 해본 거예요.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나의 재능을 살려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맞물려서 됐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나한테는 맞겠다. 모든 사람에게 맞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맞겠다 싶어서 앞으로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회사와는 잘 안 맞았나요?
비서로도 일하고 종합학원에서 편집자로도 일했었는데 다 비슷해요. 예전에 읽었던 책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을 최근에 다시 읽어봤어요. 제 강점 부분을 읽어보니 멘토로서 포지션을 가질 때 가장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남이 잘하는 걸 잘 캐치해내고 나의 능력을 나의 영향력을 다른 사람에게 끼칠 수 있을 때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그 책에서. 그런데 저는 회사 다닐 때 그걸 잘 못했어요. 항상 어떤 회사에 다니던가에 드러내면 안 되고.
예전에 회사에서 영어 세미나가 열렸어요,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리니까 어떤 상사가 지나가면서 '오늘 세미나 하나 보네. 이게 무슨 세미나지?'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그때 제가 그걸 듣고 김영란법 관련된 세미나라고 영어로 말씀드렸더니 그 상사님이 머쓱해하시더니 그냥 가셨는데, 나중에 인사팀장이 부르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거만한 거라고.
그때 되게 기분이 나빴어요. 제가 잘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무의식 중에 답변을 한 건데. 그때 느꼈어요.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도 나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구나. 그 회사가 조금 심한 회사긴 했어요. 항상 그런 게 답답했어요. '네네' 이렇게만 해야 하고. 그게 제가 가진 강점이랑 항상 상반되어 있었던 거예요. 내가 돋보이지는 않아도 나 자체를 감추면서 살아야 된다고 하나. 그런 게 되게 싫었어요.
시간을 기록해보니까 어떤가요.
사실 어렸을 때는 기록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도 일기도 하나도 안 쓰고 다른 거는 다 열심히 했는데 일기 쓰기는 너무 싫은 거예요. (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다이어리에도 관심이 없고. 그러다 우연히 바인더를 선물 받았는데 받았으니까 처음엔 대충대충 썼는데 마침 쓰기 시작한 기간이 자격증 시험 기간이어서 본격적으로 데일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필라테스 자격증 공부를 하려고 하니 굉장히 바쁜 거예요. 그래서 데일리 리포트에 매일 할 일을 정리하고. 내가 공부해야 할 양을 적기 시작했어요. 스터디 플래너처럼. 그런데 시험 성적도 잘 나오고, 그 이후에 계속 작은 성공을 경험하고 나니까 이거 앞으로도 계속 적어야 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꾸준히 쓰기 시작했고.
위클리는 항상 시간대별로 색깔이 비슷해요. 시간대별로. 다 비슷한데 이거를. 간혹 집에 갈 때나 안 적을 때 이틀 넘게 그러면 내가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거예요. 매일 내가 하는 패턴은 비슷한데 잠자는 시간에 자고 운동하는 시간에 운동하는데, 그런데 바인더를 아침에 10분 정도 투자해서 적는 게 마음에 굉장히 안정이 돼요. 어차피 정해진 틀인데 말이죠.
그리고 매일마다 아침에 고구마를 먹어요. 근데 이걸 정해놓지 않으면 오늘 뭐 먹지?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책 <타이탄의 도구들>을 보면 '규율이 곧 자유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 문장처럼 매일 하는 일은 비슷한데 오히려 규율을 정해놓으면 그게 오히려 나에게 역설적으로 시간의 자유를 주는 거 같아요. 시간의 자유하고. 생각의 자유. 그게 되게 좋은 거 같아요. 바인더를 쓰는 것도 같은 이치예요.
매일 기록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록한 내용을 나중에 봤을 때, 돌아보면서 위안이 되는 거 같아요. 내가 그래도 너무 막살지는 않았구나. 이런 점이 하나 있었고, 두 번째는 스스로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바인더 빈칸에 그런 것도 쓰거든요. 뭐가 안 될 때는 뭐가 안 된다. 짜증 난다. 쓰기도 하고. 그걸 생각만으로 하면 밑도 끝도 없는데. 여기에 한 번 써버리고 덧붙여서 '하루에 끌려다니지 말 것!'이라고 써놓으면 그때 생각이 딱 끝나는 기분이 들어요. 배출하는 느낌. 그러면서 점점 스티커도 사게 되고(웃음)
평소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보통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서 공복 유산소를 해요. 한강에 한 시간 정도 뛰고, 바로 스트레칭 한 시간 정도 하고. (스트레칭 한 시간? 따로따로 인가요?) 네. 달리기랑 스트레칭 합쳐서 두 시간하고 그다음에 와서 이건 유동적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바인더에 기록할 때도 있고 아니면 퇴근하고 와서 기록할 때도 있고. 유산소를 한 다음에 바로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나서는 한 시간 정도 바인더를 쓰거나 집 청소를 하고 그다음에 밥을 먹고 일을 하러 가요. 한 아침 아홉 시쯤.
화, 목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월수금은 수업이 없는 날도 하루 종일 일하는 날도 있어요. 일이 없는 날에는 한 두시쯤 오고요. 그런 스케줄을 바인더에 미리 적어놓는 편이에요. 스케줄에 변동성이 많은 저한테는 먼저 기록해놓는 게 굉장히 효과적이더라고요. 근데 보완해야 할 점은 아직 밤에 기록을 잘 못하는 거 같아요. 피곤해서 그냥 자게 되고. 그래서 되도록 아침에 기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한 30분 정도. 쓰면서 전 날 스케줄을 살펴보고, 오늘 할 일을 살펴보면서 하나하나씩 실천하게 되는 거 같아요. 쫙쫙 그으면서 지우는 맛이 있어요. 적지 않으면 까먹는 일이 많은데 이걸 하니까 실천력이 오르더라고요.
평소 애착이 가는 일과가 있나요
요즘에는 필라테스 학원에 가서 운동도 하고 있지만, 보디빌더한테 따로 PT도 받고 있어요. 필라테스 학원이나 개인 PT도 좋지만, 혼자 방에서 운동하는 시간이 가장 좋아요. 아침에 할 때도 있고 밤에 할 때도 있는데 매일 반복해요. 음악을 틀어놓고 한 시간 정도.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일과예요.
좋아하는 일을 알아차린 순간이 있었나요
어떤 한순간이라기보다 서서히 다가왔던 것 같아요.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 엄마가 발레를 시켰을 때는 되게 싫어했는데 그냥 하다 보니까 하다 보니까 일주일에 한 번 나갈 거 두 번 나가고, 세 번 나가고. 그러다 점점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사람보다는 매일 나가는 사람이 훨씬 잘하잖아요. 시간이 쌓이니까. 매일 반복하던 제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잘하게 됐고, 당연히 칭찬이나 긍정적인 피드백이 자연스레 따라왔고 그럼 저는 그 일을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지게 되는 거고 그런 식으로 반복됐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꾸역꾸역.
요즘 클래스 101(온라인 클래스)에서도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강의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하던 일인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배우러 오고요. 시간이 쌓이는 일은 그냥 사라지지 않아요.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남아요.
일과 삶에서 원칙이라 부를만한 게 있나요.
책 <일하는 마음>에서 '작은 일을 크게 하라'라는 문장을 좋아해요. 남이 요만큼 할 때 저는 이만큼 해서 주는 스타일이었어요. 그게 스스로의 기쁨이기도 했어요. 이나라는 저렇게 하네. 굳이 9시에 출근해도 되는데. 7시에 출근해서 준비하고 있고. 그런 소리를 듣는 편이었거든요. 상사가 복사해오라고 시키면 다른 사람은 복사해서 스탬플러를 찍어서 주잖아요. 그러면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게 살펴보니 내용이 다 다르다. 그럼 그걸 플래그로 표시해서 주는 사람이었어요. 받는 사람도 '이렇게 굳이 안 해 줘도 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편하고 기쁘잖아요. 항상 저는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오만하고 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해서 살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저한테 변했다고 하는 거예요. 재는 이제 빠졌네. 다른 사람하고 다 똑같이 하는 거뿐인데. 그때부터 일에 회의를 느꼈어요. 여전히 원칙은 1을 하라고 시켰을 때 1.5 이상을 해야겠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요.
회사 다닐 때는 워라밸을 중시하며 일과 삶을 분리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안 그럴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합쳐졌으면 좋겠어. 일이 삶이 됐으면 좋겠고, 삶이 일이 되기도 하고. 그게 제가 퇴사했던 이유이기도 하니까. (2020.04)
인터뷰이 : 이나라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