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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l 28. 2020

어제는 게을렀지만, 1년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아홉 번째 인터뷰이. 웹툰 작가 윤수아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홉 번째 인터뷰이는 웹툰 작가로 일하고 있는 윤수아님을 만났다. 신논현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오산에 사는 웹툰 작가 윤수아라고 합니다. 아직 정식 데뷔는 하지 않았지만 로맨스 만화 웹툰 계약이 되어 있어요. 현재는 세이브 원고를 작업 중이고 원고를 20화 정도 완성하고 나면 연재 런칭을 합니다. 현재는 8화 정도 완성했고 연예계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처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나요?

다섯 살 때부터. (다섯 살이요?) 네. 어린 나이인데도 또렷한 기억이 있어요. 유치원 다닐 때 선생님이 친구를 그려주는데 너무 예쁘게 그리시는 거예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나도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 앞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만화 보는 것도 좋아했어요. 지금은 거의 사라진 비디오방에서 한 권을 빌리면 반납하기 전까지 한 달 내내 대사를 달달 외울 정도로 봤어요. 그러다가 제가 일곱 살 때 저희 집이 비디오 가게를 했어요. 그때 좋아하던 만화 비디오테이프에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쓰여있는 거예요. 그 문구를 보고 감동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나도 만화가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언제 자든지 눈을 뜨면 일단 차를 마시려고 해요. 보통은 물이나 레몬밤 차를 마시고, 한 시간 뒤에 정신을 깨려고 커피를 마셔요. 그다음에는 책을 읽거나 확언 노트를 쓰고 항상 운동 부족이니까 국민체조를 해요. 처음에는 노래를 틀어서 거실에서 했었는데 동작을 외워서 이제는 무반주로 (웃음)


확언 노트

기상을 하고 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일을 시작해요. 1년 전에 바인더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눈뜨면 컴퓨터 켜서 일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씻고 싶으면 씻고, 눈 감으면 퇴근이고. 그러다 보니까 불면증, 우울증, 무기력이 동시에 찾아오더라고요. 정말.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바인더로 시간관리를 하다 보니까 써본 분들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변하는 게 눈에 하나도 안 띄잖아요. 그런데 신기한 건 1년 정도 써보니 정말 많이 나아졌어요. 어제의 나는 여전히 게을렀지만 1년 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제 위클리를 보면 일정이 규칙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쉬는 날은 너무 쉬고 자는 날은 또 엄청 자요. 남들이 보기에는 되게 불규칙적이죠. 그런데 저에게는 이게 규칙적이에요. 일단 잠을 자잖아요. (웃음) 이틀 연속 한숨도 못 자면서 일해본 적이 많아요. 마감 앞에서 효율을 생각할 수 없어요. 잠을 못 자요. 그럴 때 불면증이 심하게 오거든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서 규칙적으로 그림 그리는 분들 많지만 안 되는 사람들은 죽어라 하는 거예요. 저도 안 될 때는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거죠.


일은 부분 수정이 있는 날에는 4시간 정도, 전체 수정이라면 거의 하루 24시간을 잡아야 하고요. 물론 피곤하면 자기는 해요. 쪽잠이죠. 한 시간 반 자던가. 세 시간 자던가. 저는 반드시 홀수 시간으로 자야 해요. 진짜 급한 마감이라면 이걸 꼭 마감해야 한다면 48시간을 깨어 있어야 돼요. (웃음)  


(다른 만화가도 비슷한가요?)

7년 동안 연재했던 친구도 48시간 만에 한 작품을 완성했었어요. 그때는 잠도 못 자고 식욕도 없고. 그 친구는 연재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스토리가 너무 안 떠오르니까.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다면 5일은 스토리를 생각하고 남은 이틀 동안 몰아서 콘티를 짜고 펜터치를 하고 배경을 그리고 채색을 넣고 스토리 편집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밑에 있는 어시들만 죽어나는 거예요.


평소 애착이 가는 일과가 있다면

책 읽는 시간. 그리고 자는 시간. 잠을 푹 잘 때 제일 행복해요. 최근에 아파서 많이 잤는데, 푹 자니까 많이 나아졌거든요. 시간이 나면 자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책을 엄청 좋아해서 하루에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읽어요. 끊어 읽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요즘 타임 타이머(Time Timer) 많이 쓰잖아요. 남들은 설정한 시간에 집중하는 용도로 많이 쓰는데 저는 딱 이 시간까지만 읽고 오늘은 더 이상 보지 말자는 용도로 사용해요. 책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보다 보니까.



스트레스는 어떤 방식으로 푸는지.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아요. 사실 스트레스 푸는 법을 잘 몰라요. 책 읽는 것도 스트레스 푸는 것 중에 하나겠네요. 스토리 보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있으면 책도 보기 싫어져서 그땐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어요. 게임은 한 번 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라 저를 조절해야 해요. 요즘에 아파서 쉬는 날이 많다 보니 잠깐 손을 댔는데 역시 줄여야 할 것 같아요. 게임은 스트레스를 푼다기보다 얻는 느낌이 강해요. 잘 되면 좋은데 게임을 할 때 안 풀리는 게 많으니까.


기록은 틈틈이 하는 편인가요

틈틈이 할 때도 있는데 기록을 워낙 재밌어하니까. 에버노트에도 막 쓰다가, 일하다가 잠깐 여유 생기면 바인더 펼쳐서 아무 글이나 쓰는 편이에요. 일정 기록은 밤 10시쯤 정리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치려고 노력해요.


바인더는 월말에는 먼슬리를 주로 쓰고, 평소에는 위클리와 일기를 써요. 쓰다 보면 짧게는 세네 줄, 길게 쓸 때는 거의 글짓기에 가깝게 네 페이지를 써요. 가끔 한 번씩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쓰기도 하고 다음 날 뭘 할지 계획도 짜고 그렇게 해요.



일하면서 기록도 하는 편인가요

일할 때는 그림만 죽어라 그려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록은 잘 못해요. 해야 할 일 정도만 적어놓고 작업하고 나면 집중도를 체크해놓는 편이에요. 바인더에는 매일 크로키 연습을 해요. 어떤 배경을 먼저 그릴지 체크해놓고 하나하나씩 지워가며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요. 그리고 제가 부업으로 하고 싶은 이모티콘 만드는 요런 것도 하고 싶어 가지고 요렇게 정리해서 하나씩 그려보고 있고요. 거의 미래에 대한 내용을 많이 써요. 

작업할 때 집중도를 상하로 나누어 기록한다.
1일 1크로키
콘티 작업 리스트
이모티콘 기획


손으로 기록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기억이 굉장히 잘 돼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으면 하나씩 떠올라요.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에버노트 같은 디지털 도구에 쓰면 금방 휘발되잖아요. 다시 읽어도 내가 이랬나? 요런 생각이 들어서 구체적인 상황이나 왜 내가 이걸 적어둔 건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근데 아날로그는 확실히 구체적인 상황과 시간대마다 감정이라던가. 하나하나가 기억이 나요. 


메모할 때 중시하는 점이 있다면

내 감정을 쓰려고 해요. 감정을 기록하고 항상 우리 내면에는 질문이 있잖아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지? 혹은 메모를 했을 때 그 메모에 파생되는 질문.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속으로 질문을 계속해요. 내가 이걸 왜 해야 되지? 질문을 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메모하는 편이에요. 내가 왜 해야 되나. 계속 드는 의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나를 설득시키려고 해요. 


바인더를 꾸준히 쓰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눈에 띄는 건 없는데, 나 자신이 성장했다고 해야 하나. 바인더 같이 쓰는 친구랑도 자주 말하는 건데. 정말 나아지고 있구나. 서로 긍정적이 되어간다. 기록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걸 모두 토해내는 느낌이라. 토해내고 나면 남는 게 없잖아요. 그럼 앞으로는 긍정적으로 채워나갈 수 있어요. 그때부터 발전하는 느낌이 들어요. (2020.07)


인터뷰이 : 윤수아 (@ciel_ki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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