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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n 14. 2020

따로 정리한 건 눈에 바로바로 들어오잖아요.

여덟 번째 인터뷰이. 바리스타 김현정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Carl Becker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사가"라고 했다. 인터뷰 매거진 《손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를 손으로 직접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덟 번째 인터뷰이는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김현정님을 만났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회기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1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바리스타로 일을 하고 있는 김현정입니다. 회기역에 위치한 카페 빈칸(BEAN KHAN)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좀 더 긴데 직원으로 일한 시간만 9년째입니다. 만 9년째. 연수로는 11년 정도 됐습니다. 


바리스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교에서 휴학을 했을 때 원래 커피를 한 잔도 못 마셨어요. 그러다 어쩌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아 이렇게 맛있는 게 있구나' 알고 보니 유명한 선생님이 로스팅하고 그 선생님의 제자가 내린 커피였던 거예요. 그때는 몰랐는데. 그분이랑 얘기하다가 "이런 건 어디서 배워요?" 물어봤더니 배울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턱대고 찾아가서 핸드드립 커피를 배웠어요. 커피를 배우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카페에서 알바를 많이 했었어요.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케냐가 핸드드립 커피의 첫 경험이었는데 그게 너무 인상 깊어서 지금도 케냐를 좋아합니다. 지금 매장에서 블렌딩 하는 것도 케냐 베이스입니다. 케냐 비싸요. 아프리카 커피가 비쌉니다. (웃음) 그렇게 시작했어요.


대학교에서는 생명과학을 전공했어요. (졸업하면 보통 어디로 가요?) 연구원이나 대학원 쪽으로 많이 가고 (전공이 안 맞았어요?) 원래는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그때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유학을 갈 수준은 못돼서. 막상 취직은 하려니까 준비해놓은 건 없고, 그래서 이제 이거 말고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커피가 생각나서 이걸 좀 해보자 해서 카페 일을 시작했어요. 막상 하다 보니 배우는데 욕심이 나서 커피도 배우고, 라떼도 배워보고, 빵도 구워보고. 마카롱도 만들어보고.(웃음)


수업 일정을 먼슬리 플래너 A4에 적어놓는다.


지금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요즘에는 카페를 하다 보면 끊임없이 트렌드가 바뀌고, 그에 맞춰 계속 배워야 해요. 지금 세상에서는 커피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디저트류를 조금 배워보자. 그런데 그게 또 재밌는 거예요. 처음에는 마카롱으로 시작해서 제과, 제빵을 순서대로 익히고 있어요. 제과학교에도 6월에 입학을 할 예정이에요. 커피를 좋아해서 시작한 건데 어느새 제빵을 배우고 있죠. 인생은 알 수 없네요. (웃음) 


유학을 가지 못한 게 마음에 많이 남았었어요. 그런데 한 5년쯤 지나니까 차라리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더 맞는 길이 아니었나라고 생각이 들어요. (유학을 갔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치타를 쫓아다니고 싶었어요. (치타요?) 네 치타요. 표범 비슷한 거. 쫓아다니면서 치타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계속. (지금도 그런가요?) 지금은 거의. 뭐랄까. 어렸을 때 꿈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서 치타 구경하고 와야죠. 아마 관광으로 가겠죠? (웃음)


손으로 기록하게 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손으로 기록해야 머릿속에서 정리가 좀 되는 거 같아요. 오늘 뭘 해야지. 뭘 해야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막연한데, 손으로 적다 보면 우선순위가 잡히는 느낌이 들어요. 키보드로 치거나 핸드폰으로 치는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게 조금 더 강한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몰스킨 노트에다 매일 할 일을 정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참고할 가시성이 좋은 거 같아요. 손으로 쓰는 거 자체가 뭔가를 했고, 뭔가를 남겼고, 내가 써서 애정이 간다고 할까요. 옛날에는 1년에 다이어리를 대여섯 개 정도 썼던 거 같아요. 다 쓰지 못하고 이거 쓰고 저거 쓰고. 다이어리는 3개월마다 바꾸는 거라고 말하고 다니니까 주변에서는 1년 내내 다이어리를 산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웃음) 그런데 바인더는 편집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속지를 한 권에 넣고 다니면서 자연스레 바인더에 정착하게 됐어요.


이렇게 썼던 걸 여기에 끼울 수 있고, 저렇게 썼던걸 저기에 끼울 수 있고. 수많은 방황 끝에 작년에 정착했죠. 사실 인터뷰하러 올 때도 자료가 산발적으로 되어 있어서 가져올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웃음)


바인더는 처음에 어떻게 쓰게 되었나요. 

언제나 그렇듯 원래 쓰던 다이어리가 질려가지고 2월 달이었나? 다이어리가 워낙 많아서 어디서 산지 기억은 안 나요. 다이어리에 위클리(주간 계획)는 제대로 못 써서 그 칸이 늘 비어져있었거든요. 그런데 공간이 남는 게 보기 싫으니까. 그런 걸 보완할 수 있게 앞 쪽에는 먼슬리로 구성되어 있고, 뒤에는 전부 일반 노트로 구성된 걸 찾아다녔어요. 정확히 말하면 모눈 노트를 찾았어요. 지금은 모눈 노트를 많이 팔지만 그때 모눈 노트는 거의 없어서 간단한 구성인데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만년필로 쓸 수 있는 종이를 찾다가 플랜커스를 우연히 발견하게 돼서 상품을 살펴보니 안 비싼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한 번 써보자. 그렇게 바인더를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심사숙고가 없기 때문에 (웃음) 바로 샀어요. 처음에 데일리 플래너, 모눈 노트, 독서노트 정도 샀었는데 이게 되게 마음에 들었어요.


작년에 썼던 데일리 플래너(좌), 책 <FBI 행동의 심리학>을 읽고 정리한 독서노트(우)


다이어리를 쓸 때는 주변에서 중딩스럽다. 학생 티를 못 벗었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어요. '저것도 한때야'라는 반응도 많이 들었는데 바인더를 쓰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바인더를 쓰는 사람끼리 만나다 보니까 반응이 다른 거예요. 저는 제가 글씨를 잘 쓴다는 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다들 제 글씨에 감탄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내 글씨가 누군가에게는. 내 바인더가 누군가에게는 좋게 보이는구나. 좋더라고요. 같은 관심사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처음 봤는데도 처음 본 거 같지도 않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몰스킨 노트 XL에 커피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데 그래서 기록할 때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몰스킨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한 두장 망치면 답이 없어요. 실제본 방식이어서 한 두장 뜯으려면 대여섯 장이 같이 뜯어지거든요. 뜯어내다 보면 실도 너덜너덜해져 가지고 망친 내용을 쉽게 뜯어서 버릴 수도 없었어요. 그게 제일 불편했어요. 그런데 바인더는 그냥 그 종이만 버리면 되잖아요. 예쁘게 다시 써서 넣으면 되니까 편리해요. 앞으로 계속 바인더를 쓰지 않을까.



가장 손이 가지 않는 종이가 있을까요.

라인 노트가 그래요. 라인 노트를 잘 못 쓰겠어요. 저의 생각을 제한하는 느낌이에요. 사람들은 라인이랑 모눈(그리드)이랑 무슨 차이냐 그러는데 모눈은 무시할 수 있거든요. 라인은 무시를 못하겠어요. 그거에 맞춰서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거 같아서 라인 노트는 저랑은 맞지 않은 느낌.


라인 노트 쓸 때는 제 생각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적을 때 주로 써요. 필사할 때. 베끼기 할 때. 개인적인 생각정리가 들어갈 때는 조금 제한적인 거 같아요. 스퀘어, 코넬 노트도 그런 느낌이 없는데 학교 다닐 때 공부하는 느낌이에요. (웃음) 글자를 크게 쓰고 싶을 때도 있는데 라인이 제한돼요.


따로 분류해서 사용하는 불렛 기호는?

처음에는 여러 가지 아이콘을 많이 쓰다가 간단하게 3개로 줄였어요. 최대한 불렛을 줄였어요. 


예전에는 사진에 보이는 7가지 불렛을 사용하다가 지금은 3가지로 줄였다. 

되게 간단해요. 점(·)은 메모 또는 항목,  체크(∨)는 완료.  엑스(×)는 삭제로 표시해요. 연기된 일도 예전에는 화살표(→ )로 표시했는데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지금은 쓰지 않아요. 그 날 완료 못한 거는 다음 날에 했어도 원래 적었던 칸에서 완료 표시를 해요. 똑같은 항목을 한 페이지에 다섯 번 정도 쓰면 지저분하더라고요. 


마시는 커피 맛도 따로 기록하시나요?

남의 집 커피 마시러 갈 때. 그때도 바인더가 참 좋아요. 종이 몇 장만 빼서 가져가면 되니까. 다 들고 가면 경쟁업체에서 좀 그럴 거 같아서. 바인더 쓰는 척하면서 (웃음) 저는 종이가 작으면 생각이 작아지는 거 같아요. 휴대성이 좋으면 A4 사이즈 바인더를 메인으로 쓰고 싶거든요. 휴대성 때문에 A5 사이즈를 쓰긴 하는데. 커피 노트 말고 음료 노트도 하나 만들고 싶어요.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니까. 베버리지 노트. 커피 말고 음료 사진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포토프린터로 바로 출력해서 음료 사진을 모으고 싶어요. 커피는 디자인이 크게 의미가 없는데 음료는 디자인 의미도 강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추가해서. 


(이렇게 적어두면 일할 때 많이 참고하세요?) 그럼요. 맛은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이라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맛과 향은 기억 속에 존재하다가 점점 흐려지면서 사라지는 존재인데, 기록을 해놓으면 이때 마신 커피는 이런 맛이었구나.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기록은 제게 너무 중요해요. 뉘앙스를 기억한다는 건 되게 추상적인데, 그걸 기록으로 가시화하는데 일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기꺼 맛있었어' 이걸로 반응이 끝나면 안 되잖아요. 오늘 내가 만든 커피는 이런 맛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지나면 이게 이 맛이었나. 저 맛이었나 헷갈리더라고요. 향을 기록해놓는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 기록하는 게 편하세요? 

일단 집 밖에 나와야 합니다 (웃음) (집에서는 안 하세요?)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해요. 되게 바쁘게 살고, 뭔가 늘 하는데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쉬는 날도 카페에 나와서 기록하거나, 남의 집(다른 카페)에 가서 합니다. 투두리스트로 작성하는 불렛 저널은 그 날 출근해서 바로 기록해요. 그게 저한테 제일 효율적이에요. 그래야 하루에 제가 해야 하는 수많은 일 중에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어요. 


바쁠 땐 전 날 밤 자기 전에 적어둘 때도 있어요. 내일 뭘 해야 되지? 아무 생각 없이 쭉쭉쭉 적어놓고. 그러고 나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거 같아요. 오늘은 이걸 해야 하고, 이건 꼭 해야 하고. 이건 하지 않아도 되고. 불렛은 아침에 정리를 하고 위클리는 쉬는 날에 한 번에. 


미리 정해진 스케줄은 다음 주 거를 미리 적어놔요. 변하지 않는 일정은 일주일치를 미리 적어놓고, 불렛 저널에도 적어두고, 위클리는 이번 주에 내가 시간은 이렇게 썼구나 확인하는 정도로 활용해요.


메모할 때 중시하는 점이 있다면

통일감을 항상 같이 주려고 해요. 그래 가지고 포스트잇을 붙일 때도 같은 계열의 색깔을 쓰려고 하고, 형광펜이랑 같은 색깔. 포인트 되는 색깔은 한 10% 미만. 가시성을 무척 중시하는 편이에요. 내가 한눈에 볼 수 있게. 봤을 때 혼란스러운 거는 두 번 보고 싶지 않잖아요. 그래서 색은 최대한 단순히.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을 많이 쓰고 파란색은 토요일 표시할 때만 써요. 포스트잇은 거의 노란색 계열로. 



메모할 때 통일성과 가시성. 그중에서 가시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정리하고 다시 봤을 때 그때 당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 혹은 다시 읽었을 때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거. (다시 보는 경우가 많나요?) 네 꽤 많아요. 특히 불렛 저널은 선호하는 것 중 하나가 인덱스 페이지인데. 저 같은 경우는 시즌 별로 레시피 같은 것을 새로 할 때 한 번에 찾을 수 있어서 좋아요. 뒤적뒤적하지 않아서. 빠르게 찾을 수 있어서. 그게 불렛 저널의 최고의 장점인 거 같아요.



불렛 저널 인덱스 페이지를 통해 어디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자주 보는 거 같아요. 업체에서 미팅한 내용 같은 거. 계약을 했는데 계약 내용이 달라져서 계약서를 다시 보려면 많이 찾아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랑 상담 한 내용을 따로 정리한 건 눈에 바로바로 들어오잖아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6월 달에는 주 4회는 제과 수업을 다니고 주 2회는 운동을 갑니다. 이번 달에 조금 욕심을 냈어요. 그래서 월요일과 화요일은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 1시까지 풀입니다. 인기 있는 수업은 금방 마감이 돼요. 기다려야 하니까. 그래서 욕심내고 신청하다 보니까 6월에 일정이 잔뜩 몰렸어요. 보통은 일하고. 운동하고, 수업받고 밖에 없네요. 7월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생각입니다. (웃음) (2020.06)


인터뷰이 :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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