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부주의로 오토바이 사고를 냈다.(깊이, 투더 코어하게 아직도 반성중) 사고 직후에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통증을 잘 못 느낀다는 말이 있는데 그날 그걸 뼈저리게, 정말 뼈가 저리게 느꼈다. 실제로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를 찔렀고 핸들 돌출부에 얼굴이 찍혔다. 하필이면 아무 보호가 없는 곳만 골라서 다쳤다. 피비린내가 나는 거 같아서 코피가난 줄 알고 코를 훔치는데 파가 닦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을 살며시 찔러봐도 맑은 그것만 묻어 나왔다. 피냄새의 원인이 입에 있나? 치과치료받은 곳이 잘못됐나 싶어 입을 벌려 봤는데 '후둑'. 바지가 미지근해져서 보니 찢어진 볼에서 입을 벌릴 때마다 피가 꿀렁하고 나와 자켓을 굽이치다 연청바지를 새빨갛게 덥히며 흡수되고 있었다. 호르몬 때문인지 그때 나는 무척 침착했고 오토바이에 다리가 깔려 움직일 수도 없어서 입을 뻐끔거리며 피폭포를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하니까. 덕분에 난색을 표하며 내린 운전자 아저씨는 기겁을 하시며 트렁크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운전석을 헤집으시다 물티슈를 한 아름 안고 오셨다.
"일단 이걸로 좀 막고 가만히 좀 있어봐요! 제발!!"
죄송스럽게도 피해자분 입에서 제발이 나왔다. 구급차가 오고 연락처를 알려드리는 순간 까지도 아저씨는 '제발' 가만히 대고 있으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40분 정도가 걸렸다. 흉부는 문제없는데 얼굴에 난 자상을 볼 만한 병원이 별로 없었다. 찢어진 곳이 점점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갈비뼈가 부러져 호흡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탈 때는 이주 멀쩡하게 올라탔는데 내릴 때는 한 2분은 걸린 거 같다. 기는지 걷는지 알 수 없는 속도로 응급실로 가서 침상을 배정받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도중에 잠이든 건지 의식을 잃었던 건지 깨어보니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고 땀과 피가 범벅이 되어 바닥도 흥건했다. 당장 먹었던 걸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얼마 안 가 의료진 분에게 발견이 되었다. 응급실에서 뭐라고 다급한 고성이 오가고 잠시뒤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와 이거 완전 그레이 아나토미잖아?!'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에서 이럴 때는 꼭 누가 죽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뛰어다니는 이유가 나라는 건 깜박이는 의식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잘 참고 침착하다고 해서 죽음이 나를 비껴가는 건 아니었다. 비껴가게 해 준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그분들께 매우 감사하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에 나오는 내용인데 나의 우주가 나라는 생명을 일으킨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니 내가 살아있음에 기뻐하고 묵상하라고 했다. 그날 내가 만났던 이름 모를 그분들께 이와 비슷한 감상을 느낀다.
피폭포를 지혈하라며 물티슈를 한가득 안겨줬던 아저씨가 계셨고 코에 산소 꽂아 주시며 "아 혹시 금액이.."라는 궁상에 "이 안이서는 다 무룝니다."라고 해주신 119 대원님, 격무에 건드리면 터져버릴 거 같지만 나 하나 살리겠다고 응급실을 뛰어다닌 의료진 분들. 여러분들 덕분에 아직도 살아서 정신 못 차리고 오토바이 매물 보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타고 이 나이에 말하기 뭣하지만 감사함을 잊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