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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mos Feb 24. 2024

13년 기자 커리어를 끝내며

기자 생활을 접으려고 한다.

2011년 12월 추운 겨울, 수습기자 최종시험 날이었다.

‘스타벅스 커피 한잔 가격이 밥 한 끼와 맞먹는데 말이 되는가?’라는 주제로 기획기사를 작성하는 미션이었다. 근처 커피숍을 막 찾아다니다 한 곳에서 여성분께 양해를 구했다.


“저 죄송하지만 오늘 수습기자 시험 때문에 취재기사를 쓰는 중인데요. 인터뷰 잠깐 할 수 있을까요?“


그분은 경계를 약간 하면서도 친절하게 응해주셨다. 그리고는 본인도 10년 정도 기자로 일했다며 합격하길 바란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 분은 경향신문 출신이었다.


내가 기자 일을 하는 동안 그때 그분은 어떤 이유로 기자일을 그만뒀고, 10년 기자 생활 해보니 어땠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 답을 할 수 있는 나이와 경력이 됐다.

기자 커리어를 접으려고 하는 지금 지난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느낀 건, 그냥 ‘직장인’과 크게 다름없지만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취달’

같이 수습교육기간 동안 수습을 받던 타사 기자가 나에게 ‘취달이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취재의 달인.‘…ㅎㅎ 그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그 기자는 해당 언론사에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 경찰서를 돌며 밤새 사건사고를 물어오는 ‘사스마와리’라는 수습교육 기간이 있었다. 잠을 못 자서 무척 힘든데, 조금 변태 적인 것 같지만 재미있었다. 몰래 경찰서에서 사건 이야기를 엿듣고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가서 밤새 취재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암동에서 약 6가구가 털렸던 사건이다. 당시 경찰서에서 서성이다 ‘오메가,’ ‘다이아몬드,‘ ‘북악스카이웨이’… 세 단어를 들었다. 선배에게 보고를 했더니, 근처 파출소 다 돌라고 새벽에 오더를 받고 갔다. 그리고는 사건 접수를 받은 담당 파출소 찾아냈고, 일일이 다 돌아다니며 피해자들을 취재했었다.


이 기사 때문에 당시 담당형사가 저녁에 전화가 와서 “아이 씨X, 딸 생일인데 출근했잖아!!!!” 소리질렀던게 기억난다. 다행스럽게도 그 분 승진해서 타 서로 가고 잘 된 듯하다.


다른 한 번은 CJ-삼성물산 미행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이맹희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선대 삼성 회장의 상속 문제 등으로 인해 두 기업이 신경전을 벌였던 것 같다. 늦은 새벽 마와리를 돌다가 너무 피곤해서 경찰서 교통조사계 테이블 한 곳에서 엎드려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성 세 사람 정도가 들어와 약간의 실랑이을 벌였다.


“명함 좀 줘 보세요”

“제가 왜 줘야 합니까?”


약간의 접촉사고가 난 것인지 신원을 밝히라며 서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외부애 세워져 있는 차에 손바닥 자국을 확인하고, 정황을 이야기하더니 사고가 난 현장으로 가보자며 경찰들과 함께 떠다는 것이다.


당시 ‘일진’을 맞고 있던 선배에게 “선배 이거 조금 이상한데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단순 차량 사고 시비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조선일보에서 CJ-삼성물산 미행 사건이 1면에 대문짝 만하게 나온 것이다. 기사가 나오기 전 조선일보 수습기자가 잠시 경찰서를 다녀 갔는데, 정보를 미행당한 기업 측에서 제공을 이미 했던 모양이다. 현장에 있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는데 너무나도 상세히 그 전후 내막까지 다 기사로 내보냈던 것이다. 미행당한 기업에서 자료와 증거를 며칠 동안 모아서 언론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너무 화가 나고 열받았다. 아니 내가 눈앞에서 저런 대특종을 놓쳤다고?! 욕이 나올 정도로 열받고 조선일보 그리고 그 수습기자가 너무 미웠다. 나와 눈도 마주치고 그 기자는 사고 다음날 나와 경찰서 조사계에 잠시 같이 있는 동안 이미 대부분의 정보를 가지고 마지막 확인 정도만 하러 온 것 같다.

너무 열받아서 몇 일을 해당 경찰서에서 서성였다.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해당 사건 담당 부서를 알고 인사를 하러 가기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해당 부서 문이 열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형사들이 앉아서 나에게 나는 모르새를 시전 했는데, 갑자기 소리도 없이 모두 사라졌다. 일부러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 준 건가? 문이 열려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아무도 없는 경찰서 부서 안에 들어가는 게 죄짓는 기분이 들어 처음엔 그냥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중에 다시 올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콩닥, 콩닥,’……문을 열고 들어갈까라는 생각을 하니 ‘쿵쾅, 쿵쾅‘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일단 잠깐 모르는 척하고 드러나 가볼까?!‘


들어갔다. 조용하고 적막했다. 그냥 한번 둘러보고 한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A4용지 문서가 많이 널려있었다. 심장이 ‘쿵쾅, 쿵쾅, 쿵쾅’ 귀에 들릴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A4 용지 묶음 파일을 스르륵 훑어봤다.


‘헉!!!!!!!!!!!‘


CJ-삼성물산 사건 소장이었다. 가슴이 너무 뛰어서 처음엔 그냥 문서를 다시 덮었다. ‘도둑질은 안돼…’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 훔치는 건 아니야. 경찰서에서 훔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절도범이 될 거야’ 나 자신이 말을 했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사진은 괜찮잖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사진을 찍자. 당시 사용했던 아이폰4로 열심히 찍었다. 너무 떨렸다. 누가 오면 어떡하지?!!!!


사진을 다 찍고 ‘이제 복귀하자’라는 마음으로 문을 닫고 나오는데 갑자기 형사들 한 무리가 1층에서 계단으로 올라왔다. 내가 문을 닫는 것을 보고 형사 한 명이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깐만, 이거 들어오면 안 돼. 뭐 없어진 거 아니야?!!!“

나에게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내 가방도 뒤지기 시작했다. 잠깐 인사하러 왔다가 아무도 없어서 나가려던 참이었다고 둘러댔다. 문서 등 없어진 것이 없는 것을 확인라고 날 내보내 줬다. 그리고는 일진 선배에게 그 사진 파일을 떨리는 마음으로 전달했고, 후속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당시 미행 사고 장소는 이건희 회장의 주택가 부근이었는데, 소위 삼성가라는 주택단지를 처음 가봤다. CJ회장님의 저택도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삼성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당시에 근처 고급 빌라 사진 등을 찍다가 경호원과 언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며 위협적으로 나오면서 내가 발길을 돌리나 백팩을 잡는 것이었다.


‘내 몸에 손 대면 가만히 안 둔다’고 경호원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당시 특종을 놓친 상태에 잠도 많이 못 자며 마와리를 돌고 있어서 예민했었나 보다.


어깨 뽕과 단독, 특종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며 수습기간 그리고 약 1-2년 동안은 마치 내가 뭔가라도 된 느낌이었다. 출입처에서는 존칭을 쓰면서, 고위 공무원들도 오가다 만나고 인사하고 식사도 하고, 마치 뭐가 된 느낌 었다.


그러다 경제부로 가면서 기업 출입처에서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가끔 기념품도 주고, 존칭을 하며 잘해주니 참 좋은 직업이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3년 차 때 IT기업 담당이어서 해외 IT 행사를 무척이나 많이 다니기도 했다. 밤새 기사를 쓰기도 하고, 행사 현장에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썼다. 해외에서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데 한국 돌아가서도 더 열심히 발로 뛰는 취재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뛰었다. 대기업, 스타트업 꽤 많이 만나러 다녔다.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 듣고 기사로 쓰고, 뿌듯함도 느껴졌다.


기업 대표들을 만나며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인터뷰를 하며 단독, 특종 기사를 많이 냈었다. 당시에는 뭔가 뿌듯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랬다.


취재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어딜 가든 귀를 열고 있었다. 치킨집에서 치맥 먹다가 옆자리에서 하는 쿠팡에서 추천채용 시 500만 원 지급한다는 채용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다. 쿠팡 내부 직원에게도 확인했는데 100프로 정확한 정보라고 확인을 받기도 했다.


기업 매각설에 대한 기사도 썼는데, 이도 술자리의 옆자리 테이블에 앉은 에스원 직원의 입에서 소스를 듣고 취재를 한 기사였다. (이래서 기업 주요 정보는 외부에서는 삼가는 것이 좋다. 백팩 가지고 다니거나 커피숍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출시 날짜가 주요 이슈였던 때가 있는데, 내가 먼저 출시 예상일을 맞춘 기사를 단독을 달고 나갔는데, 한경닷컴의 다른 선배 기자가 같은 날 몇 시간 뒤 단독을 달고 내보낸 적도 있었다. 항의 전화, 메일을 기자에게 보냈지만, 답변은 “매체력이 다르다” 그리고 자체 취재해서 쓴 기사다라는 논리였다. 열받았었다.


출장은 기자생활의 꽃

출장 중 재밌는 일들도 많았다. 베를린, 바르셀로나, 터키, 도쿄, 상하이,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방콕, 하노이 든 정말 많은 곳을 기자 신분으로 방문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열리는 CES라는 행사 출장을 갔다가, 일 마치고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일어나 보니 저녁 7시였다. 하루를 날린 것이다. 다행히 이미 작성해 둔 인터뷰가 있었고, 한국으로 입국하는 마지막 날이라 지면을 못 막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자들 마다 다들 일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있을 텐데, 술 먹고 하루 뻗는 건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고, 아찔하다.


함께 갔던 타사 선배가 오전에 아무리 깨워도 인기척이 없어서 취재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저녁에 다시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죽은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선배와는 아직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3년간의 기자 생활 소회하다 보니 에피소드만 늘어 뒀다. 너무나도 재밌던 적이 많았고,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권태감을 느끼끼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 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기자라는 직업도 진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옛날 방식으로 일하는 부분도 있고, 변화에 조금 느린 편인 것 같을 때도 있다.


13년을 일하고 이직을 하려고 봐도 딱히 할만한 게 있나 싶다. 고인 물이 된 느낌. 이제는 떠나야 한다.


이제 기자일을 마무리하고, 다른 길을 무모하게 가보려고 한다. 얼마 전 아내가 출산을 하고 정신없고, 어깨가 무거운 상황에서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몇 년 뒤 우리 아이들이 ‘아빠는 뭐 했어요?’라고 물어보면 ‘아빠는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했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은 쉽지 않지만 두려움을 깨고 언제든지 도전하는 삶을 살아보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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