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걱정과 혐오를 마주합니다
“타지마, 위험해”
“대체 왜 편한 차를 놔두고 오토바이란 걸 타는거야?”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네는 사람들 중 일부는 본인이 청소년기에 경험(?)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토대로 나름의 논리를 펼친다.
“친구랑 대림 VF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나는 발목이 나갔고 친구는 머리가 깨졌어. 이 흉터 좀 봐봐. 난 그 이후로 두 바퀴는 쳐다도 안 본다니까”
말을 끊지 않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무면허 상황도 흔하고,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구인 헬멧도 착용하지 않았다. 발가락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그 짓을 하다가 ‘마후라’에 정강이를 홀랑 태워먹은 이야기도 흔하다.
일견 이해는 간다. 번호판 없는 바이크에 청룡 쇼바를 꽂은 고등학생들. 짐받이에 가스통을 매달고 시내 도로를 시속 100km로 ‘와리가리’ 치는 노란 머리 양아치들. 한 손에 철가방을 들고 시티백의 한계를 시험하던 중국집 배달원들. 그런 생생한 시청각 자료들이 한국 사회에 가득했는데, 정상적인 라이더를 기억에 담아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자유주의를 표현한다며 걸레짝 같은 옷차림에 헬멧을 벗어던진 채로 2기통의 굉음을 '빠당빠당' 내고 다니는 중장년 외계인들까지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
혐오와 일반화는 쉽다. 그리고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일종의 오락이 된다. 혼자 욕하면 재미가 없지만, 맞장구치며 “저 양아치 새*들”이라고 내뱉으면 내 생각이 인정받고 강화되는 쾌감을 느낀다.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 바이크를 탄다는 것은 LGBT만큼 소수자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과 비슷한 것을 겪는다는 말은 아니다. 수적으로 적다는 의미, 대중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 편이라는 뜻이다)
국토부 2021년 6월 말 기준 전국 이륜차 등록 대수를 보면, 229만여 대인데 그 중 비 상업용 영역으로 분류할 만한 배기량 250cc 이상의 차량은 14만 3천여 대다. 2020년 말 기준 자동차 등록대수는 2400만 대가 넘는다. 수치상으로 0.6% 남짓이니 도로의 별종이 아닐 수 없다.
내게 바이크가 큰 임팩트로 다가온 시기는 초등학생 시절 대구 두류공원 운동장에서 어린이날 기념으로 모터크로스 시범이 펼쳐진 30여 년 전이었다. 흙먼지를 내면서 달리다가 높이 점프하는 장면이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 없었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 무면허로 ‘아는 형’의 택트(50cc 스쿠터)를 잠깐 타 본 적은 있었다. 이후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먼저 취득하고, 도로의 흐름을 알게 된 뒤 2종 소형 면허증을 따서 바이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바이크의 어떤 점을 싫어하고 혐오하는지, 나 역시 공감하고 있던 터라 절대 하지 않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붙었다. 예측 운전이 가능하니 어떤 면에서는 시야 높고 기동력 있는 바이크가 자동차보다 한결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사고가 나면 몸으로 감당할 대미지가 훨씬 크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전 장구를 잘 챙겨야 하는 거고)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이 결정적으로 다른 가장 매력적인 점은 기계와 나의 일체감이다. 노면과 몸 사이에 기계가 있고, 세 요소는 서로 인풋 아웃풋을 주고받는다. 방향을 바꾸고 가속하고 멈출 때, 고스란히 직결감을 느낀다. 그래서 정직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생활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이동, 그 과정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니 너무 좋은 거 아닌가?
혹자는 이런 면에서 이륜차와 자동차가 확연히 구분되기에 사륜차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바이크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포르셰를 운전해보고 이 또한 고정관념음을 깨달았다더라.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었다는 포르셰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아무튼, 얕은 식견과 경험만으로 타인의 취향을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영화 제목 하나가 겹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