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임용 2년 차인 젊은 선생님이 자살을 했다.
유서나 명확한 이유가 나오진 않았지만,
정황상 유별난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리다 그런 결말을 맞이한 걸로 보이고,
이 일 때문에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과 시민들이 공분을 쏟아냈다.
이 일로 많은 교사들이 자신들이 받은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민원들을 밝혔는데,
그런 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들을 모은 진상부모 체크리스트라는 게 등장했고,
그중, 내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말이 있었다.
"애 안 낳고, 안 키워 본 사람은 부모 심정을 모른다."
애를 안 낳은 사람은 부모 심정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군대를 안 간 사람은 군대를 간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결혼을 안 한 사람은 결혼생활의 세세한 경험까지 알지 못한다.
애를 낳아보지 않으면, 애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나?
군대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군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나?
결혼을 안 한 사람은 결혼 생활의 장단점을 모르나?
부모만큼은 아니더라도, 군대를 가보지 않았더라도, 결혼을 안 해봤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자기 직업을 수행하면 되지
그 이상의 자격을 왜 가져야 하는지...
20~3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담임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마음만 있으면 되지, 20~30명의 부모의 마음과 동기화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인지상정, 역지사지는 상식 수준의 공감능력을 가지란 말이지 그 이상의 요구는 갑질이다.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은 아니지만, 현 대통령, 그리고 전전 대통령도 출산과 육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능력이 떨어질 거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출산의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업무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이다.
암환자가 아니어도 의사는 암환자를 고통을 인지하고, 진통제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용량을 투약할 수 있다.
축구선수 출신이 아니어도 축구감독이 될 수 있다.
결혼과 이혼의 경험이 없어도 이혼전문변호사가 될 수 있다.
특정 경험이 직업적 자격으로 꼭 필요한 게 아닌데, 그 점을 부족한 점으로 삼는 건 좀 무식하지 않나?
부모의 심정을 이해받기 바란다면, 공감받기 바란다면 그건 가족이나 친구에게 요구해야지
사회적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상식이상의 공감능력을 바라는 건 민원이 아니라 민폐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치고
본인 일 외의 타인의 일들이나 사회문제에 뛰어난 공감능력을 보이는 사람들도 잘 없다.
앞으로 출산의 경험이 없는 선생님들이 저런 얘기를 들으면 당당하게 말씀하셨으면 좋겠다.
"저는 부모가 아니라 교사입니다. 학부모님은 지금 교사에게 부모의 역할을 강요하는
갑질 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