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준 루틴챌린지를 지켰더니 꽤 괜찮은 성취감을 맛봤다.
그저 그런대로 살았다.(살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노잼 인생.
밤 새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라 하지도 않고,
버킷리스트가 뉴욕 여행이지만 10년째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고 있다.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어도 가야지 가야지 하고 가지 못해 막상 가려고 하면
이미 내려간 전시회가 숱하다.
거기에다가 집돌이.
집-회사-집-회사. 이유가 없으면 나가지 않고
어딘가를 가야 하면 나간 김에 해야 될, 봐야 될 것들을 한 번에 하고 오기도 했다.
무미건조한 인생이다.
일에 치여 살면서 답이 없는 일들을 풀다가 좌절하고
때려치우고 엎어지는 일들이 내 목을 졸랐다.
뭔가를 정확하게 100%로 끝낸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그렇게 살다가
금요일 아침 출근길에 스타벅스에서 벤티 사이즈 커피를 마시면서 시작된
루틴에 성취감을 맛보았다.
<커피로 시작된 소소하지만 행복한 루틴>
하루에도 2-3 잔 씩 꼬박꼬박 커피를 마실 만큼
커피가 없으면 하루가 힘들 정도로 커피에 중독되어 있다.
커피는
출근길에 백다방에 들려 커피 한 잔.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카페인에 민감한 탓에 4시 반 전에 한 잔.
그렇게 3잔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부터 몰려드는 업무전화에
커피는커녕 점심도 저녁도 거르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퇴근시간이 훌쩍 넘어 사무실을 나오게 됐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업무와 커피를 마시지 않아 생긴 카페인 부족으로
머리가 웅웅 울릴 정도로 두통이 왔다.
하지만 이미 10시를 넘어선 시간에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그 날 잠은 다 잔 거였다.
그 날이 화요일 밤이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밤 잠이 들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기 전 까지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수요일 아침. 정말 마시고 싶었던 커피의 유혹을 뿌리치고 출근하여
끝나지 않았던 일을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 당연히 마셨던 커피도 애써 외면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엉켜있던 일들을 목요일 밤에 다 풀고 내일은 커피를 마시리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압구정로데오역에 내리기 전에
스타벅스 앱을 켜서 사이렌오더로 아메리카노 벤티를 주문했다.
스타벅스 문을 열고
"이디렉터" 라는 닉네임으로 나와있는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픽업하자마자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인이 들어오자마자 발 끝이 찌릿찌릿할 정도였고
그렇게 커피가 맛있었다.
골치 아팠던 일을 해결하고 난 뒤에 4일 뒤에 마시는 커피였기도 하지만
내가 나에게 줬던 루틴을 완료했다는 것에 소소하지만 큰 행복이 찾아왔다.
그 뒤로 나는 내 인생에 작고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안겨 줄 수 있는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소한 루틴으로 채워진 일주일, 한 달, 1년>
4일 만에 커피 마시기 루틴 챌린지를 시작한 이후부터
다양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루틴은 매주 금요일은 스타벅스의 벤티 사이즈 커피를 마시는 것.
5천 원 남짓의 돈으로 느껴지는 성취감과 행복이 좋았다.
내가 나에게 챌린지하는 루틴은
커피 마시기처럼 크지 않고 소소하다.
좋아하는 것을 먹거나 하거나 보지 않고
정해놓은 그 시간이 되면 그것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루틴은
- 2주일 주기(첫째, 셋째 주)로 일요일 오후 1시 30분에 1시간 동안 사우나에서 온 몸에 땀을 쫙 뺀 다음 바나나우유 마시기
-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함덕서우봉 정상에 올라가서 커피 마시기 (올라가면서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2주일 주기(둘째, 넷째 주)로 토요일 오전 11시 제주시청 앞 서브웨이에 가서 이탈리안 비엠티를 구운 위트빵에 오이랑 피클 빼고 스위트 칠리소스로 먹기
정도이다.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새로운 루틴들을 만들고 있다.
서울에 있을 때의 루틴은 더 많고 디테일했었는데
- 매주 금요일 출근길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벤티 사이즈 커피 마시기
- 매주 금요일 출근길 지하철은 10-4에서 타는 게 아니라 1-1에서 타기
- 매주 금요일 퇴근길 지하철은 분당선-7호선-4호선 이 아니라 분당선-2호선-4호선으로 타기
- 토요일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백다방에 들려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2인용 테이블의
화장실 쪽 의자에 앉아 반을 마시고 반은 집에 와서 마시기
-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4시에 범계역 롯데백화점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려
첫 번째 베스트셀러에 100번째 페이지 보기 (지난주와 똑같다면 두 번째 베스트셀러 보기)
- 두 번째 주 수요일은 사무실 앞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물건을 사기
- 매월 7일, 17일, 27일은 점심 안 먹고 퀸마마마켓에 들려 사지도 않을 아이템을 구경하고
디자인 책들 본 다음 꼭대기 층 매뉴팩트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오기
- 매월 20일은 키쏘커피에 가서 라테 한 잔 마시기
8개였다.
사실 더 늘리고 싶었는데 내 생활범위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루틴이었다.
8개의 루틴은
스스로가 예민해질 정도로 지켰다.
그렇다고 저 루틴을 실행하기 위해서 어디에 적어두거나 캘린더에 등록하지는 않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챌린지였고 그 챌린지를 완료하기 위해서 계속 생각하고 노력했을 뿐이다.
루틴을 어쩌다 지키지 못했던 날에는 이름 모를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정해진 루틴을 모두 지켰을 때는 이름 모를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행복했다.
<루틴이 나에게 준 성취감>
성취감. 성취감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다 맛볼 것 같았던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
회사 일과 내가 나에게 챌린지를 했지만 모두 버거운 것들이라
끝나도 성취감을 얻을 수 없었고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그러다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게 된 소소하지만 행복한 루틴에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성취감은 어떠한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감정이다.
이루지 못할 큰 챌린지에 허덕이면서 성취감이 아닌 좌절을 맛볼 바에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루틴을 내가 나에게 만들어 챌린지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건 어떨까.
꽤 괜찮다.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