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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Feb 22. 2016

"애가 참 순하네" 엄마가 뿔났다

키우기 수월한 아기는 없다!

분명 순한 편인 것은 맞다. 카시트나 유모차에도 거부감이 없었고, 낯가림은 커녕 사람만 보면 좋아서 방긋방긋 웃는 아들을 보면 누구나 '얜 진짜 순하다'라고 얘기한다. 이유식도 잘먹고 딱히 유별난 구석은 없다.


하지만 정말이지 억울하다.


엄마와 단 둘이 집에 있는 어떤 아기가, 울지도 않고 항상 방긋방긋 웃고 있겠는가.


잠시 빨래를 하러 세탁실에 들어갈때도, 기저귀를 가지러 엉덩이를 뗄 때도, 급한 신호에 화장실로 뛰어가거나 분유를 타기위해 주방에 갈 때조차,


시야에서 엄마가 사라지면 바로 목놓아 울어버리고 마는데, 마치 '순한 아기라 그닥 힘들지 않겠다'란 얘기를 듣는 것만 같아서 원통하다.


이 글을 쓰던 도중 그저 충전기를 가지러 갔다왔을 뿐이다!!


생후 100일에 맞춰 뒤집기를 시작한 후에는 시야각이 넓어져 어디에 엄마가 있는지 끊임없이 살피곤 했다. 홀로 치발기를 빨며 놀때에도 계속 곁눈질을 하며 엄마가 옆에서 본인을 봐주고 있는지 감시한다.


잘 놀다가 엄마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중


엄마가 만약 자길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에오- 아오- 하며 몇번 부른다. 즉각 '우리 아들 잘한다~ 아이 이쁘다'와 같은 리액션이 뒤따르지 않으면 또다시 낑낑대며 울음보를 터뜨릴 준비운동을 시작한다.


잔망스러운 녀석...


그런데 순하다니!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우유를 먹을때도 발버둥을 치며 젖병을 날려버리고 목에 받쳐둔 손수건은 잡아뽑으며 우유병과 손가락을 동시에 빨겠다고 용을 쓰는 요녀석이 손이 안가는 아기라면, 다른 아기들은 비글? 아니 집안에 서식하는 멧돼지 정도 되는 것인가!


먹지마!!!


오붓한 셀카라도 찍으려 할때면 오랜만에 감은 엄마 머리채를 휘어잡고 맛깔나게 뜯어먹는 욘석이?





생후 160일 경, 아직 배밀이도 하지 않던 아들의 양발을 잡고 미는 시늉을 하며 친정엄마가 친절히 기는 법을 가르쳤다.


세상에. 그 다음날부터 비법을 전수받은 아들은 신명나게 기어다니며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그의 만행을 기록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빠가 벗어둔 양말 빨아먹기

-화장실 앞에 빨아둔 걸레 빨아먹기

-쓰레기통 엎은후 똥기저귀 품기(아슬아슬하게 미수에 그침)

-기어다니다가 바지와 기저귀 밀어서 벗어낸후 바닥에 쉬야 하기

-아빠 핸드폰 빨아먹다가 그 위에 토하기

-젖병 쇼파밑으로 밀어던지기 수십회

-청소기에 돌진 후 엎어버리기(수십번 미수에 그침)

-졸고 있는 엄마 콧구멍 쑤시기

-바닥에 엎지른 쥬스 핥아먹기

-쥐도새도 모르게 요리중인 엄마 옆으로 와서 발등에 채인후 앙앙 울기

젖병을 찾고 찾아도 안보이더니만 왜 저런곳에 장난감과 함께 들어가 있는지... 코뿔소처럼 밀며 돌진한듯 하다.


결혼하기 전까지 친정집에서 키우던 푸들 모모가 생각난다. 옷과 양말을 물어뜯다가 걸리면 멀건히 쳐다보다가 숨던 작은 강아지.


적어도 모모는 들키면 눈치라도 살폈지만 우리 아드님은 의기양양하게 방긋방긋 웃는다.


고양이 수준이라 판단후 고양이장난감을 사서 흔들어보았다. 겁나게 좋아한다.


순하다=키우기쉽다 로 받아들이는 내게 약간의 피해망상적 기질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애가 참 까탈스럽다"는 말을 듣고싶은 건 아니다.


맹목적인 사랑이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때로 나의 노고와 고생을 독려해주는 '토닥토닥'이 고플 뿐이다.



명절을 지내고 순하다는 말에 뿔이난 내가,

시댁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순한건가?"

"우리아들 정도면 진짜 순한거지"




그 말을 듣자마자 2박 3일 남편에게 아들을 맡겨두고 홀로 놀러가기로 결정했다. 한번도 오롯이 혼자 아들을 봐본적 없는 남편에게 육아의 혹독함을 느끼게 해주고싶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현실의 씁쓸함 앞에 무너져내렸다. 애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모두들 출근하여 만날 이가 없었다.


한때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붓기도 하고, 때론 흥겨운 무도회장에서 헤드뱅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건 더이상은 해선 안될 만행이니까.


(사실 정말 하고팠던 건, 아기울음소리가 없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잠들고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시어머님은 누구보다도 나의 절박한 심정과 육아의 고달픔을 이해해주셔서 운좋게도 나는 서러운 며느리는 아니다.


가끔 "한번 울지도 않는데? 응? 뭐가 힘들다고" 라고 말씀하시는 아버님께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전에 어머님의 '육아를 모르는 남자들이란 이다지도 쉽게 얘기한다'는 구박이 먼저 뒤따르니까.



아, 하지만 아기가 순하다는 말조차도 곱게 듣지 못하는 옹졸한 속알딱지와 바늘구멍처럼 쪼그라든 마음의 여유가 참으로 얄궂다.




한때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단짝처럼 붙어다니던 친구도, 내 반쪽임이 분명한 사랑하는 서방님도,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복잡미묘한 불평불만을 이해하지 못한다.


키워본 사람만 안다고.

간혹 사람 많은 식당 안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도 둥기둥기 하고 있으면, 꼭 고만한 아기를 안고 있는 다른 아기엄마가 찐한 눈빛을 날린다.


마치, 아 저집에도 천방지축 멍뭉이 한마리가 있구나, 힘내요 우리!  하는 표정으로.

그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은 남편에게조차 받아보지 못한 묘한 동질감이다.


아마 그래서 더욱 아둥바둥 이런 심경을 끄적거리는듯 하다. 구구절절 늘어놓아도 겪어본 사람만 알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받을 수 있지않을까 싶어서.




그래, 어느 아기들이나 순한 구석은 있다.

다만 순한 아기들 뒤에는 뿔난 엄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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