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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pr 28. 2020

내 인생의 ‘비비디 바비디 부’

매일 육아 일기 말고 내 일기를 씁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 덕분에, 신데렐라라는 동화책을 다시 손에 쥐게 된 것 말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발음해 보았습니다. ‘비비디 바비디 부’. 이야기 속 요정 할머니의 이 한 마디는, 재투성이 신데렐라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에 간 신데렐라의 기준점입니다.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인생 역전을 도와준 일등 공신이지요.


나도 가만히 외쳐봅니다. ‘비비디 바비디 부’.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엄마의 현실은 재투성이 신데렐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간절히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현인들의 조언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조롱이라도 하듯 말입니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방향조차 알 수 없습니다.


나에게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치며 요술 지팡이 한 번 쓰윽 휘둘러줄 요정 할머니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요. 끊임없이 부르지만 대답 조차 없음에, 한동안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요정 할머니만 나타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즐거워질 줄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얼마나 부담스러우셨겠어요. 그 요정 할머니, 그렇게 대단한 분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신데렐라의 ‘쉬운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엄마들의 ‘레벨 업 된 문제’는 해결해 줄 자신이 없기에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대부분의 동화책에서도 결혼과 동시에 happily ever after로 급하게 결론을 마무리를 짓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언급도 하기 꺼려하잖아요.


아주 만약, 요정 할머니가 지금의 어려움을 한 번에 해결해 주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 한들,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면 또 요정 할머니를 불러야 합니다. 처리 방법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요정 할머니가 빼앗아 가버렸으니, 요정 할머니에게 자꾸 의지하게 되지요. 이쯤 되면, 요정 할머니가 과연 좋은 사람인지 의심이 됩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해결을 맡기려 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공통분모는 갖고 있지만 각자의 상황은 다릅니다. 그런데 같은 주문 한 마디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말입니다. 구원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요정 할머니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맞춤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를 돌보는 시간, 내 시간조차 가질 수 없으면서 멀티 태스킹에 능하다고, 완벽한 엄마라는 평을 듣는 것이 현재로서는 달콤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정 가능한 것인지요? 내가 하는 일인데 나 이외의 것들만 몰아치다 보면, 결국에는 다 잃기 마련입니다. 내가 없어졌기 때문에 내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아픈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본다거나, 오래전 야심 차게 마련했던 옷을 다시 꺼내본다거나, 이제는 플랫 슈즈나 운동화만 남은 신발장을 열어볼 때 우리는 당황스럽습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주름이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는 분명 내 옷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 옷이 내 옷장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니던 때가 있었지만, 격식을 차려야 할 모임에 신고 나갈 마땅한 구두가 없다는 것을 현관 앞에서야 발견하지요.


이러한 당황스러움은 내 상황에 대해 가끔, 아주 가끔 생각해 보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매일 나를 쳐다보고 싶었습니다. 결론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아닌, 그저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오늘 하루의 시간표를 펼쳐보면, 감동받았던 일, 언짢았던 일 모두 생각날 것입니다. 그럼, 그냥 다 적습니다. 글로 적어 내려가면 느낌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동받았던 일은 적으면서 한 번 더 감동받습니다. 언짢았던 일은 적으면서 나를 위로합니다. 


이렇게 쓴 일기장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리고 오늘을 정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설레며 맞이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나를 위한 ‘비비디 바비디 부’는 요정 할머니보다 더 힘 있는 내가 나에게 말해줘야 하는 주문입니다. 매일매일 일기를 통해 나에게 그렇게 주문을 외워주세요. 그 누구도 아닌, 세상에서 제일 나를 잘 알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서 힘을 얻으세요. 


나를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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