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이 나오게 추운 날,
따스해 보이는 조명을
켜놓은 까페에 들어선다.
카운터에 가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그제야
탁자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나무로 만든 탁자.
손바닥으로
탁자를 쓸어보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 한다.
보드라운 탁자는 분명
죽은 나무로 만들었는데
어쩐지 따뜻하다.
노곤함이 밀려온다.
진짜 나무로 만든 탁자가
집에 있지 않다면
아주 가끔
이런 탁자를 만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탁자를
나무로 만든다면
나무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
불만은 없다.
다만 가끔 이런 탁자를 만나면
마음이 탁, 풀어진다.
이곳에서는 괜찮아.
그런 기분이 든다.
놀랍게도
이런 탁자를 쓰는 까페와 식당은
대부분 맛도 좋고 음악도 좋았다.
그런 것 때문에 나무 탁자가 좋은 지,
나무 탁자가 좋아서
그게 놓인 공간의 모든 것이
그냥 좋아져 버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학교를 싫어하는
어린이였는데,
아무도 없는 교실은 좋아했다.
국민학교 교실은
나무로 만든 마룻바닥에
나무로 만든 책상과 의자가
숲처럼 있었다.
모두가 교실에 있을 때보다
나무들만 남은 교실이
더 따뜻해 보였다.
의자에 앉아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면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잔뜩 곤두서 있던
마음의 가시들이 보드라워졌다.
어느 교실에나 있는
흔한 책상이었을 뿐인데
가끔 생각이 난다.
좋아하는 가구들은 마음을 안아준다.
멋진 나무로 만든
탁자를 가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탁자가 있는
까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느 날 오후, 어느 날 저녁,
긴장했던 마음을
잠깐이나마 풀어놓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