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시공간을 초월한 난제
무알콜 맥주에 대해 알아보다가, 그 기원이 미국의 금주법이라는 게 재밌었다. 예전에 본 미드 수사물이 떠올랐다. 작품 제목도, 에피소드 내용도 생각이 안 난다. 범인이 밀주꾼들이 만든 비밀 통로로 도주했다는 건 너무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한다.
무알콜 맥주를 탄생시키고 알카포네도 성장시킨 금주법
미국은 의회가 미국 수정 헌법 제18조를 비준한 1919년부터 금주법 시대에 들어갔다. 금기는 때로 사업 기회가 된다. 밀주꾼들이 성행했다. 그중 제일 유명한 인물이 ‘밤의 대통령’ 알카포네다.
알카포네(Alphonse Gabriel "Al" Capone)
뉴욕 브루클린 태생이며, 남부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이끌었던 시카고 아웃핏(Chicago Outfit)은 미국 서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1927년에는 '한 해 총수입이 1억 달러인 세계 최고의 시민'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도박, 매춘, 밀주 등). 알 카포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알 카포네는 금주령 시절, 밀주로 특히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사진, 글 출처: 위키백과
그가 얼마나 유명한 인물이었는지 2018년 알카포네가 밀주 제조 용도로 썼던 건물이 철거되는 소식까지 기사화가 될 정도다.
관련 기사 링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854450&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알카포네를 잡은 수사관 엘리엇 네스
알빌런이 있다면 히어로도 있는 법.
알카포네는 미 연방 재무부 특별 수사관 네스가 이끌던 '언터처블스'(The Untouchables) 수사팀에 체포되었다. 이 네스 수사관이 철거되는 건물을 기습 단속했었다고 한다.
네스와 알카포네 이야기는 책은 물론 영화로도 제작됐다.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감독이 무려 <미션임파서블> 1편을 연출한 브라이언 드 팔마
언터처블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하고 아트 린슨이 제작하고 데이비드 마멧이 각본을 쓴 1987년 미국 범죄 영화[3]이다. 케빈 코스트너, 찰스 마틴 스미스, 앤디 가르시아, 로버트 드 니로, 숀 코너리가 출연한다.
1930년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엘리엇 네스(코스트너)가 금주법 기간 동안 알 카포네(드 니로)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언터처블 팀을 구성하는 것을 따른다.
(중략) 네스가 경찰서를 떠날 때, 기자는 그에게 금주법 폐지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고, 그는 "나는 술을 마실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사진, 글 출처: 위키백과
"나는 술을 마실 것 같아"
1933년, 미국에서 금주법이 폐지되었다. 영화에서 엘리엇 네스가 했다는 대사처럼 사람들은 다시 술을 (대놓고) 마시게 되었다. 그럼 금주법은 오히려 알카포네 같은 범죄조직만 성장시킨 실패한 법이었을까?
여러 관점이 있지만,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전체 음주량 낮아짐
음주로 인한 사망, 경제적 손실 줄어듦
음주에 대한 인식과 문화 변화
미국에서는 금주에 대한 논의가 독립 초기부터 있었다고 한다(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여서 그랬을까?).
남북전쟁이 일어난 후 전쟁으로 인한 심리적 문제가 증가해 음주량도 폭증했다. 그러자...
술에 취한 남편에게서 피해를 보는 아내도 많아졌다. 음주로 인한 사망, 경제적 손실도 컸다.
금주법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했다. 다른 배경도 있다지만, 특히 인상적인 이유였다.
음주로 인한 학대, 폭력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만연한 문제라서 과거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금주법 이전에는 남성만이 술집, 바에서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도 금주법 시행 대상이 되면서 여성이 술을 마실 권리가 인정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무알콜 맥주도 탄생되었고.
연산군은 금주했을까?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금주령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는 금주령이 내려졌던 기록이 많다. 최초 기록이 태조 시대다. 영조 시대에는 근검절약의 아이콘답게 금주령이 빡셌다.
재밌는 건 왕들이 금주령을 내렸다가 거뒀다가를 반복했다는 거다. 사신이 와서, 날씨가 추워서…
연산군일기 40권, 연산 7년 4월 28일 을사 1번째기사 1501년 명 홍치(弘治) 14년
지평 김습이 재변이 적지 않으니 금주령을 내릴 것을 청하니 들어 주다
【태백산사고본】 11책 40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443 면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연산군 시대에는 신하들이 금주령을 청했지만 왕이 거절했다는 기록이 대부분이었지만, 폭군으로 유명한 그조차 금주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 왜?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조선시대의 금주령은 주로 가뭄 때문이었다. 식량이 부족한데 곡식으로 술을 빚어서야 되겠냐는 것.
연산군이 금주령을 내리고 진짜 금주했을지 궁금하다. 안 했겠지?
조선의 술꾼 천재와 알쓰 천재
조선시대에 고위관료들이 맨날 기방에서 술을 마시며 밀담을 나눴다는 이미지는 사실 조작이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추구한 이상적 인간형 "군자"는 절제가 미덕이었다. 그래서 지배층인 사대부 선비들은 기방에 드나들어 술 마시길 즐기면 비난받았다. 실제 고위관료들은 집에 기생을 불러서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사대부 가문에서 밀주를 만들다가 걸렸다는 글을 어디서 읽었던 게 기억난다. 제사상에 올리려고 했다고 해서 선처해 줬다나.
그러고 보니 사극로맨스의 일타남주 정조는 애주가였다. 할아버지 영조 시대에 금주하느라고 고생했겠다
정조 시대에는 술을 못 마시는 정약용이 왕이 자꾸 술을 내린다고 한탄했다고. 정약용도 어쩔 수 없는 K직장인?
지금 같았으면 정약용도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정조와 즐거운 회식을... 할 수 있었을까?
애주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정조는 주취감형에 관대했다. 정조가 내린 판결문의 요지는,
술이 죄지, 사람이 죄냐
정약용은 그 판결에 대해 반박글을 저서 <흠흠신서>에 남겼다고 한다.
사람이 죄지, 술이 죄냐
당신의 선택은?
관련 기사 링크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3
오늘의 디깅 끗.